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신청 hankyung.com/newsletter

재밌는 사실은 달을 팔겠다는 생각을 데니스 호프가 처음 한 것도 아니며, 유일한 달 판매인도 아니라는 점이다. 구글에 달 판매자(moon seller)라고 검색하면 여러 사업자들이 나온다. 내용은 다들 비슷한데, 달을 경위도로 나눠서 각종 패키지를 포함해 페이팔, 신용카드 등으로 결제할 수 있게 만들어 두었다. 루나 앰버시를 설립한 데니스 호프는 그 중 가장 많은 구매자를 확보한, 가장 대중적인 민간 달 등기소장 중 한 명일 뿐이다. 달 등기소를 설립하는 건 어렵지 않다. 통신판매가 가능한 법인 설립을 하고 홈쇼핑과 비슷한 구매 페이지를 열면 된다. 증서도 발행해주면 된다. 그게 종이든 블록체인이든 수단이 중요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증서를 바탕으로 실제로 달을 점유해야 하는 순간에 증서를 보유한 사람의 권리가 보장되느냐의 문제다.
미래를 한 번 그려보자. 우주공학이 발달하여 실제 달을 개발할 수 있는 물리적인 조건이 갖추어졌다고 가정해보자. 점유를 해야 하는 순간에 달의 같은 지역을 등기한 여러 달 등기소들이 서로 각자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다툴 것이다. 아니, 그보다 더 앞서 먼저 강력한 우주 군사력으로 달을 점유한 강대국이 기존 민간 등기소를 전부 무시하고 특정 국가 소유로 모두 등기해버릴 가능성도 있다. 또는 UN과 같은 국가간 협의체를 통해서 국제 달 등기소가 설립될 수도 있다. 여기에 외계인이 나타난다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외계인이 달의 소유권을 주장한다면 그들과 등기소 정당성 확보를 위한 우주 전쟁을 불사해야 될지도 모른다. 여러 상황을 고려해보면, 데니스 호프의 증서는 달의 소유권이라는 내재가치를 보장하기 어렵다는것을 쉽사리 알 수 있다.
루나 앰버시의 달 등기 사업이 여러 가지 석연찮고 장난스런 구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증서가 팔리고 거래되는 이유는 데니스 호프가 우주 조약의 약점을 근거로 했던 일련의 소송전과 미디어를 활용해 대중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확보했다는 데에 있다. 대중으로부터 달 문서가 달의 소유권이라는 내재가치와는 관계 없는 어떠한 맥락(context)을 지구에서 확보한 것이다. 즉, 달 등기문서는 내재가치는 없지만 여러 맥락을 통해서 교환가치를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반만 맞다. 왜냐하면 발행인에 따라서 내재가치를 가질 수도, 가지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앞서 달 등기문서처럼 내재가치가 없다고 해서 꼭 교환가치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피카소의 유명한 작품인 게르니카(Guernica)를 이미지 파일로 변환하여 NFT로 발행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이 NFT는 내재가치를 가질까. 상황에 따라 내재가치를 가질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더리움과 같은 비허가형 블록체인을 이용하면 NFT는 누구나 쉽게 발행할 수 있다. 고화질 피카소 그림을 찍은 사진을 다운로드 받았다면 오픈씨(opensea) 혹은 라리블(rarible)과 같은 플랫폼을 이용해 누구나 NFT를 만들 수 있다. 발행량에 제약도 없다. 같은 피카소 그림을 가지고 여러 개의 NFT가 발행될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NFT 발행인이 마드리드 국립미술관이고, NFT 소유자에게 게르니카를 양도한다고 선언했다면 NFT는 실물과 연결된 내재가치가 생겼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상황을 조금 바꿔보자. 마드리드 국립미술관이 이번에는 게르니카 NFT 1000개를 찍어냈고, 이는 소유권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선언했다면? 게르니카를 1000장으로 찢어 나눠줄 수 없으니 내재가치는 당연히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NFT가 교환가치가 없을까? 더 쉽게 질문을 조금 바꿔보자. 마드리드 미술관이 발행하는 게르니카 기념카드 1000장은 안 팔릴까? 내재가치와 아무런 연동이 없는 NFT이지만 교환가치는 확보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교환가치 확보를 위해서 중요한 것은 어떠한 맥락을 확보했느냐이지, 얼마나 큰 내재가치를 지녔느냐가 아니다. 인문예술에 관한 아주 약간의 지식이 있는 독자라면, 이러한 상황이 예술작품의 예술성이 시장가치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과 동일한 원리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재가치는 없지만 교환가치가 있는 NFT를 인정한다면, 내재가치 측면에서 FT나 NFT의 차이는 없다. 같지만 다른 표현으로, 코인이나 NFT는 본질적으로 같다.
<svg version="1.1" xmlns="http://www.w3.org/2000/svg" xmlns:xlink="http://www.w3.org/1999/xlink" x="0" y="0" viewBox="0 0 27.4 20" class="svg-quote" xml:space="preserve" style="fill:#666; display:block; width:28px; height:20px; margin-bottom:10px"><path class="st0" d="M0,12.9C0,0.2,12.4,0,12.4,0C6.7,3.2,7.8,6.2,7.5,8.5c2.8,0.4,5,2.9,5,5.9c0,3.6-2.9,5.7-5.9,5.7 C3.2,20,0,17.4,0,12.9z M14.8,12.9C14.8,0.2,27.2,0,27.2,0c-5.7,3.2-4.6,6.2-4.8,8.5c2.8,0.4,5,2.9,5,5.9c0,3.6-2.9,5.7-5.9,5.7 C18,20,14.8,17.4,14.8,12.9z"></path></svg>정순형 대표는…
이더리움 기반 블록체인 기술 연구 개발 스타트업인 온더(Onther)의 대표이자 서울이더리움밋업 행사의 공동조직자이기도 하다. 현재 탈중앙성 확보를 전제로 한 이더리움 기반의 확장성 프로토콜인 레이어 2 플랫폼 토카막 네트워크를 개발 중이다.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