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1억7000만원 받아도 살기 어렵다는 이 '동네' [김재후의 실리콘밸리101]

입력 2021-05-19 10:00   수정 2021-05-19 14:29



안녕하세요. 김재후 한국경제신문 실리콘밸리 특파원입니다. 5회부터 실리콘밸리에 취직할 수 있는 방법과 여기 기업의 연봉에 대해 자세히 전해드렸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높은 연봉을 받는 실리콘밸리 직장인들도 사실은 살기 빠듯하다는 얘기들을 많이 하는데, 그 사정에 대해 대신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한국의 대다수에겐 고액의 연봉임이 분명하지만, 현지 사정도 있으니까요. 일단 미국의 1인당 GDP는 6만8000달러 수준으로, 한국(약 3만2000달러)보다 2배 이상 높습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개별 직원들의 인터뷰를 허락하지 않아 취재 대상을 익명으로 대신하는 점 이해 바랍니다.
초봉 15만달러...팀장급 40만달러라지만
7~8회를 통해 살펴본 대로, 구글 애플 테슬라 페이스북 등 실리콘밸리 빅테크 기업들의 엔지니어 초봉(학사 출신)은 대개 15만달러에 형성돼 있습니다. 요약하면, 10만달러를 베이스 샐러리로 받고, 5만달러어치 주식을 매년 받는 방식의 계약을 통해서입니다. 이곳에선 익숙한 급여 방식으로, 이를 RSU(Restricted Stock Units)라고 합니다. 스톡옵션과 달리 계약을 통해 매년 자사주식을 무상으로 주는 것입니다. 15만달러면, 한국 돈으로 약 1억6850만원 정도인데, 학사 출신의 초봉으로는 매우 많은 금액인 건 사실입니다. 여기에 석사나 박사 출신의 경우엔 10%씩 더 높아집니다.

이들이 시간이 흘러 매니저(팀장급)이 되면, 연봉은 더 뜁니다. 능력에 따라 각자 연봉을 계약하는 방식이므로, 20만달러를 받는 팀장도 있고 50만달러를 받는 팀장도 있다고 합니다. 물론 베이스 샐러리보다 주식으로 더 많이 받는 구조라는 점은 공통점이 있고요. 50만달러면, 한국 돈으로는 약 5억7000만원입니다. 연봉이 6억원에 가깝다고 생각하면, 월급으로 따지면 5000만원인 셈입니다. 웬만한 한국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연봉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 빅테크 기업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을 만나보면, 빠듯하게 산다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흔히 말하는 '죽는 소리'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살다보면 그 얘기도 어느 정도 사실에 가까울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 이유의 첫번째는,

높은 집값과 월세
바로 실리콘밸리의 집값입니다. 실리콘밸리를 포함하는 '베이 에어리어'의 집값은 미국 내에서도 비싸기로 유명합니다. 보스턴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등의 집값 수준을 넘은 지 오래입니다. 뉴욕의 중심지인 맨해튼과 비슷한 수준이고, 일부 지역은 그곳보다 비싼 경우도 있습니다. 보통 중산층 가족이 많이들 사는 실리콘밸리의 팰로앨토에 위치한 방 4개, 차고 2개짜리 2층 목조주택의 경우 약 300만달러(34억원)에 육박한 가격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이 정도 집은 텍사스나 네바다 애리조나 오리건주 등의 인구가 비슷한 도시에선 50만달러(6억원) 아래에서도 살 수 있습니다. 팰로앨토나 쿠퍼티노 등은 이미 동양인들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를 차지하던 백인들은 그 옆인 로스 가토스라는 도시로 많이 이동을 했는데, 여기 집값은 쿠퍼티노나 팰로앨토의 집값보다 더 비싸졌습니다. 이곳 중산층들이 사는 집(미국 기준)은 500만달러 안팎에 형성돼 있습니다.

집값이 비싸니 당연히 월세도 비쌉니다. 샌프란시스코의 원룸(여기선 스튜디오라고 합니다)의 월세는 평균 3000달러 정도 됩니다. 350만원의 월세가 매달 나가게 됩니다. 따라서 룸메이트를 구해 같이 살거나 집주인이 소파에서 자고 방은 재월세(서브렌트라고 합니다)를 내준 세입자가 차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샌프란시스코 뿐 아니라 베이 에어리어 대부분이 비슷한 상황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지난해 하반기와 올 상반기엔 다소 집값(월세) 상승세가 주춤해지긴 했지만, 백신이 보급된 올 들어선 다시 뛸 조짐도 보이고 있습니다.

최고 수준의 물가
부동산 가격이 비싸면, 물가도 자연스레 오릅니다. 여기 직장인들도 자주 외식을 하지 못할 만큼 식당 음식값도 비쌉니다. LA와 비교하면 통상 1.5배 정도 더 비싼 것 같다는 게 여기 주민들의 공통된 얘깁니다. 그렇다고 장바구니 물가가 싼 것도 아닙니다. 서울과 비교하면 미국에서 유제품 채소 과일 고기 등의 값은 싼 편이지만, 실리콘밸리에선 딱히 그렇지도 않습니다. 세이프웨이나 코스트코 월마트 등 대형마트의 채소나 과일, 우유 가격 등은 같은 주의 대도시인 로스앤젤레스보다 10~20%씩 가격이 높습니다. 예컨대 1갤런(약 3.79리터) 우윳값은 4.49달러인데 로스앤젤레스에선 3.75달러면 살 수 있습니다. 텍사스의 대도시인 휴스턴에선 3.08달러입니다.

당장 미국에선 필수인 자동차에 들어가는 기름값만 봐도 증명이 됩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18일(현지시간) 미국 전역의 주유소의 기름값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개스버디'란 앱을 보면, 실리콘밸리 지역의 평균 기름값은 1갤런당 4달러를 넘었습니다. 반면, 뉴욕이나 보스턴은 2달러 후반대이고, 텍사스 지역은 2달러 중반입니다. 보통 중형 SUV에 기름을 가득 채우면 15갤런 정도 들어갑니다. 텍사스에서와 실리콘밸리에서 이 차에 기름을 가득 채우면 약 23달러(약 2만8000원)가량 가격 차이가 나게 됩니다. 미국은 차가 없으면 이동을 하기 힘들며, 대개 매일 편도 50~60km가량의 거리를 출퇴근합니다. 이렇게 되면 차를 두 대 이상 가진 한 가정의 기름값 차이만 해도 한달에 1000달러가 넘습니다.

세금 공과금내면 절반 남아
캘리포니아는 다른 주들보다 소득세도 많이 냅니다. 미국은 주(州) 소득세와 연방 소득세를 따로 징수합니다. 연방 소득세는 모든 주에 똑같이 부과되니 논외로 치고, 주 소득세만 보면 캘리포니아는 최고 13.3%의 주 소득세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텍사스와 플로리다 네바다 뉴햄프셔 워싱턴 등은 주에서 소득세를 매기지 않고 있습니다. 뉴욕주도 최고 소득세율은 8.82%입니다.

미국 연방정부의 소득세율은 소득과 가족 구성원 수에 따라 7개 구간으로 나뉘고 있는데, 10% 12% 22% 24% 32% 35% 37% 등입니다. 최고 세율인 37%는 독신일 경우 연 소득 52만3600만달러부터, 부부일 경우 62만8300만달러부터 적용됩니다. 그 아래 단계인 35% 세율은 독신 20만9425달러, 부부 41만8850달러부터입니다. 32%는 독신 16만4925달러, 부부 32만9850달러부터입니다. 이 세율에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기업 직장인들은 캘리포니아 주소득세를 더해 내야 하는 구조입니다. 실리콘밸리에서 부부가 함께 테크 기업에 다니며 비교적 높은 연봉을 받을 경우 상당 부분을 소득세로 일단 내야 한다는 얘기가 됩니다.

빅4(구글 테슬라 애플 페이스북) 중 한 곳에 다니는 한국계 미국인 A씨의 얘기를 들어봅시다. "거의 소득의 40%가량을 세금으로 뗀다고 보면 됩니다. 연봉의 일부로 받는 회사 주식도 받게 되면 매년 증여세를 직원이 부담합니다. 또 주가가 뛰어 주식을 팔면 주식 양도세도 내야 합니다. 밖에선 고액연봉이라고 하고, 관련 기사도 많이 나와서 한국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은 제가 굉장히 부자인 줄 알고 이것저것 부탁하는 경우도 많아요. 연봉을 많이 받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부자라고 보긴 힘든 것도 사실이에요. 이런 사정을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이상하더라고요."

캘리포니아는 전기요금과 물값도 비쌉니다. 기자의 경우 여기선 한국에서보다 물과 전기를 조금 쓰고 있는데, 요금은 전기요금은 다섯배, 물값은 10배가량 더 내고 있습니다. 한국에선 한 달에 7톤가량의 수도를 썼는데, 6000원 정도 나왔습니다. 여기선 지난달에 낸 수도요금은 57.79달러로 6만원이 넘습니다. 에어컨과 히터를 필요로 쓰지 않았던 4월과 5월의 전기(가스 포함) 요금도 평균 140달러가 책정됐습니다. 쓰레기 처리요금도 매달 60달러 정도 됩니다.


"연봉 절대적 액수 많아도..."
세계 최고의 엔지니어들을 높은 연봉으로 '모셔오고' 그런 고액 연봉자들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고물가가 형성되는 곳이 실리콘밸리입니다. 물가 수준이 높다 보니 테크 기업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다른 회사의 임금도 높아지게 됩니다. 이곳에서 생활을 하려면 그 정도 연봉을 줘야 직원을 구할 수 있으니까요.


단적인 예로 캘리포니아의 유명한 햄버거집인 '인앤아웃'의 아르바이트 초급도 배이에어리어에선 시간당 17달러(2만원)부터 시작합니다. 웹페이지에선 급료가 12~17달러라고만 적혀 있습니다. 구직 사이트를 보니 평균 급여는 14달러로 돼 있습니다. 또 실리콘밸리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한 스탠퍼드대학교의 저소득 장학금 지급 자격 기준은 가족의 연소득이 15만달러 미만(2021년 기준)입니다. 가족의 연소득이 15만달러 아래면 등록금을 면제해 줍니다. 같은 캘리포니아주의 USC(LA 소재)의 경우 등록금 면제 장학금 기준은 8만2000달러입니다. 이곳 벤처캐피털에서 일하는 B씨는 "실리콘밸리에선 교사가 가장 빈민층"이라며 "캘리포니아주의 교사 연봉이 미국에서 가장 높은 편인데도 교사들의 월급으론 여기서 살기 힘들다고 한다"고 했습니다. 캘리포니아주의 교사 평균 연봉(초봉이 아닙니다)은 8만2000달러로 미국에서 두 번째로 높습니다.

빅4 중 한 곳에 일하는 독신의 싱글남 C씨의 얘기를 들어봅시다. "제 연봉을 그대로 밝힐 수는 없지만, 15만달러라고 해보죠. 그러면 6만달러는 일단 세금 등으로 나간다고 봐야 합니다. 조그만 아파트 월세가 3000달러라고 치면, 집값으로만 1년에 3만6000달러가 나갑니다. 여기에 공과금 등 생활비가 아닌 고정비를 1만달러 잡아봐요. 차량은 필수니 차를 리스하고 기름값, 유지비, 보험료 등도 2만달러 정도 듭니다. 그러면 이제 2만달러 남짓이 남습니다. 사람 만나 밥도 먹고, 주말에 가까운 데 여행도 가고, 필요한 것 사고, 취미생활 하면 그렇게 많이 저축할 형편도 안 됩니다. 여긴 물가가 비싸니까요."

그래서 기사에도 나왔던 '회사 주차장에 사는 구글 직원'도 등장합니다. 집값과 물가가 비싸니 회사 주차장에서 살면서 숙식을 해결하는 겁니다. 이 회사에 다니는 D씨는 "이런 친구들은 대개 미국 중서부가 고향인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 고액 연봉을 받으며 5년 정도 버티다가 그 돈을 모아 고향에 가서 사는 게 꿈인 경우가 많다"면서 "그렇게 모은 돈으로 고향에 가서 집을 사고 프리랜서 등을 하면 된다는 생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이런 문제가 심각해지자 아예 실리콘밸리를 떠나는 테크기업들도 최근엔 생기고 있습니다. 오라클과 휴렛팩커드엔터프라이즈(HPE) 등은 콜로라도로 본사를 이전하겠다고 했고, 실리콘밸리에서 태어난 빅데이터 회사인 팔란티어는 덴버로 옮겼습니다. 이들 회사 외에도 꽤 많은 테크기업들이 네바다 콜로라도 텍사스 등으로 오피스를 옮겨가고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도 세금과 공장 가동 문제 등을 거론하며 틈만 나면 "본사를 텍사스나 네바다로 옮기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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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기업의 연봉이 갖는 의미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메일 독자님들, 오늘 하루의 시작도 즐거우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주 수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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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김재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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