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작가 "한지에 오려붙인 신문…소통 단절 표현했죠"

입력 2021-05-16 17:51   수정 2021-05-17 03:05


신문이라는 매체는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언론인이나 언론학자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 떠올려봤을 법한 질문이다. 다만 신문사 건물에서 기자를 앞에 두고 말하긴 쉽지 않은 주제다. 그런데도 신라대 조형미술전공 초빙교수인 이건희 작가(57·사진)는 거침없이 말했다. “신문은 점차 사라지고 있으며 결국 화석화될 것이다.” 그는 직접 만든 한지 바탕 위에 신문지를 붙인 작품으로 이를 표현한다. 더욱 도발적인 사실은 그의 작품이 17일부터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층 한경갤러리에 걸린다는 점이다. 이날 개막하는 초대전 ‘텅 빈 물성과 꽉 찬 추상’에서다.

이번 전시에는 이 작가의 작품 23점이 걸렸다. 한지 바탕 위에 신문지를 오린 조각들을 배치한 추상 작품 19점과 이를 컴퓨터로 편집한 판화 4점이다. 매체의 변천으로 인한 소통의 단절이 주제다.

“사실 신문의 미래를 비관하거나 언론을 비판하려는 의도로 만든 작품은 아닙니다. 사회 변화에 맞춰 기존의 언어와 매체가 사라지고, 이로 인해 소통이 단절되면서 세대 간 간극이 커진다는 문제의식을 담았어요. 다만 신문이 이런 문제를 겪는 대표적인 매체이고, 여러 글과 다양한 색의 사진들을 담고 있어서 작품을 만들기엔 제격이라는 점을 고려했습니다.”

배경 역할을 하는 한지는 두께가 캔버스 천에 필적한다. 이 작가가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17호인 안치용 한지장에게 받은 원료를 가지고 직접 만든 한지다. 종이판에 종이죽을 부으면서 신문지 조각을 섞고 흔들면 대나무 숲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물속 수초가 너풀거리는 것 같은 모양이 완성된다. “대학 시절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마음속에는 늘 한국적인 소재를 다루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어요. 그러던 중 한지를 접하고 눈이 번쩍 뜨였지요. 지금은 작고하신 류행영 한지장(안치용 한지장의 스승)에게 무턱대고 찾아가 한지 만드는 법을 배웠어요.”

1차 작업을 마치면 종이를 햇빛에 말린 뒤 종이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짧은 글을 수없이 적는다. 빨리 마르는 아크릴 물감의 특성이 마치 빠르게 생멸하는 카카오톡 등 현대적인 매체의 특성과 비슷하다는 설명이다. 글이라고 하지만 보는 사람으로서는 단순히 색색의 선이다. 발화자에게는 의미가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인식 불가능한 ‘이미지’를 통해 소통의 문제를 또 한 번 제기하는 것이다.

이렇게 완성된 작품은 심각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편안한 느낌을 준다. 종이 위에 인위적으로 붙이지 않았기 때문에 모양과 질감이 자연스럽다. 신문지에서 오려 붙인 다양한 조각과 아크릴 물감으로 적은 글의 조화는 최신 그래픽 편집 프로그램으로도 만들기 어려운 색채의 향연을 선사한다. 흰 한지 바탕은 동양적인 여백의 미와 편안함을 전한다.

가로 240㎝, 세로 122㎝의 대작 ‘글을 쓰다’가 이런 매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Talking Paper(말하는 종이)’ 연작은 사각형 도상의 중첩을 통해 높게 쌓인 책이나 신문의 이미지를 표현했다.

“종이 매체로서의 신문의 힘은 약화되더라도 뉴스를 전한다는 매체의 본질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신문만의 매력이 더 부각될 수도 있죠. 이메일과 SNS가 나오면서 편지를 손으로 적어 보내는 사람이 줄었지만, 손편지가 주는 따뜻함은 더 커진 것처럼요. 한지에 살린 자연스러운 닥나무 질감과 신문지 조각 속 광고모델의 미소, 기사의 짧은 문장 등을 통해 이런 희망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전시는 6월 11일까지.

글=성수영 기자/사진=김범준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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