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13조인데 中企?…체통보다 생존 택한 日 대기업들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입력 2021-05-30 15:51   수정 2021-05-30 15:59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손실을 견디다 못한 일본 대기업이 자본금을 1억엔(약 10억1433만원) 이하로 줄여 스스로 중소기업이 되는 '벤자민 버튼 증후군'을 앓고 있다. 중소기업이 누리는 각종 혜택을 유지하려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기를 꺼리는 우리나라의 '피터팬 증후군'보다 한 술 더떠 대기업이 중소기업으로 역성장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대학생 취업 인기 1위 기업이었는데
도쿄 시내 투어버스의 대명사로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하토버스는 지난 24일 주주총회를 열고 오는 6월30일자로 자본금을 4억5000만엔에서 1억엔으로 줄이는 감자를 결정했다. 규슈 지역의 상장 백화점 기업인 이즈쓰야는 7월1일부터 105억엔이었던 자본금을 1억엔으로 줄이기로 했다.

지난 3월말에는 일본 최대 여행사인 JTB가 자본금을 23억400만엔에서 1억엔으로 줄였다. JTB는 2019년 매출이 1조3674억엔, 임직원수가 2만7212명에 달하는 대기업이다. 매년 각종 조사에서 문과 계열 대학생들이 가장 취업하고 싶어하는 기업 최상위권을 놓치지 않는 곳이어서 JTB의 결정에 일본 사회가 받은 충격은 더 컸다.

일본 주요 일간지인 마이니치신문과 중형 항공사 스카이마크, 회전초밥 체인 갓파크리에이트, 이자카야 프랜차이즈 다이쇼 등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대기업들도 100억엔 안팎이던 자본금을 1억엔으로 줄여 스스로 중소기업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으로 전환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절세라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코로나19로 악화된 재무구조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보겠다는 것이다. 감자를 결정한 기업 대부분이 코로나19의 타격을 크게 받은 항공, 여행, 외식업종 관련 기업이다.

JTB는 지난해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1052억엔의 손실을 입었다. 가게야마 히데오 이즈쓰야 사장도 기자회견을 통해 "자본금을 줄여 누적된 손실을 해소하는 한편 세제 상의 우대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세법은 자본금이 1억엔 이하인 기업을 중소기업으로 분류한다. 중소기업은 사업규모가 클 수록 늘어나는 법인사업세 외형표준과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외형표준과세는 1990년대 초반 거품경제 붕괴로 법인세가 줄자 일본 정부가 세수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2004년 도입한 과세제도다.

이 법에 따라 대기업은 적자를 내더라도 종업원 급여와 빌딩 임차료 등의 규모에 따라 세금을 내야 한다. 실적이 흑자전환한 경우 지난해 손실 일부를 올해 순이익에 합산해 법인세를 줄이는 혜택(결손금 이연공제)도 중소기업이 더 많이 활용할 수 있다.

하토버스와 다이쇼 같은 외식업체들은 자본금을 헐어서 당장 급한 운전자금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체통보다 생존
자본금은 회사를 창업할 때 준비한 종잣돈이다. 창업 후에는 계속해서 이익을 내거나 주주들을 대상으로 증자를 실시해 자본금을 늘릴 수 있다. 기업환경이 보수적인 일본은 전통적으로 자본금 규모를 회사의 격(格)이나 신용도와 동일시하는 풍조가 강했다.

샤프가 2015년 경영정상화를 위한 감자를 발표했다가 '일본 대표기업이 중소기업 흉내를 내느냐'는 거센 비판을 받고 계획을 철회한 적도 있다. 금융회사들이 자본금이 적은 회사를 신용할 수 없는 회사로 간주해 대출을 꺼리는 관행도 여전하다.

상장회사의 감자는 경영파탄으로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예외가 아니라면 더더욱 드물었다.주주총회에서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데 투자기업이 중소기업으로 전락하는 것을 반기는 투자가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하토버스와 이즈쓰야 같은 상장 대기업의 감자도 잇따르고 있다. 민간 신용평가사인 데이코쿠데이터뱅크에 따르면 지난해 자본금을 1억엔 이하로 감자한 상장기업은 55곳으로 1년전의 29곳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

그런데도 '중소기업 전락'을 선택하는 대기업이 늘어나는 것은 코로나19 이후 일본 기업들의 체감경기가 얼마나 악화됐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어차피 실적이 나빠지면 금융회사로부터 대출을 받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체통보다 생존을 택하는 경영자들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회사의 격이 떨어지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중소기업으로 전환하는 대기업의 고육책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중소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의 본래 취지를 왜곡시킨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도 절세를 목적으로 하는 대기업의 중소기업 전환에 제동을 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은 지난 25일 기자회견에서 "기업의 경영 및 재정상태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가며 (중소기업 과세제도를)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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