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왜 대통령이 되려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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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1-05-12 00:50   수정 2021-05-12 00:52

[이학영 칼럼] 왜 대통령이 되려는 겁니까

‘중진국 함정’은 얼마 전까지 대만에 따라붙는 단골 수식어였다. 고속성장을 거듭하며 ‘아시아의 용(龍)’으로 갈채 받던 나라가 1980년대 후반 이후 기력을 잃었다. 두 자릿수를 넘나들던 성장률이 2000년대 들어서는 4% 아래로 떨어졌다. 포모사 에이서 등 간판기업들이 생산기지를 중국으로 옮기면서 산업 공동화(空洞化)가 가속화한 탓이 컸다. 2001년 12월, 그 현장을 취재하고 돌아와서 쓴 기사의 제목이 ‘추락하는 용(龍), 고장 난 경제’였다.

타이베이의 대형 서점에 들렀다가 대만 경제의 중국 예속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장면과 마주친 기억이 지금도 뚜렷하다. 상하이어·광둥어·푸젠어 등 대륙 방언 교재가 영어 일본어 등을 밀어내고 ‘외국어’ 학습서적 코너의 목 좋은 곳을 차지하고 있었다. 중국 곳곳으로 이전한 자국 기업에서 일자리를 얻기 위해 별개 외국어와 다를 게 없는 대륙 방언 공부에까지 매달려야 했던 대만인들의 현실을 목격했다.

그랬던 대만 경제가 요즘 눈부시게 부활하고 있다. 3년 전부터 성장률이 한국을 앞질렀고, 올해는 주요국 중 가장 높은 성장(5~8%)을 달성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세계 최대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 업체인 TSMC를 비롯한 기업들의 맹활약 덕분이다. TSMC는 세계 시스템반도체 시장의 절반 이상을 장악하면서 대만인들에게 안정된 고소득 일자리를 쏟아내고 있다. 그 뒤를 세계 4위 파운드리 기업인 UMC 등이 떠받치고 있다.

이들 기업이 대만에 기여하는 것은 경제 분야만이 아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등 서방국가들이 대만을 중국의 침략 위협으로부터 지켜내겠다는 의지가 갈수록 확고해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TSMC 때문”이라는 내용의 커버스토리 기사를 최근(5월 1일자) 보도했다. “세계 최첨단 반도체의 84%를 수탁생산해내고 있는 TSMC가 중국의 대만 침공으로 조업을 못하게 되면 글로벌 전자산업 전체가 멈춰 설 게 뻔한데, 어떻게 그냥 놔둘 수 있겠는가.”

대만에 이런 대반전(大反轉)을 안겨준 TSMC를 얘기할 때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게 있다. 국가 지도자들이 나라의 미래를 내다보고 설립을 주도했다는 사실이다. 1987년 장징궈(蔣經國) 총통과 그의 뒤를 이은 리덩후이(李登輝) 부총통 등 지도자들이 시스템반도체산업의 가능성에 주목하고는 당대 최고의 해외 과학기술자들을 귀국시켜 설립한 회사가 TSMC다. ‘대만반도체제조회사(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국력을 총결집한 국민기업으로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 2000년 선거에서 만년 야당이었던 민주진보당이 리덩후이의 국민당을 누르고 집권한 이후에도 TSMC 등 첨단 기업 지원만큼은 공통의 최우선 국정과제로 이어받았다. 정파를 뛰어넘어 대만 전체를 ‘실리콘 섬’으로 만들겠다는 청사진까지 내걸고 기업들에 힘을 실어줘온 게 열매를 맺기 시작한 것이다.

대만의 이런 변신과 도약을 보면서 한국의 정치인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을 새롭게 이끌어나갈 차기 대통령선거가 10개월 앞으로 다가온 시점이기에 더욱 그렇다. 유감스럽게도 대권 도전을 선언한 정치인 가운데 대만 지도자들 같은 미래 비전의 경략가(經略家)를 찾아보기 어렵다. 집권당의 ‘빅3’로 불리는 유력 주자 3인은 공식 출마선언을 하기도 전부터 복지정책 공약을 쏟아내기에 정신이 없다. ‘기본소득’ ‘신복지제도’ ‘사회적 상속’ 등 이름은 제각각이지만 하나같이 각계각층에 온갖 명목의 수당과 지원금을 퍼주겠다는 내용 일색이다. 야당은 아직 이렇다 할 후보의 윤곽을 드러내지 못한 채 어떤 정책을 내놓겠다는 것인지 오리무중이다.

지난 몇 년간 팽창일로를 치달아온 복지 포퓰리즘 정책으로 인해 국가재정이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세금을 더 쓰고 빚을 더 내서까지 선심을 더 베풀겠다고 할 뿐, 세금 수입을 늘리기 위해서라도 기업과 시장경제를 어떻게 활성화시키겠다는 비전을 내놓지 않는 정치는 무능·무책임을 넘어 비열하다. 대통령에 당선되기 위한 책략이 아니라, 대통령에 당선된 뒤 어떻게 나라를 일으킬 것인지를 고민하는 대권주자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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