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박제'와 '돈쭐' 사이에 놓인 기업들

입력 2021-06-06 17:09   수정 2021-06-07 00:52

지난 3월 SBS 월화드라마 ‘조선구마사’가 역사 왜곡 논란 끝에 2회를 끝으로 방영을 중단하기로 한 것은 의외였다. 그동안 우리나라 사극에서 역사 왜곡 논란이 불거진 게 어디 한두 번인가. 학계까지 나서 역사 왜곡 공방을 벌였던 과거 ‘연개소문’ ‘천추태후’ 등의 사극과 비교하면 더욱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게다가 조선구마사는 악령이 등장하는 판타지물이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분노는 과거와 달랐다. 온라인 커뮤니티마다 공분이 일었고 청와대 청원게시판도 들끓었다. 사과와 해명으로 때우기에는 폭발력이 너무나도 컸다.
사회 전반에 부는 공정 바람
남양유업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자사 제품 ‘불가리스’가 코로나19 예방 효과가 있는 것처럼 발표해 소비자들의 질타를 받다가 결국 사모펀드(PEF)에 경영권을 넘겼다. 사실, 남양유업의 ‘화려한’ 전적을 보면 이번 사건은 그다지 특출난 사안은 아니었다. 건설사 리베이트 사건, 대장균 분유사건, 대리점 갑질, 창업주 외손녀 마약 투약 등 대형 악재가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회사였다. 불가리스 사태로 전 국민이 공분하는데도 홍원식 전 회장이 20일이 지나서야 사과문을 들고 나타난 것도 아마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안일한 판단 때문이었으리라. 남양유업은 ‘사회가 달라졌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3~4년 전 ‘총수의 경비원 폭행’ ‘탈퇴 가맹점에 대한 보복 조치’ 등이 불거진 뒤에도 꿋꿋하던 미스터피자가 지난해를 못 버티고 팔린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갑질’ ‘불공정’은 요즘 뜨거운 사회적 화두다. 연초 연예계와 스포츠계에 불거진 학폭·갑질 논란은 삽시간에 확대됐다. 유명 연예인과 스포츠 선수, 유명 유튜버들이 줄줄이 사과문을 발표하고 강제 은퇴의 기로에 놓였다.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당사자들은 누구든 예외가 없었다. 불법정차에 항의하는 시민에게 욕설한 대구 달성군의 한 식당 주인은 식당 이름을 바꿔야 했고, 경기 양주의 한 고깃집에서 갑질 논란을 일으킨 모녀는 운영하던 유튜브를 접어야 했다.
보이콧도, 바이콧도 세졌다
지방 식당에서 벌어진 말다툼이 포털 메인 뉴스코너를 장식하는 판에 기업은 말할 필요도 없다. ‘남혐(남성혐오)’ 논란에 휩싸인 무신사는 창업자가 일선에서 퇴진했고, 아워홈에선 ‘보복운전’으로 공분을 일으킨 대표가 주주들에 의해 해임됐다. 상사의 갑질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네이버, 대규모 투기 의혹에 휩싸인 LH(한국토지주택공사)도 전례 없이 혹독한 지탄을 받고 있다.

‘조국 사태’ 이후 청년층을 중심으로 ‘공정’이 사회적 화두로 등장하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바람과 결합하면서 폭발력은 더 세졌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한 소비자들의 피드백은 독하고 오래간다. 기업의 갑질 고발 글 등이 터지면 혹시라도 이 내용이 삭제될까 캡처해 사진 파일 형태로 저장하는 ‘박제’가 유행이다. 시간이 해결해 주기를 바라기는 이제 힘들어졌다.

‘보이콧’이 강력해진 만큼 ‘바이콧(buycott·특정 물품을 사도록 권장하는 행동)’의 힘도 세졌다. 공정한 기업, 착한 기업 제품을 앞다퉈 구매하는 이른바 ‘돈쭐(돈으로 혼쭐내주겠다)’은 트렌드가 됐다. 오뚜기가 최근 납품 업체의 중국산 미역 혼입 논란이 벌어졌을 때 큰 탈 없이 무마된 것도 평소 ‘갓뚜기’라 불릴 정도로 쌓은 착한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공정 기업이냐 아니냐.’ 이제 그 차이는 경쟁력을 가르는 수준을 넘어 기업의 근간을 흔드는 시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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