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바라본 '쿠팡맨'의 고뇌…담담하게 '속도 집착 사회' 그려

입력 2021-05-23 16:57   수정 2021-05-24 00:21

‘퀵서비스 오토바이들은 퍼져 날아간다./저마다 천국행 서류봉투를 들고 가거나/화환을 싣고 장례식장으로/빠르게 질주한다./나는 그 뒤를 조금 천천히 따라갈 뿐이었다.’(‘퀵서비스 맨의 비상’ 중)

문화연구자인 주창윤 시인이 23년 만에 세 번째 시집 《안드로메다로 가는 배민 라이더》(한국문연)를 출간했다. 시집은 명징한 언어로 ‘속도’에 집착하는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묘사했다. 시인의 눈길은 ‘배민 라이더’ ‘쿠팡맨’ ‘퀵서비스 맨’ 같은 배달인력에 꽂힌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양적으로 폭증한 직업군이자, 확대된 초연결 사회의 모순을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배민 라이더와 쿠팡맨의 주변엔 늘 불길한 표현들이 맴돈다. 회색의 비둘기들은 ‘구구구구 울부짖’는다. 라이더들은 천국행 서류봉투를 들고 장례식장으로 질주한다. 주린 배를 움켜쥔 채 과속으로 향하는 곳이 암흑성운인 줄도 모르고….

그런 모습을 시인은 냉정하게 그릴 뿐이다. ‘허기의 속도를 따를 자 없다는 듯이/배민 오토바이가/퀵서비스 오토바이를/가공의 축지법으로 추월한다’라고. 당연히 시인이 입에 올리는 별(星)도 저세상을 상징하는 ‘명왕성’이나 ‘안드로메다’일 수밖에 없다.

현대 사회의 병폐는 편리함에서 출발한다. 내가 직접 수고하는 과정과 절차를 생략하는 대신 자본과 타인의 희생이 요구된다. 수요자는 움직이지 않고 배민 라이더나 쿠팡맨이 달려야 한다. 여기서 요구되는 최고의 덕목인 ‘속도’의 그림자를 시인은 담백한 언어로 묘사했다. 게임실의 펀치머신을 보고 폭력과 분노를 떠올리고, 사우나를 통해 성과 속의 경계를 허무는 등 시인만의 예민한 시선이 시집 곳곳에서 감지된다.

1986년 《세계의 문학》 봄호로 등단한 주 시인은 영국 글래스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언론학자다. 한국 현대사회에 관해 연구하면서 포착한 문제점을 시적 감성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병행해 왔다. 앞서 《물 위를 걷는 자 물 밑을 걷는자》(민음사)와 《옷걸이에 걸린 양》(문학과지성사) 등 두 권의 시집을 펴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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