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자 안전을 위한 넛지 [기고]

입력 2021-06-15 08:00  



넛지란 2017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탈러가 제안한 행동경제학의 중심 개념이다. 사전적으로는 팔꿈치로 살짝 찌르다는 의미지만 행동경제학에서는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디폴트 옵션을 변경하여 바람직한 결과를 유도하는 정책을 의미한다. 교통 분야에서 활용되는 대표적인 넛지 사례로는 곡선부 도로에 설치되는 감속유도선이 있다.

부산 광안대교의 곡선부에는 28개의 가로선이 있는데 그 간격을 조정하여 곡선부에 진입하면 운전자가 과속하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곡선부 교통사고를 줄이는데 효과가 크다. 고속도로 출구에 설치되는 노면색깔유도선도 운전자가 어느 방향을 나가야 하는지 헷갈리지 않게 하여 갑작스런 차로변경을 줄였고 그만큼 사고도 감소하였다.

교통분야에는 아직 적용하지 않은 넛지가 많다. 그 중 보행자 안전을 향상하기 위한 넛지를 우선 몇 가지 소개한다. 우선 새로 출시되는 자동차의 속도계 표시를 살짝 바꿀 필요가 있다. 지난 4월 17일 안전속도 5030 정책이 전국적으로 시행된 만큼 새로 출시되는 차량은 계기판에서 50과 30의 숫자를 크게 하거나 색깔을 바꾸었으면 한다. 안전속도 5030 속도 준수율이 올라갈 것이다. 유럽에서 판매되는 차량의 대부분은 이미 오래전부터 속도 계기판 숫자 중 50과 30을 특별히 표시하고 있다.

둘째, 보행자 안전을 위해 횡단보도 중간에 보행자가 머무를 수 있는 대기공간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횡단보도를 설계할 때 디폴트 옵션으로 횡단보도 중간에 대기공간을 확보하면 고령자들의 무리한 횡단 시도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횡단보도 중앙보행섬이라고 불리는 이 시설은 유럽 도시에서는 디폴트 옵션으로 적용된다. 70m 이상의 광로가 많은 우리나라 도시에서는 꼭 필요하다.

셋째, 인적인 뜸한 넓은 도로에서는 보행자 작동 신호기 설치를 디폴트 옵션으로 하면 좋다. 이는 횡단보도에 도착한 보행자가 버튼을 누르면 잠시 후 횡단보도의 보행 신호기가 녹색으로 바꾸는 장치를 말한다. 차들도 불필요한 대기시간을 줄일 수 있어 좋다. 특히나 야간이나 새벽 시간에 발생하는 보행자 사고를 예방하는데 효과적일 것이다.

넷째, 도시부 도로에서는 차로폭을 조금 줄이는 넛지도 필요하다. 예전에 만들어진 도시부 도로의 차로폭은 3.25m 혹은 3.5m가 기준이다. 시속 100km로 운전하는 고속도로의 차로폭 기준이 3.5m인 점을 고려하면 제한속도가 시속 50km인 도시부 도로에서는 차로폭을 조금 줄여서 3.0m를 기준으로 할 필요가 있다. 설계의 기준이 되는 차량의 최대 폭원이 2.5m 인점을 고려하면 3.0m가 전혀 부족하지 않다. 유럽의 도시들은 3.0m를 디폴트 옵션으로 하고 있으며 속도가 더 줄어야 한다면 2.75m 폭원도 적용한다. 차로폭을 줄여 남는 공간은 보행자나 자전거 공간으로 전환할 수 있다. 차로폭을 줄이면 차량의 속도가 낮아져 사고 위험을 낮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보행자와 자전거를 배려할 수 있는 기회도 얻을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보행자 교통사고를 줄이는 넛지는 큰 비용을 수반하는 정책이 아니다. 차량의 계기판 표시를 바꾸는 비용이 그리 높지는 않을 것이다. 횡단보도 중간에 대기공간을 만드는 비용이나 보행자 작동신호기를 설치하는 비용도 기존의 횡단보도나 신호기 설치비용을 약간만 증가시키면 충분히 도입할 수 있다. 차로폭 기준을 바꾸는 데는 비용이 추가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보행자 안전을 위한 넛지의 효과는 크다. 2020년에도 1093명이 보행 중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그 생명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보행자 안전을 위한 넛지 도입을 주저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한상진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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