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은행들 "현금 많은 기업들, 제발 딴 은행 가세요"

입력 2021-06-10 13:22   수정 2021-07-09 00:01

미국의 이동통신 업체인 버라이즌은 지난 3월 말 기준 102억달러를 은행에 예치해 놓고 있다.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이 발생했던 1년 전 대비 45% 급증한 액수다.

미 기업들의 현금 보유액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불황에 대비해 급하게 자금을 끌어 모았으나 예상과 달리 영업 실적은 훨씬 좋아져서다. 저금리 속에서 자산 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은행들은 기업 예치금을 사절하는 기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4배 빨리 불어나는 기업 예금

기업들이 은행에 맡기는 예탁금이 급증세다. 미 중앙은행(Fed)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기준 기업 예금은 총 17조900억달러로 집계됐다. 불과 2개월 사이 4110억달러 증가했다. 과거 20년간의 예금 증가 속도 평균치 대비 4배 가까이 빠른 속도라는 게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다.

기업들의 총자산도 마찬가지다. 상위 600대 기업의 자산은 작년 말 기준 8438억달러로, 1년 전보다 10.0% 급증했다. 지난달 말엔 이 수치가 8733억달러로, 5개월 만에 295억달러 더 불었다는 게 금융정보 업체인 클리어워터 애널리틱스의 분석이다.

작년부터 비핵심 자산을 매각하는 한편 채권 발행으로 현금을 조달해 놨는데, 우려했던 비상 사태가 터지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Fed가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추고, 기업들 채권을 무제한 매입키로 한 양적완화 정책도 일조했다.

기업들 역시 외부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 현금을 중시하는 비상 경영 체제를 중단하지 않고 있다.

워너미디어그룹의 파스칼 데스로치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WSJ와의 인터뷰에서 “회사 여윳돈을 재투자해 수익을 추구할 때는 아니다”고 말했다. 버라이즌의 매튜 엘리스 CFO도 “지난 1년간 현금 중시 경영을 해왔는데 언제 정상화할 지 정해진 게 없다”고 했다.
“저율 상품 가입하거나 은행 옮기라”

오히려 부담스러운 쪽은 은행권이다. 기업 예탁금이 밀려오고 있지만 이를 운용해 수익을 낼 뾰족한 방법이 없어서다. 게다가 예금을 받을 경우 최소 3%씩 떼 Fed에 무수익 자산으로 재예치해야 한다.

기업들이 돈이 필요하더라도 은행 대신 주식·채권 등 자본시장에서 조달하고 있는 점도 문제다. 예대마진(대출금리에서 예금금리를 뺀 나머지 수익)이 빠듯해진 가운데 운용 부담만 커진 꼴이란 게 은행들의 설명이다.

Fed 자료를 보면 미 은행권의 전체 예금 대비 대출 비중은 지난달 말 61%로 기록됐다. 팬데믹 직전이던 작년 2월의 75%에서 14%포인트나 줄었다. 은행의 핵심 수익 지표인 기업 순이자마진은 올 1분기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기업 예금을 받아놓고 손실을 보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은행은 거래 기업들을 조심스럽게 접촉해 “예치금을 사업에 재투자하거나 다른 은행으로 옮기라”고 압박하고 있다고 WSJ가 전했다. 뉴욕에 본사를 둔 BNY멜론 은행의 에밀리 포트니 CFO는 “예치금 이전 등에 대해 기업 고객들과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기예금 대신 초단기 저율 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 가입을 유도하는 것도 새로운 추세다. 미 자산운용협회(ICI)에 따르면 MMF의 최근 잔액은 4조6100억달러로, 역대 최고치였던 작년 5월 수준에 근접했다.

미 최대 은행인 JP모간의 제니퍼 핍자크 전 CFO는 “예치금을 거절하는 최근 사례는 은행 시스템에 부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도 좋을 리 없다”고 지적했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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