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에너지 정책' 이대론 안된다

입력 2021-05-09 18:23   수정 2021-05-10 00:55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선진국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약속을 제시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기후변화를 ‘기후위기’로 규정하고 기후대응을 위해 국제 사회에서 리더십을 강화하고 있다.

지금의 세계 에너지 시장 구도는 1970년대 중동의 자원민족주의에서 비롯됐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이 유전을 국유화하고,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통해 생산량을 조절하며 원유가격을 대폭 인상하자 미국, 유럽 등 원유 수입국들은 세계자원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한 대응에 급히 나섰다. 미국 주도로, 석유 수입국으로 구성된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만들어져 에너지안보를 위한 국제 공조를 강화하고, 정부 비축유도 크게 늘렸다. 석유를 대체할 에너지로 천연가스나 원전의 이용이 확대됐다.

우리나라도 이때부터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정책이 체계화됐다. 고유가 후유증으로 1980년 경제성장률이 경제개발계획이 추진된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비상시를 대비한 석유비축시설 건설과 함께 발전소, 정유시설 등 에너지 인프라가 빠르게 확충됐다. 에너지 중장기 수급기본계획의 수립이 법제화되고, 천연가스 도입이나 지역난방 등 새로운 사업의 체계적 추진을 위한 전담 공기업들이 속속 만들어졌다. 이에 따라 정부 주도로 에너지원별 분업 구조가 형성됐다. 산업과 민생에 필수적인 에너지는 낮은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전기와 도시가스 요금의 승인제,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에 대한 최고가격제가 시행됐다.

세계 에너지 시장은 에너지 안보 중심에서 환경에 대한 대응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상황으로 변하고 있다. 미국의 셰일혁명으로 인해 OPEC의 영향력이 현저히 줄었다. 세계가 기후변화 대응에 나서고 있기 때문에, 과거 석유·석탄 등 화석연료 중심에서 친환경 에너지 경제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수출하는 기업은 친환경에너지를 사용해 제품을 만들어야 해외시장 접근이 가능한 시절이 왔다. 상대적으로 청정한 천연가스마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줄여나가야 할 에너지로 여겨질 정도다. 21세기 초반까지 세계경제를 이끌던 엑슨모빌의 자산가치가 급락해 지난해에는 미국 대표 기업들로 구성된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에서도 탈락했다.

기후대응을 위해서는 화석연료를 더 이상 쓸 수 없다는 국제사회의 인식 변화가 에너지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이에 따라 수소나 탄소포집저장(CCS) 등 아직 경제성이 확보되지 않은 새로운 에너지 기술이 미래가치로 인정받고 있다.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도 전력 생산의 일관성 부족 등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배터리나 정보통신기술에 의존해야 한다.

우리는 이런 변화에 대응할 준비가 제대로 돼 있는가? 과거 에너지 수요가 급증할 때는 에너지 설비를 적기에 건설하는 것이 중요했다. 지금은 에너지 수요가 더 이상 늘지 않으며, 해결 방법도 재생에너지 확대나 신기술을 활용한 효율 개선이어서 정부계획의 실효성이 떨어진다. 이런 분야는 에너지원별 분업 구조가 적절치 않고 공기업들의 역할도 애매하다. 특정 분야에 독점을 유지했던 공기업은 민간에서 오히려 신기술을 활용한 사업이 제대로 추진되도록 충분한 인프라 건설과 투명한 운영이 요구된다. 수요가 줄어드는 분야는 자연스레 구조조정이나 새로운 사업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일반적인 구조조정을 따라갈 경우 에너지 시장의 실패 확률이 높다. 에너지안보도 지정학적 위험과 자연재해로 인한 수급불안 상황에 대한 대처까지 고려해야 한다. 현재의 에너지법은 이런 정책 수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에너지정책의 근간인 안보를 지키면서 시장의 변화에 대응할 정책 수단을 전면 재점검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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