“국민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지 천천히 생각해 보겠습니다.”
지난해 10월 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장. 밤 12시를 훌쩍 넘긴 시간에 나온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발언에 여의도 정가가 ‘발칵’ 뒤집어졌다. ‘퇴임 후 봉사 활동에 정치도 들어가냐’는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의 추가 질문에 윤 전 총장은 “그것은 지금 말씀드리기가 어렵다”고 답했다. ‘긍정도 부정도’ 아니었지만 정치권은 정계 진출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으로 받아들였다. 김 의원은 “윤 전 총장과 짜고친 고스톱이 아니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이 언제, 어떤 경로로 정치권에 진출할지에 대해선 여러 관측이 흘러나온다. 정치권의 예상 시기는 △5월 △7월 △9월 등 대략 세 가지다. 조기 등판을 점치는 전문가들은 “잠행 기간이 길면 국민들의 관심도 멀어진다”고 이유를 댄다. 기성 정당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강연, 인터뷰 등을 통해 국민들에게 대통령 후보로서 비전과 철학을 알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확신이 서면 5월 중순 정도에 자기 의사를 나타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7월을 얘기하는 사람도 많다. 중도 사퇴 전 검찰총장 임기(7월 24일)까지는 정치권에서 떨어져 있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정치를 위해 총장에서 물러났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7월은 여권 대선 후보들의 경선이 시작되는 시기다. 반면 최대한 시간을 끌다 정치판에 뛰어들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때가 대선 출마를 위한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 9월이다.
윤 전 총장의 부인과 장모에 대한 의혹들은 인사청문회와 국정감사를 거치면서 여러 차례 도마에 올랐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윤 총장의 지휘를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수사하라고 검찰에 수사지휘권을 행사한 건도 있다. 당시 거론된 의혹은 △김씨가 기획한 각종 전시회의 기업 협찬금 △도이치모터스 관련 주가 조작 등에 김씨 관여 의혹 △최씨의 요양병원 운영 관련 위법 행위 등이다. 검찰이 뒤졌지만 구체적 범죄 혐의는 밝혀내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들어선 최모씨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연일 쏟아져 나온다. 현재 제기된 건 △2013~2016년 경기 성남 도촌동 토지(55만3000㎡) 매매의 농지법 위반 및 차명거래 의혹 △2006~2014년 경기 양평 일대 임야(1만6550㎡)와 농지 5필지(2965㎡) 매매의 농지법 위반 및 편법 증여 혐의 △2001~2005년 충남 아산 신도시 땅 투기 의혹 등 세 가지다.
최씨가 농사를 직접 짓지 않으면서 농지를 포함한 부동산에 투자, 부당 이득을 챙겼다는 공통점이 있다. 최씨는 이 과정에서 당시 동업자들과 법정다툼도 벌였다. 야권에선 ‘LH(한국토지주택공사)사태’ 이후 부동산 투기에 대한 여론이 악화된 상황이어서 윤 전 총장 대권가도에 가장 큰 ‘아킬레스건’이라고 분석한다. 최씨의 법률대리인인 손경식 변호사는 “(정부·지방자치단체의) 개발 고시 후 공개 입찰을 통해 매입한 것으로 부당하게 얻은 이득이 아니다”며 “이미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들이 본인들에게 유리하도록 일방적인 의혹들을 제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윤 전 총장이 정계 진출 후 상당 기간 국민의힘에 입당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야권에선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처럼 대선이 임박한 시점에 윤 전 총장과 국민의힘 후보 간 단일화가 이뤄질 것이란 관측도 있다.
정치 자금과 조직 운영도 윤 전 총장에겐 부담이다. 4년 전 19대 대선 때 문재인 후보(더불어민주당) 500억원, 홍준표 후보(자유한국당) 420억원 등 각각 수백억원의 자금을 썼다. 대부분 정당 보조금이나 정당 자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충당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권의 네거티브 공세를 홀로 막기는 역부족”이라며 “제3의 길보다는 야당에 입당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좌동욱/안효주/성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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