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까지 남은 거리는 174야드. 9번 아이언을 잡은 필 미컬슨(51)이 질긴 러프 잔디를 떠냈다. 공이 18번홀 그린 위에 안착하자 클럽 헤드를 하늘로 향한 채 멈춰 있던 미컬슨은 ‘나를 따르라’는 듯 힘차게 그린 쪽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목이 쉬어라 ‘고(Go) 필!’을 외치던 1만 명의 ‘미컬슨 아미(army)’가 페어웨이로 쏟아져 나왔다. 안전요원들이 친 바리케이드를 뚫고서였다. 골프 역사상 가장 위대한 50대 메이저 최고령 우승자 미컬슨을 위한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미컬슨은 스무 살 어린 ‘슈퍼맨’ 브룩스 켑카(31·미국) 등 젊은 피들을 따돌리고 정상에 섰다. 만 50세 11개월의 나이에 우승해 53년 묵은 메이저대회 최고령 우승 기록도 새로 썼다. 종전 기록은 1968년 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줄리어스 보로스(미국·1920~1994)의 48세 4개월이다. 미컬슨은 “현실적으로 이번이 나의 마지막 우승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내 우승이 다른 (노장) 선수들에게도 힘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메이저 통산 6승, 미국프로골프(PGA)투어 45승째. 그는 이날 우승상금 260만달러(약 29억3000만원)와 향후 5년간 US오픈 출전권 등을 전리품으로 챙겼다. 세계 115위에서 32위로 도약한 미컬슨은 “올해 US오픈이 사실상 (우승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며 “2주 쉬고 US오픈이 열리는 토리파인스로 가서 우승을 목표로 연습하겠다”고 말했다.
만년 2인자였음에도 미컬슨의 팬층은 우즈만큼이나 두텁다. 필드 안팎에서 보여준 신사다운 모습과 위트 덕분이다. 미컬슨은 우즈와 달리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비행사였던 아버지를 마주보고 골프를 따라 치다가 오른손잡이인 그가 왼손 골퍼로 성장한 일화는 유명하다.
우즈와 달리 미컬슨은 30년 동안 잡음 없이 프로 생활을 이어왔다. 다 이겼던 경기를 페인 스튜어트(미국·1957~1999)에게 내주고도 상대방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인터뷰를 한 1999년 US오픈은 그의 인품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2017년 US오픈을 앞두고는 대회 일정이 딸의 졸업식과 겹치자 불참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최상의 기량을 유지한 덕분에 미컬슨은 이번 대회 최종라운드 16번홀에서 드라이버로 366야드를 보냈다. 출전 선수를 통틀어 드라이브 비거리 1위였다. 5번홀(파3)에선 그린 주변 벙커에서 친 샷을 그대로 홀 안에 넣어 추격자들의 의지를 꺾었다. 미컬슨은 “체력훈련을 더 열심히 오래 해야 나흘 내내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기 초반 미컬슨을 압박했던 켑카는 2번홀(파5) 더블 보기에 발목이 잡혀 루이 우스트히즌(39·남아프리카공화국)과 함께 공동 2위에 만족해야 했다. 임성재(23)는 이븐파 공동 17위를 기록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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