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적으로 보면 기업이 보유한 달러예금이 636억9000만달러로 17억7000만달러 증가했다. 가계는 180억9000만달러로 6억6000만달러 늘었다. 달러예금 보유 규모가 늘어난 것은 달러가치가 지난달 큰 폭으로 떨어진 것과 맞물린다다. 지난달 말 원·달러 환율은 1112원30전으로 3월 말(1131원80전)보다 19원50전이나 하락했다. 달러가치가 떨어지자 가계는 '저가매수'에 나섰고 기업들은 수출대금으로 받은 달러를 원화로 환전하지 않고 금고에 쌓아뒀다.
자산시장이 과열 양상을 보이는 만큼 달러를 비롯한 안전자산 비중을 늘리려는 유인도 포착된다. 최근 자산시장은 모든 가격이 치솟는 '에브리싱 랠리 마켓'(Everything Rally Market)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오름세를 보이는 자산가격을 놓고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은 "일부 자산시장에 거품(frothy)이 꼈다"고 언급했다. 최근 Fed 금융안정보고서(2021년 5월)도 자산시장 거품 우려를 내비췄다.
지난달 미국 소비자물가 증가율은 4.2%(전년비)로 2008년 9월(4.9%) 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인플레이션 우려로 미국 S&P500지수는 지난주(5월10~14일)에 1.4% 하락했다. 반면 미 10년물 국채금리는 지난 14일 연 1.635%로 지난 7일(연 1.579)에 비해 0.056%포인트 상승했다.
미국에서 불거진 인플레이션 우려는 점점 퍼져가고 있다. 한은 외자운용원이 이날 발표한 '국제금융시장 동향 및 주요이슈' 자료를 보면 주택가격 상승 속도가 빠른 데다 임금 인상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도 상당하다. 미국 소비자물가 지표의 구성항목 가운데 가장 비중이 높은 주택비(shelter prices·비중 33%)는 오름폭이 커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지난 4월 미국 183개 대도시 가운데 182개 지역의 주택가격이 상승했다. 주택가격이 상승한 도시의 89%는 1년 전보다 10%대 넘게 뛰었다.
경기회복으로 노동 수요가 늘면서 임금이 뛰고, 임금을 비롯한 생산비 상승을 반영해 제품값을 높일 것이라는 분석도 힘을 얻고 있다. 제품값이 뛰면 실질임금을 유지하기 위해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다시 높아진다. '임금 상승→제품값 상승→임금 상승'으로 이어지는 인플레이션 악순환 우려가 커진 것이다. 미국 재무부 장관을 지낸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도 최근 "임금 상승 등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졌다"고 평가했다.
미국 개인투자자들도 벌써부터 주식시장에서 돈을 빼고 있다. 미국 펀드 분석 업체인 EPFR에 따르면 개인은 지난 5월 첫째주, 둘째주에 기술주 펀드에서 자금을 회수했다. 미 증시에서 개인투자 브로커(E트레이드, TD, 로빈후드 등) 거래비중도 지난해 12월 28%에서 올 3월 17%로 줄었다. 그만큼 개인 투자자 거래규모가 줄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달러 등 안전자산 수요는 더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Fed가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등 통화정책을 긴축적으로 펼 가능성이 높다. 고금리를 좇는 투자금이 미 국채를 사들이기 위해 달러로 환전하려는 수요가 커질 수 있다. 신흥국 시장으로 흘러들었던 미국 기관투자가의 자금이 본국으로 돌아오면서 달러 매수 수요는 커질 수 있다는 뜻이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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