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韓기업 주문 반도체 뒤로 돌려라"…파운드리 못구한 한국 팹리스 '매출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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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1-06-06 17:45   수정 2021-06-14 15:34

대만 "韓기업 주문 반도체 뒤로 돌려라"…파운드리 못구한 한국 팹리스 '매출절벽'


“가격은 상관없습니다.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가 주문이라도 받아주면 좋겠습니다.”

최근 만난 유명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기업) A사의 대표 B씨는 “반도체를 팔고 싶어도 물량이 없어서 못 판다”며 이 같은 고충을 토로했다. 팹리스는 반도체 설계 및 판매를 전문으로 하기 때문에 주문대로 제품을 생산해주는 파운드리 확보가 필수적이다. 세계적인 반도체 품귀 현상으로 파운드리엔 주문이 폭주하고 있다. A사는 최근 거래하던 대만 파운드리 업체에서 “원하는 만큼 못 만들어주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점점 커지는 대만 팹리스의 시장 입지
6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최근 팹리스 사이에서 ‘파운드리 확보’가 실적을 좌우하는 핵심 요인으로 떠올랐다. 파운드리 캐파(생산능력) 확보 경쟁이 ‘국가 대항전’ 성격으로 번지는 모습이다. 대만에서 이런 분위기가 두드러진다. TSMC, UMC 등 대만 파운드리 업체들이 생산라인을 미디어텍, 노바텍 등 자국 팹리스에 몰아주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 정부가 자국 파운드리 업체에 ‘대만 팹리스들의 주문부터 받으라’고 압박하는 영향으로 분석된다.

자국 정부와 파운드리의 강력한 지원을 받은 대만 팹리스의 입지가 강화되고 있는 건 실적으로 나타난다. 한국경제신문이 한국과 대만 팹리스 중 각각 상위 5개사의 올 1분기와 지난해 1분기 실적을 비교한 결과 매출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미디어텍, 노바텍, 리얼텍 등 대만 팹리스 다섯 곳의 1분기 매출 합계는 6조6949억원(원화 환산)으로 실리콘웍스 등 한국 상위 5개 업체의 총매출(6513억원)보다 6조436억원(928%) 많다. 지난해 1분기엔 대만 3조9787억원, 한국 4436억원으로 격차가 3조5351억원 수준이었다. 업계에선 팹리스의 ‘파운드리 확보 능력’, 즉 반도체 물량 확보 여부를 매출 격차의 원인으로 꼽는다.

대만 1위 팹리스 미디어텍은 올 1분기 처음으로 ‘반도체 매출 세계 10위’에 포함되는 성과도 냈다. 전년 동기 순위는 16위였다. 세계적인 품귀 현상으로 반도체 가격이 올라가고 있는데 이 수혜를 온전히 대만 팹리스들만 누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차별받는 한국의 팹리스
반면 한국 팹리스들은 대만 파운드리에 주문을 넣는 게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다. 국내 한 팹리스 고위 관계자는 “한국 업체들이 차별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대만 업체들의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2020년 매출 기준)은 64%로 한국(17%)과 중국(6%)을 압도한다. 시장 주도권을 쥔 대만 파운드리 업체가 주문 접수를 거부하면 팹리스는 ‘영업 불능’ 상황이 된다.

한국 팹리스들은 국내 파운드리 업체에 기댈 수도 없는 상황이다. 파운드리 점유율 세계 2위(1분기 기준 18%)인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는 퀄컴, 엔비디아 등 미국 대형 팹리스에 물량을 대느라 일부 자사 제품조차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4월 열린 실적설명회에서 삼성 시스템LSI사업부가 “파운드리 생산 차질로 모바일 DDI(디스플레이구동칩) 공급이 원활하지 못해 실적이 정체됐다”고 설명했을 정도다.

사실상 국내 팹리스가 쓸 수 있는 전략은 대만 파운드리를 찾아가 ‘읍소’하는 것뿐이지만 출장마저 쉽지 않다. 정부는 산업계 요청을 받아들여 3월부터 ‘해외 출장 기업인 백신 우선 접종’ 제도를 시행 중이다. 하지만 ‘중요 경제활동’ 때문에 출장 간다는 것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고, 2개월 전에 신청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파운드리 설비 투자에 대한 인센티브 확대와 파운드리 중심의 반도체 생태계 조성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당장 파운드리 업체들이 적극적으로 시설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세액공제율을 더 올려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13일 반도체 육성 전략을 발표하며 대기업의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을 기존 6%에서 10%로 올렸지만 이는 반도체산업협회가 요청한 50%는 물론 미국(40%)과도 차이가 크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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