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식물원 '녹색 매력'에 흠뻑…1000만명이 찾았다

입력 2021-05-12 15:03   수정 2021-05-12 15:05


“로즈마리여, 사랑을 기억할 수 있게 해주오.”

서울 강서구 마곡동 서울식물원 온실 지중해관, 향기를 뿜어내는 로즈마리 앞 푯말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에 나오는 대사가 적혀 있다. 연인 햄릿이 실수로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오필리어가 실성한 채 불렀던 노래 구절이다.

12일 서울식물원에서 만난 김민영 씨(38)는 “로즈마리 앞에서 한참 동안 감성에 젖어 있었다”며 “도심에서 이렇게 많은 식물과 꽃을 보고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공간이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소확행’(일상에서 느끼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고 말했다.

2018년 10월 임시 개방을 시작한 서울식물원이 운영 2년6개월 만에 누적 방문자 1000만 명을 넘어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방문자가 오히려 더 늘었다. 여의도공원의 두 배가 넘는 50만4000㎡ 면적에 야외 정원과 온실, 호수 등이 있는 서울식물원은 일상에 지친 도시인들에게 ‘녹색 힐링’ 명소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도심 속 식물원, 코로나 이후 방문자 급증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식물원 누적 방문자는 지난 4월 기준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임시 개방했던 6개월(2018년 10월~2019년 4월)간 256만 명이 방문한 데 이어 2019년 5월 정식 개방 후 750만 명 이상이 다녀갔다. 하루평균 1만2500명, 월평균 30만 명이 서울식물원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서울식물원의 방문자 1000만 명 달성은 예상 밖의 흥행이었다. 식물원이 문을 연 이후 줄곧 근무해온 정수민 서울식물원 전시교육과 주무관은 “정식 개방 1년도 안돼 코로나19가 확산해 행사와 전시가 취소됐고 상당 기간 휴관에 들어갔다”며 “그럼에도 많은 시민이 야외 공원을 중심으로 찾아와 올 3월에는 월 방문객 50만 명대를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서울식물원 방문자는 되레 늘었다. 식물원 개방 후 지난해 2월까지 약 10개월간 총 241만6000명, 월평균 24만1600명이 방문했는데, 코로나19가 확산된 지난해 3월부터 올 3월까지 13개월간 방문자는 총 480만6600명, 월평균 36만9700명으로 급증했다.

긴 이동거리 없이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도심 내 공원, 코로나19 이후 쌓여 있던 ‘집콕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탁 트인 자연. 이 같은 공간에 대한 도시인들의 갈증을 서울식물원이 상당 부분 풀어주는 역할을 한 것이다.

특히 산책과 걷기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서울식물원 방문자가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0년 국민여가활동조사에 따르면 가장 만족한 여가활동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산책 및 걷기’가 23.5%(복수응답)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TV시청(23.1%), 친구 만남(20.2%), 쇼핑·외식(18.7%), 영화관람(18.1%)보다 많았다.

플랜테리어(식물 활용 인테리어), 가드닝(정원가꾸기) 등으로 식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서울식물원 인기의 배경이다. 지난해 롯데마트 가드닝 상품군 매출은 전년 대비 18.7% 늘었다.
아시아 최고 식물원 목표
서울식물원은 국내 최초의 도심형 식물원이다. 도시인들이 일상 속에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공원. 그리고 식물을 전시하고 교육하는 식물원. 이렇게 두 공간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보타닉 공원’이다.

밑그림은 2013년 만들어졌다. ‘서울에 남은 마지막 대규모 미개발지’로 불렸던 마곡지대에 첨단산업지구를 세우고 그 한가운데 역사·생태·문화를 융합한 식물원을 조성하는 가칭 ‘서울화목원 프로젝트’다. LG·롯데·코오롱 등 주요 대기업이 연구개발(R&D) 센터를 마곡에 이전하면서 제공한 공공기여금이 서울식물원 조성을 위한 마중물로 쓰였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는 2015년 11월 서울식물원 조성공사에 착공해 3년 만인 2018년 10월 준공했다. 사업비 총 2156억원이 투입됐다.

서울식물원이 만들어지기 이전엔 서울에 버젓한 식물원 하나 없었다. 과거에 작은 규모의 남산식물원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2006년 철거됐다. 반면 세계 각 도시에선 식물원이 문화적 척도를 평가하는 대상이자 관광명소로 급부상하고 있었다. 2012년 싱가포르가 마리나베이에 100만㎡에 달하는 대형 식물원인 ‘가든스바이더베이’를 조성해 관광객을 끌어모았다. 미국 뉴욕식물원, 프랑스 파리식물원, 영국 위슬리가든 등 주요 선진도시의 식물원은 이미 관광·문화 거점으로 자리잡아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서울식물원은 시민들에게 휴식과 여가 공간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음 단계로의 도약을 준비할 계획이다. 이근향 서울식물원 전시교육과장은 “해외 유명 식물원은 살 만한 도시, 아름다운 도시를 만드는 기능을 해내고 있다”며 “영국 식물원인 에덴프로젝트를 벤치마킹해 지역사회의 생태계와 교육, 문화를 바꾸는 ‘녹색 활력소’로의 변신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서울식물원은 명실상부 아시아 최고의 식물원으로 성장하겠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더 많은 시민에게 교육과 체험 시간을 제공할 수 있는 특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한강 하류 생태계를 안정화하는 사업에도 참여할 계획이다. 보유식물은 현행 3600종에서 2026년 6000종, 2028년 8000종으로 대폭 확충하는 것이 목표다. 한정훈 서울식물원장은 “생활 속 식물문화를 확산하는 역할을 강화할 것”이라며 “세계 유수 식물원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표 식물원으로서 도약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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