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대출규제에 혼인신고 늦추는 청년들

입력 2021-05-13 17:27   수정 2021-05-14 10:05

“신혼집 대출받겠다고 혼인신고도 못하는 심정이 어떻겠어요.”

금융위원회가 지난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연 금융발전심의회 청년특별위원회 첫 회의는 주택 관련 대출 규제에 대한 성토장이 됐다. 청년특위(금발심 퓨처스)는 금융위가 다양한 생업에 종사하는 20~30대 청년 18명을 위촉해 경제·금융 현안에 대한 의견을 듣고 향후 정책에 반영하기 위한 특별기구다.

‘주택금융과 주거사다리’를 주제로 열린 이날 회의에서 한 청년특위 위원은 “대출 규제를 피하기 위해 결혼식을 올리고도 혼인신고를 미루는 분들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5억원짜리 주택을 구매하려면 현재 담보인정비율(LTV) 규제상 2억원(40%)까지밖에 대출받을 수 없다. 그러나 혼인신고를 늦춰 신부 명의로 전세자금대출을 받고 신랑이 이 자금으로 집을 매수하면 4억~4억5000만원을 조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위 위원들은 서민·실수요자에 대한 LTV 우대 조치도 소득·주택가격 요건이 지나치게 엄격해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실제 정부는 현재 연소득 8000만원 이하(생애 최초 구입은 9000만원 이하)인 무주택자가 투기지역 및 투기과열지구에서 6억원 이하 주택을 살 때 LTV를 10%포인트 우대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신규 대출자 가운데 이 같은 혜택을 받은 비율은 전체의 7.6%에 그쳤다. 위원들은 또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뒤 6개월 이내 해당 주택에 실거주하도록 한 조항도 현실적으로 세입자가 있는 주택은 아예 구매할 수 없게 돼 대상 폭을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했다.

이처럼 대출 규제가 지나치게 까다롭고 복잡해 제도를 잘 모르는 무주택 청년들이 대출을 받기 어려운 반면, ‘LH 사태’에서 보듯 일부 투기꾼은 법망을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이익을 챙기고 있다며 각종 불법 행위에 대한 엄벌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이날 회의에서 “현재 소득수준이 낮은 사회 초년생들에게 의도치 않은 불이익이 발생하는 것은 안타깝다”며 “앞으로 청년층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세심한 정책을 만들어가겠다”고 약속했다.

금융위가 늦었지만 지금까지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외돼 온 청년층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는 자세는 충분히 박수를 보낼 만하다. 문제는 가계부채 증가율은 줄이면서도 저소득·실수요자에 대한 금융 지원은 확대하겠다는 식의 다소 모순적인 정책이 이처럼 까다롭고 복잡한 규제를 탄생시킨 근본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청년들이 혼인신고도 못하게 하는 대출 규제를 앞으로 어떻게 바꿔낼 수 있을지 은 위원장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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