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 제도 도입을 앞두고 금융투자업계와 보험업계가 정면 충돌하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디폴트옵션에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포함하느냐 여부다. 증권·자산운용업계는 그동안 쥐꼬리만 했던 퇴직연금 수익률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기금을 ‘혁신 성장’의 마중물로 활용해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보험업계는 원리금이 보장되지 않는 상품으로만 구성될 경우 위험 회피형 근로자의 선택권과 수급권 보호에 미흡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문제는 근로자들이 대부분 자신의 퇴직연금이 어디에 투자되는지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DC형 가입자의 83%는 가입 후 단 한 차례도 포트폴리오 변경을 하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다. 고용노동부 표준규약에 따르면 가입자가 이처럼 운용 지시를 내리지 않을 경우 원리금보장 상품으로 운용하도록 돼 있다. 지난 수년간 저금리 기조 탓에 최근 5년간 국내 퇴직연금의 연평균 수익률은 연 1.77%에 그쳤다.
‘쥐꼬리 수익률’ 비판이 커지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당 간사를 맡고 있는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올해 초 DC형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에 실적배당형 금융상품만 포함하는 내용의 법안을 대표 발의했고 이어 정무위 여당 간사인 김병욱 의원도 사실상 동일한 취지의 법안을 냈다. 그러다 3월 정무위 소속인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디폴트옵션에 원리금보장형까지 추가하는 법안을 제출하면서 여야 간 대결 구도가 형성됐다. 동시에 금융투자업계와 보험업계 간 대리전 성격까지 띠게 됐다.
김대환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식형펀드와 같은 실적배당형에 투자하면 (원리금보장형보다) 장기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면서도 “이직률이 높고 이런저런 사유로 중도에 적립금을 인출(중간정산)하는 사례가 많은 국내 현실에서 단기 변동성이 큰 실적배당형으로만 디폴트옵션을 구성할 경우 근로자의 수급권을 크게 저해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퇴직연금에 가입한 근로자가 따로 적립금 운용 지시를 하지 않을 경우 사전에 지정된 금융상품에 자동 투자하도록 하는 제도. 지금은 고용노동부 지침에 따라 은행 예금 등 원리금보장형 상품에만 자동적으로 투자하게 돼 있다. 다만 가입자가 실적배당형으로 바꿀 수 있다. ‘쥐꼬리 수익률’ 지적에 펀드 등 실적배당형을 디폴트옵션으로 하자는 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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