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초선들의 반기…대통령 레임덕 징후인가 각본인가 [홍영식의 정치판]

입력 2021-05-16 10:32   수정 2021-05-16 11:37


2004년 17대 총선에서 승리한 열린우리당은 기세등등했다. 당 소속 의원 중 71%(108석)를 차지한 초선 의원들이 특히 그랬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풍’에 힘입어 당선됐다고 해서 ‘탄돌이’로 불린 이들은 대부분 이른바 ‘386(1960년대생의 30대, 80년대 학번)’ 운동권 출신으로 말발이 셌다.

정치 선배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총선 직후 열린 당선자 워크숍에서 한 재선 의원이 “초선 의원들의 군기를 잡겠다”고 하자 한 초선 의원은 “군기 잡겠다는 사람의 귀를 물어뜯겠다”고 되받아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초선 의원들이 천둥벌거숭이처럼 목소리를 낸다고 해서 ‘108번뇌’라는 말이 회자됐다.

이들은 국가보안법 폐지 법안, 사립학교법 개정안, 언론개혁법안, 과거사진상규명법안 등 이른바 ‘4대 개혁 입법안’을 밀어붙였다. 야당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공 드라이브를 주도했다. 일부 법안 내용에 대해선 당 지도부마저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지만 ‘386 초선’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견은 ‘해당(害黨)’ 행위로 몰아붙였다. 당내 계파 갈등까지 겹쳐 당 지지율이 급락했다.

열린우리당은 2004년, 2005년 재·보궐 선거에서 잇달아 패배하면서 과반 의석이 무너졌다. 2006년 실시된 4회 지방 선거에서 광역단체장 16곳 중 1곳만 건지는 참패를 기록했다. 2007년 대선에선 정권을 내줬다. 386 초선들의 외골수가 이런 결과를 초래한 단초가 됐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해 4·15 총선 승리 뒤 “열린우리당의 아픔을 깊이 반성해야 한다”고 한 것은 이런 전철을 다시 밟지 말자는 것이었다.

신예 의원들의 발언권이 센 또 하나의 사례는 ‘남원정’으로 대표되는 한나라당 시절이다. 남경필 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정병국 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의원은 2000년 나란히 한나라당 의원에 당선됐다. 당시 한나라당은 1997년 대선에서 패배한 뒤 쇄신 방향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한나라당은 이회창 전 총재의 주변을 둘러싼 하순봉·김영일·양정규 전 의원 등 이른바 7인방이 당을 쥐락펴락하고 있었다. 2002년 대선 패배 뒤 한나라당에 대선 자금 수사 후폭풍이 몰아닥쳤다.
‘탄돌이’ ‘남원정’, 초선 반란 대표적 예…성과는 엇갈려
‘차떼기 정당’의 오명을 뒤집어쓴 한나라당은 이 전 총재 측근 주류와 남원정 등 소장파들이 중심이 된 비주류가 충돌했다. 남원정이 소장파들을 이끌며 개혁과 세대교체를 거세게 요구하면서 소장·개혁파의 대명사가 됐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결국 남원정의 공세에 이 전 총재 측근들은 대부분 물러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비상대책위원장, 대표를 연이어 맡아 선거를 지휘했다. 박 전 대통령과 남원정은 전략적으로 제휴하고 협업했으며 총선에서 당은 구사일생했다.

2000년 16대 국회 이후 초선 당선자 비율은 평균 48% 정도 된다. 총선 한 번 거치면 절반 가까운 새 인물이 국회로 들어온다는 얘기다. 국회의 변화와 쇄신은 대체적으로 이들이 얼마만큼 의지를 갖고 총대를 메느냐에 달려 있다. 앞의 두 사례에서 봤듯이 성과를 거두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못한 때도 있다.

최근 들어 민주당 초선 의원들의 목소리가 거세다. 이들은 지난해 4월 21대 총선거 이후 이렇다 할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주류 친문 의원들이 당 여론을 장악하다시피해 왔기 때문이다. 지난 4·7 재·보궐 선거 참패 이유 중 하나인 규제와 세금 중과 위주의 부동산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내 당내 강경파 목소리에 묻혔다.

그러다가 지난 4·16 개각으로 지명된 임혜숙 과학기술부 장관, 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제자 논문 표절, 국비 지원 해외 세미나에 가족 동행, 영국산 도자기 밀반입 등 온갖 의혹이 제기된 게 다시 일어난 계기가 됐다. 부적격 여론이 높아졌음에도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4주년 회견에서 임명 강행 의지를 밝히자 단체로 정면 반박했다. 초선들의 반기·반란이란 표현도 등장했다. 지난해 총선 이후 좀체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박 후보자가 자진 사퇴 형식으로 물러남에 따라 이들의 목적은 일단 성공했다.

당내에서 이들의 이런 행동을 바라보는 시각은 상반된다. 민주당 비주류 중진 의원은 “친문 강성파들이 당을 장악하다시피 한 상황에서 초선 의원 40여 명이 뭉쳤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며 “이들이 당이 한 방향으로만 가고 한목소리만 나오는 것을 견제해 쇄신의 촉매제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번 초선들의 반기로 청와대와 당의 관계가 새로 정립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있다. 그간 민주당은 청와대에 따라가는 거수기 역할에 불과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송영길 신임 민주당 대표가 취임한 뒤 당 주도를 외치고 있어 역대 정권 임기 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듯이 당이 청와대 우위에 서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번 초선의 반기가 그런 단초를 마련했다는 해석도 있다.

문제는 결집 강도와 지속성이다. 이들은 지난 4·7 재·보궐 선거 직후 참패를 불러온 원인 중 하나인 부동산 대책 수정, 보완 목소리를 냈다가 강경파에 밀려 초장에 ‘진압’됐다. 초선 의원들 중 강한 리더십을 갖고 앞에서 견인하는 인물들이 크게 눈에 띄지 않는 것도 ‘반란’지속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다른 시각도 있다. 여당은 지난 1년간 온갖 법안들을 일방적으로 처리하는 입법 폭주를 일삼았고 대화와 협치보다 적폐 청산으로 상징되는 대립과 증오의 정치를 펴 왔다. 그런 결과가 재·보선 참패로 이어졌다. 여당이 그럴 때 초선들은 무엇을 하다가 대통령 임기가 1년 남은 이제야 목소리를 내느냐는 지적이다. 임기 말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자 뒤늦게 나선 것은 비겁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 자체가 대통령 레임덕 징후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임기 말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하고 여당에 반기를 든 현상은 역대 정권마다 봐 온 것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을 제외한 역대 대통령 모두 임기 말 소속 정당을 탈당했다.
“청와대도 당초부터 한 명 낙마 각오…초선이 퇴로 열어”
반기를 든 초선 의원 중 일부 친문 의원도 포함돼 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청와대와 여당 지도부, 초선 의원들 간 물밑 교감설도 나온다. 청와대도 여론의 흐름을 봐선 논란이 된 세 장관 후보를 모두 임명하기엔 당초부터 부담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청와대도 후보자들 내정 뒤 여러 의혹이 제기되면서 이번엔 한 명 정도는 낙마시키지 않을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다”며 “다만 여러 검증을 통과한 후보자를 단칼에 날릴 수는 없지 않느냐”고 했다.

이어 “문 대통령이 임명 강행 의지를 밝히고 여당에서 초선 의원들이 단체로 반발한 것을 빌미로 후보자를 자진 사퇴시키면 후보자의 체면도 살려주고 여론도 수렴하는 모양새가 되고 이게 최상이라고 본 것”이라고 했다. 미리 의도적으로 짜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각본대로 흘러간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초선 의원들이 반기를 들자 청와대가 곧바로 이를 수용한 것도 이런 측면에서 이해된다”고 했다. 초선 의원들이 청와대에 퇴로를 열어주었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친문 강경파를 견제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송 대표와 반기를 든 초선 의원들 간 암묵적인 전략적 제휴 관계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송 대표-초선 의원들과 친문 강경파들 간 긴장의 강도와 누가 우위에 서느냐가 여권의 권력 구도 향배의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홍영식 논설위원 겸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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