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철수 쌤의 국어 지문 읽기] 버림받아도 순종하는 여인이여! 그대 이름은…

입력 2021-05-10 09:01  


<svg version="1.1" xmlns="http://www.w3.org/2000/svg" xmlns:xlink="http://www.w3.org/1999/xlink" x="0" y="0" viewBox="0 0 27.4 20" class="svg-quote" xml:space="preserve" style="fill:#666; display:block; width:28px; height:20px; margin-bottom:10px"><path class="st0" d="M0,12.9C0,0.2,12.4,0,12.4,0C6.7,3.2,7.8,6.2,7.5,8.5c2.8,0.4,5,2.9,5,5.9c0,3.6-2.9,5.7-5.9,5.7 C3.2,20,0,17.4,0,12.9z M14.8,12.9C14.8,0.2,27.2,0,27.2,0c-5.7,3.2-4.6,6.2-4.8,8.5c2.8,0.4,5,2.9,5,5.9c0,3.6-2.9,5.7-5.9,5.7 C18,20,14.8,17.4,14.8,12.9z"></path></svg>이 몸 삼기실 제 님을 조차 삼기시니
한생 연분(緣分)이며 하늘 모를 일이런가
나 하나 졈어 잇고 님 하나 날 괴시니
이 마음 이 사랑 견졸 데 노여 업다
평생(平生)애 원(願)하요데 한데 녜쟈 하얏더니
늙거야 므스 일로 외오 두고 그리는고
엇그제 님을 뫼셔 광한뎐(廣寒殿)의 올낫더니
그 더데 엇디하야 하계(下界)예 나려오니
올 저긔 비슨 머리 헛틀언 디 삼 년일쇠
연지분(脂粉) 잇네마는 눌 위하야 고이 할고
마음의 매친 실음 텹텹(疊疊)이 싸혀 이셔
짓느니 한숨이오 디느니 눈믈이라
인생(人生)은 유한(有限)한데 시름도 그지업다
무심(無心)한 셰월(歲月)은 믈 흐르듯 하는고야
염냥(炎凉)이 때를 아라 가는 듯 고텨 오니
듯거니 보거니 늣길 일도 하도 할샤
동풍이 건듯 부러 젹셜(積雪)을 헤텨 내니
창(窓) 밧긔 심근 매화(梅花) 두세 가지 픠여셰라
갓득 냉담(冷淡)한데 암향(暗香)은 므스 일고
황혼의 달이 조차 벼마테 빗최니
늣기는 듯 반기는 듯 님이신가 아니신가
뎌 매화 것거 내여 님 겨신 데 보내오져
님이 너를 보고 엇더타 너기실고

- 정철, 사미인곡 -
님을 조차 삼기시니 … 님을 뫼셔 … 연지분(脂粉) 잇네마는 … 달
조선 시대에는 남녀가 유별하였다. 남녀를 분별, 즉 구별하여 나눴던 것이다. 말이 분별이지 그것은 차별에 가까워서, 여자는 남자를 따르고 남자에 종속된 존재였다.

이를 고려하면 시적 화자 ‘나’는 여자이고 ‘님’은 남자임을 느낄 수 있다. ‘나’는 ‘님을 조차(좇아) 삼기(‘삼기다’는 생기게 하다는 뜻의 옛말인데, 자주 나오는 어휘이니 외워 두자)’게 된 존재이고, ‘님을 뫼시’고 있었다. ‘나’는 임에 종속되고 임은 ‘나’보다 높은 존재인 것이다. ‘나’가 여자임의 결정적 근거는 ‘연지분’이다. ‘연지’는 화장할 때에 입술이나 뺨에 찍는 붉은 빛깔의 염료이고, ‘분’은 얼굴빛을 곱게 하기 위하여 얼굴에 바르는 밝은 살색이나 흰색의 가루이다. 이것이 옆에 있다는 것은 ‘나’가 여인임을 뒷받침한다. 한편 이 시가에는 임이 ‘달’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 또한 임이 남자임을 느끼게 한다. 달은 하늘에 있기에, ‘나’는 그것을 우러러봐야 한다. 이는 여자들이 남자들을 떠받들던 당시 사회 분위기가 투영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나 하나 졈어 잇고 님 하나 날 괴시니 … 늙거야 므스 일로 외오 두고 그리는고 … 실음 … 한숨… 눈믈… 시름
그러런데 이 시가는 남자인 정철이 지었다. 그는 왜 시적 화자를 여자로 설정한 것일까?

‘나’는 ‘외오(외따로 떨어져) 두’어진, 즉 버림받은 상태에 있다. 그런데 ‘므스 일로 … 그리는고’라고 한 것을 보면 자신이 왜 실연당한 것인지 ‘나’는 모른다. 만약 ‘나’가 어떤 잘못을 했다면 모르겠지만 이 시가 어디에도 그것은 드러나지 않는다. 짐작이 가는 것이 있기는 하다. ‘나’가 ‘졈어 잇(젊어 있)’었을 때는 임이 ‘나’를 ‘괴(‘괴다’는 사랑하다는 뜻의 옛말인데, 자주 나오는 어휘이니 외워 두자)시’었다. 그런데 ‘나’는 ‘늙거(늙어)’ 있는 상태에서 홀로 있게 된다. 이를 보면 ‘나’는 나이 들어 버림받았다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늙은 것이 정말 잘못일까? 요즘의 가치관이라면 ‘어찌 이럴 수가 ….’ 하면서 억울하고 분개할 것이다. 물론 ‘므스 일로 … 그리는고’를 임에 대한 원망을 드러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실음(‘설움’의 방언 또는 ‘시름’으로 풀이 된다)’, ‘한숨’, ‘눈믈’, ‘시름’ 등으로 지낸다. 쫓아가 잘잘못을 따지며 머리채를 쥐어뜯어도 시원치 않을 마당에 바보같이 슬픔 속에 지내고만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가를 조선의 잣대로 먼저 봐야 할 것이다. 조선에서 여자는 남자들이 어찌했든 순종해야만 했다.

이제 왜 이 시가의 시적 화자가 여자인지를 알겠는가? 만약 시적 화자가 남자였다면 당시 독자들은 이 시가를 보며 ‘이런 남자가 어딨어?’ 하고 웃었을 것이다. 이렇듯 시적 화자의 성격과 정서를 사회 문화적 배경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늘 모를 일이런가 … 므스 일로 외오 두고 그리는고 … 눌 위하야 고이 할고 … 암향(暗香)은 므스 일고 … 님이신가 아니신가 … 엇더타 너기실고
‘밥 먹었니?’는 ‘예’ 또는 ‘아니오’로 답해야 하는 판정 의문문이고, ‘뭐 먹었니?’는 무엇인지 설명해야 하는 설명 의문문이다. ‘밥 하나 못 사줄까?’는 밥을 사 줄 수 있다는 뜻을 강조하기 위한 설의적 의문문이고, ‘밥 같이 먹을래?’는 밥 같이 먹자는 청유·명령 의문문이며, ‘밥을 먹었다고?’는 놀라움 또는 질책 등의 마음을 전하는 감탄(영탄) 의문문이다. 판정 의문문이나 설명 의문문이라 하더라도 문학 작품에서 설의, 청유·명령, 감탄 등의 효과를 낼 때가 있다.

‘하늘 모를 일이런가’는 ‘하늘이 안다’는 의미를 강조한 설의적 의문문이고, ‘므스 일로 … 그리는고’, ‘눌 위하야 고이 할고’는 설명 의문문이지만 안타까움의 마음을 드러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암향(暗香)은 므스 일고’, ‘님이신가 아니신가’는 각각 설명 의문문, 판정 의문문이지만 놀라움 또는 반가움의 마음을 드러내고, ‘엇더타 너기실고’는 설명 의문문이지만 자신의 마음을 알아 줬으면 하는 간절함을 담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의문문의 효과를 생각해 보는 훈련을 하도록 하자.
동풍이 건듯 부러 젹셜(積雪)을 헤텨 내니 … 매화(梅花) … 픠여셰라 … 냉담(冷淡)한데 암향(暗香) … 뎌 매화 … 님 겨신 데 보내오져
‘동풍’은 봄철에 불어오는 바람으로서, 생명을 불어 넣는 존재를 상징한다. ‘눈[雪]’은 ‘냉담(차가움)’하여 생명을 위협하는 속성 때문에 시련, 고난 등을 상징한다. ‘매화’는 사군자(四君子)의 하나로서, 선비의 고결함을 상징하는 대표적 소재이다. ‘암향’은 그윽이 풍기는 향기로서 흔히 매화의 향기를 이른다. ‘나’는 그 매화를 ‘님 겨신 데 보내’고 싶다고 한다. ‘나’는 자신을 매화와 동일시하고 그 향기 즉, 자신의 마음(사랑)을 임에게 전하고 싶다는 것이다.

‘동풍’, ‘눈’, ‘매화’, ‘암향’ 등은 조선 시가에 많이 등장하는 소재이므로, 그 상징적 의미를 외워 두면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된다.
☞ 포인트
① 시적 화자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정서를 갖고 있는지 파악할 때 사회 문화적 배경도 고려할 필요가 있음을 알아 두자.

② 여자는 남자를 따르고 남자에 종속된 존재로 여겼던 조선 사회를 이해하자.

③ 실연의 상황에서 남자보다는 여자의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음을 이해하자.

④ 판정 의문문이나 설명 의문문이라 하더라도 설의, 청유·명령, 감탄 등의 효과를 낼 때가 있음을 알아 두자.

⑤ 조선 시가에 많이 등장하는 ‘동풍’ ‘눈’ ‘매화’ ‘암향’ 등의 상징적 의미를 알아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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