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철의 글로벌 북 트렌드] 지도자의 선택, 역사를 뒤집다

입력 2021-06-03 17:46   수정 2021-06-04 02:34

역사에서 가정은 불필요하고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나간 역사에 ‘만약’이라는 질문을 던져보며 우리는 커다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만약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일본 대공습 작전을 주도했던 제21폭격기사령부 지휘관이 커티스 르메이 장군이 아니라 헤이우드 핸셀 장군이었다면? 당시 대규모 융단 폭격이 아니라 정밀 폭격을 선택했더라면?

월스트리트저널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사상가 10인’ 가운데 한 명이면서 《아웃라이어》 《티핑포인트》 《블링크》 등의 베스트셀러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말콤 글래드웰은 지난 4월 미국에서 출간된 신간 《폭격기 마피아(The Bomber Mafia)》를 통해 흥미로운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글래드웰은 ‘천부적인 이야기꾼’이라고 불릴 정도로 서로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을 멋지게 연결해 이야기로 풀어내는 재주를 갖고 있다.

출간하는 책마다 세계 출판시장을 뒤흔드는 글래드웰이 이번 신간의 주제로 ‘제2차 세계대전’과 ‘일본 대공습 작전’을 고른 이유가 뭘까. 그는 인간의 가장 추악한 광기가 거침없이 드러나는 전쟁 속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과학기술이 인간의 의도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사용될 수 있는지를 확인해주면서 누가 지도자가 되느냐에 따라 역사는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책은 만일 1945년 일본 폭격 당시 제21폭격기사령부 지휘관이 르메이 사령관의 전임자인 핸셀 사령관이었다면 상황은 많이 달랐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당시 도쿄 공습을 둘러싼 미 공군 지휘부의 견해는 두 부류로 갈렸다.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고고도 정밀 폭격’을 지지하는 세력과 무차별 ‘저고도 융단 폭격’을 주장하는 세력이 서로 대립했다. 핸셀 사령관은 ‘정밀 폭격’을 지지했지만, 유럽 전선에서의 활약으로 리더십을 넘겨받은 르메이 사령관은 ‘융단 폭격’을 주장했다.

도시에 대한 대규모 융단 폭격은 도덕적으로 매우 혐오스러운 전쟁 방식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어 하던 르메이 사령관은 결국 일본 열도에 융단 폭격을 감행했다. 일본인들에게 ‘가장 끔찍하고 긴 밤’으로 기억되는 1945년 3월 9일 밤부터 10일 새벽까지 344대의 B-29 폭격기가 1600여t의 네이팜탄을 도쿄 시가지에 무차별적으로 투하했다. 당시 공습으로 사망자만 10만 명에 달할 정도였고 건물 26만7000여 채가 파괴됐다. 도쿄를 시작으로 나고야, 오사카, 고베 등 일본의 주요 4개 도시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무자비한 폭탄 세례로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네덜란드 출신인 칼 노든이 개발한 폭격 조준기를 이용해 적진의 후방에 정밀 폭격을 가하며, 최소한의 희생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얻는 전쟁 방식을 꿈꿨던 미 공군 최정예 부대 ‘폭격기 마피아(Bomber Mafia).’ 책은 그들의 실패한 꿈을 그려내며, 르메이 장군이 전투에서는 이겼을지 몰라도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핸셀 장군이었다고 평가한다. 여전히 미국 전쟁사에서 논란이 되는 일본 대공습 작전의 당위성 문제를 제기하면서 과연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는지 되묻는다.

홍순철 <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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