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애국주의 효과 다한 中 영화산업

입력 2021-05-10 18:03   수정 2021-05-11 01:52

지난 1~5일 노동절 연휴 직후 중국 매체들은 일제히 중국 영화 박스오피스(티켓 판매)가 신기록을 세웠다는 기사를 쏟아냈다. 총 매출 16억6800만위안(약 2900억원)으로 기존 최대였던 2019년 노동절 연휴 때(15억2000만위안)보다 10%가량 늘었다는 내용이었다.

중국 영화가 박스오피스 점유율 96%를 차지했다는 점도 비중 있게 다뤘다. 2019년 당시 박스오피스 1, 2위에 미국 영화 ‘어벤져스:엔드게임’과 레바논 영화 ‘가버나움’이 올랐던 것과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보도였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는 코로나19로 인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제작이 사실상 중단됐다는 것을 중국 영화의 점유율 확대 배경으로 꼽았다. 소비자들이 경쟁력이 높아진 중국 영화를 선택하면서 영화산업이 성장하고 있다는 분석도 곁들였다.
기대작 일제히 흥행 실패
실상을 들여다보면 중국의 영화산업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18년 노동절 연휴 박스오피스 증가율은 전년 대비 35%였고 2019년에는 44%에 달했다. 올해엔 오히려 성장세가 크게 둔화됐다는 얘기다. 티켓 판매 규모도 연휴 전 전망치인 18억위안에 크게 못 미쳤다. 역대 노동절 연휴 최다인 12개 작품이 개봉했는데도 시장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결정적인 원인으로는 역시나 볼 만한 영화가 적었다는 점이 지목된다.

중국 매체들이 기대작으로 꼽았던 영화들은 일제히 흥행에 실패했다. 거장 장이머우 감독의 첩보영화 ‘벼랑 끝에서’와 유명 배우 량자후이가 주연한 범죄소탕영화 ‘추호금룡’은 2위와 3위로 밀렸다. 한국 영화를 리메이크한 로맨틱 코미디 ‘너의 결혼식’이 뜻밖의 1위에 올랐다.

한때 흥행 보증수표로 통하던 ‘애국주의’가 대중의 공감을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 영화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운 ‘전랑2’(2017년)를 필두로 중국에선 최근까지 애국을 내세운 민족주의 영화가 대세였다. ‘벼랑 끝에서’는 1930년대 일제 치하의 만주에서 활동한 공산당 스파이를 소재로 삼은 영화다. ‘추호금룡’은 홍콩 범죄조직을 소탕하는 중국 공안(경찰)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이런 애국주의 영화들이 이번에는 기대에 못 미친 것이다.
세계무대서 고립되는 中 영화
영화는 체제를 옹호하는 수단으로 자주 사용돼 왔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도 영화를 대중 선동 전략으로 활용해 왔다. 이번 연휴에 맞춰 개봉한 12편 중 11편이 중국 영화라는 점이나, 반체제 인사로 분류돼온 장 감독이 차기작마저도 6·25전쟁 당시 중공군 스나이퍼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를 선택한 걸 보면 공산당의 의도는 더욱 노골화하고 있다. 한한령(限韓令)을 풀지 않는 이유가 영화를 비롯한 대중문화 장악력을 강화하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중국 국민이 언제까지 애국주의에 열광할 것인지는 미지수다. 중국판 넷플릭스로 불리는 아이치이나 요쿠에는 이미 청년실업이나 양극화 같은 중국의 현실적 문제를 다룬 드라마들이 대중의 공감을 얻어가고 있다. 중국인 클로이 자오가 아시아 여성으로서 첫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다는 소식은 정부가 차단했음에도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중국에선 애국주의 영화들이 냉전시대 미국 영화 ‘람보’와 다를 바 없다는 항변도 나온다. 하지만 정부가 애국주의를 강제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과도한 애국주의는 이미 세계 무대에서 중국을 고립시키고 있다. 중국 내에서 애국주의에 대한 반작용이 나타나지 않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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