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랑성은 강화도 남동쪽 정족산(해발 222m)과 주변의 산봉우리를 이어 축조한 산성이다. 단군의 세 아들인 부소, 부우, 부여가 쌓았다고 해서 삼랑성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가마솥을 엎어놓은 것처럼 산봉우리 세 개가 다리 모양으로 우뚝하다 하여 정족산성(鼎足山城)이라고도 불린다. 전등사 북문을 따라 성곽 위로 올라서니 강화읍 방향으로 드넓은 땅들이 펼쳐진다. 남쪽으로는 영종도와 신시모도·장봉도가, 북쪽으로는 진강산·고려산 봉우리가 보인다. 함 시인은 “정족산성이 병인양요(1866년) 당시 양헌수 장군이 이끄는 500여 명의 조선군이 프랑스군과 전투를 벌여 물리친 곳”이라고 설명했다.
성곽길을 따라 내리막이 보인다. 남문 쪽으로 내려가면 전등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길을 내려가던 중 시인은 발길을 멈췄다. 수목장을 지낸 시인의 스승이 묻힌 나무가 있기 때문이다. 나무를 붙잡고 시인은 잠시 상념에 잠겼다.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스치고 지나갔다.
‘거대한 반죽 뻘은 큰 말씀이다/쉽게 만들 것은/아무것도 없다는/물컹물컹한 말씀이다/수천 수만 년 밤낮으로/조금 무쉬 한물 두물 사리/소금물 다시 잡으며/반죽을 개고 또 개는/무엇을 만드는 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함부로 만들지 않는 법을 펼쳐 보여주는/물컹물컹 깊은 말씀이다’
워낙 이름 내세우기를 싫어해서 시비 제작을 극구 사양했지만 강화라이온스클럽에서 함 시인과 실랑이 끝에 수직이 아니라 수평 형태의 시비를 제작했다. 사실 동막해변은 함 시인이 인생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다. 강화도에 처음 자리잡고 13년이나 살았던 동네도 동막해변 인근이다. 눈만 뜨면 보이는 것이 바다였고 갯벌이었다. 그는 동막해변 갯벌에 관한 시와 산문을 여러 편 썼다.
갯벌에는 칠게, 가무락, 고동 등 다양한 갯벌 생물이 서식한다. 시인은 “온갖 생명을 품고 있는 펄의 말랑말랑한 힘이 도시의 수직성과 문명의 딱딱함을 어루만져 조화를 이루게 한다”고 했다. 동막해변을 찾은 시인의 눈은 어느새 깊어졌다. 먼바다 끝에서 파도가 일렁였다.
내가면 구하리에 있는 이루라책방은 동화작가 김영선 씨가 운영하는 북스테이 전문 책방이다. 아동서부터 소설·경제·문학 등 다양한 책이 3층 높이의 책장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1시간당 1팀, 4인 이하로만 예약을 받아 방문객이 책방 전체를 온전히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숙박 공간을 글램핑장처럼 꾸며놓아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다고 한다.
책방은 아니지만 강화미술도서관도 이채롭다. 미술, 사진과 관련된 서적과 도록 1000여 권을 갖추고 있다. 20여 년간 미술 전문 기획자로 활동한 최유진 관장은 “미술에 관해 공부하고 싶지만 체계적으로 정리된 전문 공간이 없는 현실에 도움을 주고 싶어 미술관을 개관하게 됐다”고 했다. 미술관 한쪽에 전시된 미국의 전설적인 사진작가 만 레이의 오리지널 작품과 은판 사진도 감상할 수 있다.
■ 함민복 시인은
1988년 세계의문학을 통해 ‘성선설’로 등단한 중견 시인이다. 김수영문학상, 박용래문학상, 윤동주 문학대상, 애지문학상을 받았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말랑말랑한 힘》 등의 시집과 《눈물은 왜짠가》 《섬이 쓰고 바다가 그려주다》 등의 산문집을 썼다.
강화=글·사진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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