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부인의 '도자기 테크', 끝물일까 [김동욱의 하이컬처]

입력 2021-05-13 06:15  


"최근 고객으로부터 매입한 수입 도자기입니다. 웨지우드, 리차드지노리, 로얄코펜하겐 등등입니다. 버블시기에 붐이 일었던 유럽의 유명도자기들입니다. 비록 고급품이 아니라 실용적인 시리즈지만 저희가 매입했습니다. 신품뿐 아니라 조금 사용한 제품도 매입 가능합니다. 다른 중고 업체에서 매입을 거절당하거나, 낮은 가격을 받아들이기 힘드신 분들은 저희 가게에 문의 주십시오.…"(2014년도 일본의 한 중고 명품 거래업체 홈페이지에 게재된 안내문)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 일본 거품경제 시기는 일본 국내 도자기 업체뿐 아니라 유럽의 주요 명품 도자기 업체들로서도 황금기였습니다. 눈높이가 높아진 일본의 소비자들은 앞다퉈 유럽의 브랜드 도자기들을 사들였습니다. 마이센, 로얄코펜하겐, 로얄알버트, 웨지우드, 헤렌드, 민튼, 포트메리온, 에인슬리, 리차드지노리 등등…. 19세기 이전의 '골동품'에 가까운 명품 도자기들도 대거 수입됐습니다.


주요 출판사들도 '유럽 브랜드 도자기 도감'(고단샤, 1988년)이나 '아름다운 양식기의 세계'(고단샤, 1985년) 같은 호화 장정의 서적들을 내놓으며 소비자들을 명품 도자기의 세계로 인도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유명 수입 도자기뿐 아니라 노리다케 등 일본 도자기 업체들도 앞다퉈 고급 식기류와 찻잔 제품을 선보였습니다. 일본의 전통적인 도자기 산업 밀집 지역인 사가현과 나가사키현의 주요 업체들도 고급 디자인의 고가 제품군을 대폭 늘렸습니다.


하지만 거품이 꺼지면서 애써 사들였던 명품 도자기들은 애물단지 신세가 됐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신품 도자기들을 아무도 구매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일본 시장 비중이 높아졌던 리차드지노리 같은 업체는 이때의 충격을 결국 벗어나지 못하고 2013년 파산하기에 이릅니다.

동시에 중고품 시장도 얼어붙었습니다. 일본인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일부 모델의 경우, 일본에 들어온 물량이 워낙 많았고 중고시장에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탓에 중고 업자들은 구매는커녕 눈길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중고시장을 향한 '공급'은 계속 늘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유품으로 나온 식기를 정리하려 하거나, 은퇴 세대가 물건을 내놓는 물건이 꾸준히 나왔던 것입니다.

일본 국내 도자기 업체들은 잇따라 도산으로 몰렸습니다. 그 결과, 거품이 꺼진 지 30년이 다 돼가는 2018~2019년까지도 거품 시절 생산했던 고급 도자기 재고 물량을 싼값에 판매하는 온·오프라인 특별전이 지속해서 열리기도 했습니다.

'명품'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고급 도자기들은 그야말로 애물단지가 됐습니다. 최근 일본의 40~50대에게 해외 명품 도자기는 '중학교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추억의 아이템이라던가, 단카이 세대(1947~1949년생) 이상 윗세대의 따분한 취향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2010년대 이후 명품 도자기 수요가 다소 되살아나긴 했지만, 여전히 거품경제 시절에 비할 수준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나마 운영되는 중고 명품 가게들은 △사용하지 않은 제품을 우선 내놓고 △구입 후 쓰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면 곧바로 중고시장에 내놓아야 하며 △세트 제품은 풀세트를 갖춰야 하고 △깨끗하게 청소하고 수선해서 제품을 내놓으라는 등등 주문 사항을 줄줄이 덧붙이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명품 도자기 시장의 '빛' 바랜 지 오랜 상황과 대조적으로 최근 한국에선 장관 후보자가 부인의 유명 브랜드 도자기와 관련한 구설로 사회적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가 과거 영국 대사관 공사참사관으로 근무하다 귀국할 당시 배우자가 이삿짐을 통해 해외 유명 브랜드 도자기를 대량으로 반입하고 국내에서 판매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입니다. 영국산 도자기를 1250여 점, 수천만 원어치나 들여오면서 별도의 세관 신고도 하지 않았다는 것인데요. 개인의 취미나 일상생활용이라고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이란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명품 도자기에 대한 사랑도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점은 거품경제 시절 일본인들이 잘 보여줬습니다. 박 후보자가 최종적으로 장관직에 오를지는 알 수 없지만, 명품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화를 부른 또 하나의 사례로는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김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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