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유전' 15년 싸움…바른, 전문가 내세워 역전승

입력 2021-05-23 17:50   수정 2021-05-24 00:27


에너지 자원, 광구 개발 등 재판부가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적 소송에서는 해당 분야 전문가가 법정에서 어떤 증언을 하는지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경우가 많다. 변호사와 법관은 ‘현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만큼 정보 가치의 차이가 소송 흐름을 바꿀 수 있다. 전문적인 내용이 가득한 재판일수록 “누가 더 세밀하고 정확한 정보로 판사를 설득해내는가”가 승패의 관건이 된다.

2005년부터 15년간 이어진 한국석유공사와 현대중공업 사이의 ‘예멘 석유광구 개발’ 다툼도 그랬다. 소송 원금만 약 400억원에 달하는 이 싸움에서 법무법인 바른은 정확한 증언을 해줄 에너지 전문가를 찾아 동분서주한 끝에 1심을 뒤집고 석유공사의 승소를 확정지을 수 있었다.

수백억원대 소송 휘말린 석유공사
사건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석유공사는 중국, 영국 등과 경쟁해 예멘의 석유광구 개발 사업권 50%를 획득했다. 이듬해 석유공사는 50% 지분 가운데 15%를 현대중공업에 넘겼고, 지분 매입 대금의 105%에 해당하는 보상금도 별도로 받았다. 보상금이란 유전사업에 투자할 기회를 준 데 대한 프리미엄을 뜻한다.

문제는 이 유전개발 사업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발생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해당 광구의 경제성이 낮게 평가됐고, 비용은 급격히 늘었으며, 유가는 급락했다. 그 결과 석유공사는 사업에서 철수했다.

이에 현대중공업은 “석유공사가 최저 생산량을 보장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만큼 생산하지 못해 손해가 발생했다”며 보상금 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없는 사실(광구의 경제성)을 있는 사실로 착각해 현대중공업을 기망했다”며 석유공사가 현대중공업에 돈을 물어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전문가 증언으로 1심 뒤집어
석유공사는 1심에서 패소한 뒤 2심부터 바른을 투입했다. 바른은 기존 판결을 뒤집을 카드로 이 분야 최고 전문가를 찾기 시작했다. 2심 재판부를 설득하기 위해선 유전개발 사업 특유의 불확실성 및 광구 지분 매매와 관련한 국제거래 관행 등을 설명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바른은 몇 달에 걸쳐 수소문한 끝에 자원개발 분야 권위자로 알려진 A교수를 접촉했다. A교수는 “어떻게 이런 판결이 나올 수 있나. 이 판결은 자원개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나온 결과”라며 놀라워했다. 그는 “이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면 한국이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직접 법정에 출석한 A교수는 △유전개발 사업은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는 전형적인 고위험·고수익 사업인 점 △개발 초기부터 광구의 경제성을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 △광구의 매장량 및 경제성은 개발하는 과정에서 얻는 데이터를 통해 구체화될 수 있다는 점 등을 상세히 진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A교수의 증언을 듣고 “석유공사가 지분 매입비와 보상금 모두 반환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현대중공업은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선임해 3심에 돌입했지만 3년2개월가량 이어진 심리 끝에 대법원은 석유공사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미래에 발생할 막연한 사정을 예측·기대하고 법률행위를 한 경우 그러한 예측과 다른 사정이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한 위험은 법률행위를 한 사람이 감수해야 한다”며 “석유공사는 계약 당시 기업에 모든 자료를 충실히 제공했고, 기업은 독자적으로 수익성을 분석해 계약을 체결했다”고 판시했다.
김앤장 누르고 최종 승소 이끈 바른
소송을 이끈 변호사는 바른의 서명수 변호사와 김도형 변호사다. 김 변호사는 “이 사건은 자원개발과 관련한 국내 분쟁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라며 “소송이 길어져 지연이자만 100억원에 달하는 등 사건 규모도 매우 컸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가 ‘전문가 카드’ 외에 신경 쓴 법리는 민법상 ‘사정 변경의 원칙’과 ‘쌍방의 동기착오’였다.

김 변호사는 “현대중공업 측은 계약 당시 있다고 생각했던 광구의 경제성이 나중에는 없어진 점(사정 변경의 원칙), 처음부터 광구에 경제성이 없었지만 쌍방이 착오를 했다는 점(쌍방의 동기착오)을 들어 석유공사가 돈을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하지만 이를 반대로 놓고 생각하면 당시 계약에 참가한 기업들은 원하는 만큼의 석유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미리 알았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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