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도 생태계가 있다. 그 생태계를 어지럽히면 우리말이 건강하게 발전하지 못한다. 지난 호에서 살펴본 ‘지재권 면제’는 어휘 측면에서 우리말을 교란한 사례다. 단어(‘권리’와 ‘면제’) 간 의미자질이 서로 어울리지 않아 부조화를 이뤘다는 점에서다. 이번 호에서는 글쓰기에서 단어들의 선택과 나열이 어떤 원리에 의해 이뤄지는지 좀 더 알아보자.
‘권리’라는 단어는 행사하거나 보호, 유예, 포기 같은 말과 어울린다. ‘의무/책임’은 면제하거나 부과, 추궁, 회피 등과 호응한다. ‘지재권 면제’라는 표현이 어색한 까닭은 이런 ‘어휘 선택과 구성’의 질서가 무너진 데서 온다. 모국어 화자라면 직관적으로 그것을 느낄 수 있다. 글쓰기에서 이런 오류는 자주 발생한다.
‘효과’ 또는 ‘영향’은 누구나 아는 단어다. 기초적인 어휘인데도 막상 글을 쓰다 보면 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나온다. 뜻은 알고 있지만 용법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단어의 의미자질을 모르면 용법을 틀리기 십상이다. “명예퇴직이 확산하면서 실업률 증가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효과’는 보람 있는, 좋은(긍정적) 결과를 뜻하는 말이다. 바람직하지 않은(부정적) 결과에 ‘효과’를 쓰면 본래의 쓰임새와 충돌해 글이 어색해진다. “~이 확산하면서 실업률이 높아지고 있다”라고 하면 그만이다.
글쓰기에서 단어 선택의 오류는 어려운 말이라서 생기는 게 아니다. 늘 쓰는 말이지만 의미와 용법을 ‘대충’ 생각하는 데서 오는 잘못이 많다. 말을 정교하고 섬세하게 구별해 사용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대출/차입’의 쓰임새도 돌아볼 만하다. 이들은 요즘 방황하는 말이 돼 버렸다. ‘대출’과 ‘차입’은 다른 말인데, 이를 구별 없이 뒤섞어 쓰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심지어 사전까지 이를 따라간다. 대출을 ‘돈이나 물건 따위를 빌려주거나 빌림’으로 풀었다. 대출자는 ‘대출을 하거나 받는 사람’으로 정의된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나 빌리는 사람이나 모두 대출자다. ‘차입’이란 말이 있다. ‘돈이나 물건을 꾸어 들이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대출’과 ‘대출자’의 사전상 정의가 그러할진대 ‘차입’과 ‘차입자’가 설 자리가 없다. ‘대출/대출자’ 한 가지로 다 통하게 해놓았기 때문이다. 말을 이렇게 쓰다 보면 ‘차입/차입자’는 우리말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언어도 찾고 쓰는 이가 없으면 죽는 것이 세상 이치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