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연·정진·배헤윰의 신작…현대미술 최전선을 만나다

입력 2021-05-12 17:23   수정 2021-05-12 23:51


사방이 흰 전시장에 들어서면 어디선가 속삭임이 들려온다. 천장에서 내려온 여섯 개의 작은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는 마치 바다 건너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오는 듯한 느낌이다. 영어와 그리스어 등 여러 언어로 중얼거리는 말과 새소리, 악기 소리 등이 뒤섞여 들린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를 애써 해석하며 전시장에 서 있노라면 낯선 곳에 떨어진 듯한 고독을 직면하게 된다. 박주연(49)의 사운드 설치작품 ‘그녀가 노래를 말할 때’이다.

한국 현대미술의 최전선을 보여주는 세 전시가 다음달 6일까지 열린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아뜰리에 에르메스의 박주연 개인전 ‘언어 깃털’과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의 정진 개인전 ‘WHAT HAPPENED?’, 배헤윰 개인전 ‘플롯탈주’다.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는 박주연의 설치작품 5점을 만날 수 있다. 그는 청소년기부터 지금까지 영국 런던에서 활동 중이다. 런던 골드스미스대 조형예술학과에서 학사와 박사학위를, 로열홀러웨이대에서 영문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어릴 때부터 타국 생활을 하며 언어와 문학의 의미, 외국인으로서의 정체성 문제 등에 천착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작가의 개인전이 국내에서 열린 건 8년 만이다.

‘그녀가 노래를 말할 때’는 소통을 돕는 도구인 언어가 타인과 자신을 갈라놓는 장치가 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담은 작품이다. 바닥에 설치된 ‘곡선의 길이’(사진)는 커다란 색종이를 오려 만든 듯한 금속 오브제 여섯 점이다. 일정 거리 이상 떨어져야 하는 코로나19 방역 지침에서 착안한 작품으로, 완결되지 않은 모호한 형상을 통해 타인과의 거리를 재면서도 정확한 간격을 알 수 없어 생기는 혼란을 표현했다. 벽에 12m 길이로 붙어 있는 원고지 260장에는 갖가지 색의 원들이 마치 글씨처럼 띄엄띄엄 칸을 채우고 있다. 의미 없는 소통을 형상화한 ‘열 셋 챕터의 시간’이다.

금호미술관에서는 신진 작가들의 개성 넘치는 작품들을 접할 수 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이 매년 젊은 작가들을 발굴해 전시를 지원하는 ‘금호영아티스트’ 프로그램에 선정된 정진(37)과 배헤윰(34) 작가다.

정진은 미술관 2층에서 꿈속 풍경과 만화 캐릭터, 효과선과 말풍선 등이 뒤섞인 추상회화 25점을 선보인다. 여러 낯익은 소재를 차용해 인간 존재의 불안을 재치있게 표현한 작품들이다. 3층으로 올라가면 배헤윰이 강렬한 색채와 면으로 구성한 색면추상 16점을 만날 수 있다. “사진 등 디지털 이미지가 범람하는 세상에서 그림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다가 색면추상에 이르게 됐다”는 설명이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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