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갑자기 산유국이라도 되었나 [여기는 논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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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1-06-15 09:13   수정 2021-07-15 00:01

한국이 갑자기 산유국이라도 되었나 [여기는 논설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사태를 전후해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으로 주목받고 있는 두 나라가 있습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향후 글로벌 자금 흐름에 큰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남미 베네수엘라의 인플레이션은 망국적 포퓰리즘이 얼마나 극단적 물가상승을 일으켜 국민들의 삶을 망가뜨리는 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둘 다 중요한 이슈이지만 한국 입장에서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상황들이 베네수엘라의 망국적 인플레이션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자주 비교되곤 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얘기하면 베네수엘라는 한국과 비교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확인된 석유 매장량이 세계 1위로 1970년대만해도 미국과 비슷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자랑했던 자원 부국입니다.한창 잘 나갈 때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57개 유전에서 나오는 하루 원유 수입이 2000억원에 달했다고 합니다. 자원 빈국으로 식민지 배상금과 광부·간호사들이 해외서 보내 온 돈, 근로자들이 한 푼 두 푼 모은 저축액으로 근대화 기반을 깔았던 한국과는 출발부터 다릅니다.


그러나 두 나라 사정은 1990년대 들어 확연하게 갈립니다. 베네수엘라의 축복이었던 석유는 1998년 좌파 정권이 집권하면서 '저주'가 됩니다.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석유로 벌어들인 돈으로 15년 동안 무상교육, 무상의료, 무상주거 등 포퓰리즘 정책을 펼쳐 인기를 얻습니다. 그러나 2015년부터 시작된 원유가격 하락에 미국의 경제제재가 겹치면서 경제는 곤두박질쳤고, 베네수엘라는 무제한 화폐 발행으로 대응에 나섭니다.

결과는 완전한 경제파탄입니다.극심한 물자 부족과 130만%(2018년 기준)에 달하는 세계 유례없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전 국민의 20%가 '살기 위해' 인근 국가로 탈출했습니다.국내에 남은 인구의 30%는 기아에 내몰려 국제기구의 도움을 받고 있고, 치안이 무너져 중남미에서 가장 살기 불안한 나라가 됐습니다.

한국은 그 동안 저축과 투자를 통해 세계 10대 경제대국 반열에 올랐고, 재정건전성도 지켜왔습니다. 1990년대말부터 10년 간격으로 터진 위기도 탄탄한 재정 때문에 무사히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한국의 씀씀이는 베네수엘라에 버금갈 정도입니다.나라 곳간이 비어가고, 빚이 산더미 처럼 쌓여가 국내외 기관들로부터 재정건전성에 대한 경고를 받는데도 '빚내서 돈풀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포용적 성장'을 내건 현 정부는 매년 세수보다 많은 지출 예산을 짰습니다. 적자국채 발행은 일상이 돼 버렸고, 그것도 모자라 8차례에 걸쳐 100조원에 달하는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했습니다. 그 때문에 2016년말 623조원 하던 국가채무는 4년여만에 966조원으로 343조원(55%)가 늘었습니다. 역대 정부 중 단연 최고 증가폭입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9번째 추경까지 합하게 되면 국가채무가 1000조원을 넘길 수 있습니다.정부가 궁극적으로 손실을 책임지게 될 연금충당부채와 공기업 빚까지 합치면(국가부채) 그 규모가 2000조원에 육박합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이 씀씀이를 줄이지 않는다면 주요 35개국 중 국내총생산(GDP)대비 국가채무 비중이 가장 빨리 늘어나 대외신인도 등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정부만 빚이 많은 게 아닙니다. 부동산정책 실패로 인한 집값 폭등과 소득주도성장 같은 어줍짢은 정책실험으로 자영업·소상공인들이 타격을 받으면서 가계와 기업 부채도 이미 각각 2000조원 규모로 늘었다는 분석입니다. 지난 4년간 가계부채 증가 속도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국가 중 1위, 기업 부채는 3위입니다. 가계·기업·정부 빚을 모두 합한 규모가 6000조원이고 지난해 기준 명목 GDP가 1986조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경제 주체들이 열심히 벌어도 3년은 돼야 갚을 수 있는 빚더미 속에 살고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이런 상황인데도 앞으로 대통령이나 앞으로 대통령을 하겠다는 유력 주자들의 퍼주기 공약은 점입가경입니다. 대통령은 인플레 압력 때문에 조기 금리인상이 필요할 지 모른다는 한국은행 분석을 깔끔히 무시하고, 적어도 내년까지는 확장 재정기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4차 재난 지원금을 다 못나눠줬는데도 5차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꺼내 들었습니다. 이재명·이낙연·정세균 등 대선 주자들은 매년 적게는 수조원, 많게는 수십조원의 재원이 소요되는 공약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놓습니다. "좌파 정치인들이 할 줄 아는 거라곤 빚내서 뿌리는 것 밖에 없다"는 소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닙니다.

베네수엘라는 그래도 희망이 있습니다.최근 국제 원유가격이 상승세를 타고 있고, 새로 출범한 조 바이든 미 행정부와의 화해도 모색하고 있습니다.경제 제재가 풀리고 석유 수출이 재개되면 어느 정도 숨통이 터질 것이라는 기대입니다. '비빌 언덕'이 있다는 뜻입니다.
한국은 그런 게 없습니다. 수출이든 내수든 성장으로 스스로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방법은 하나입니다. 이미 실패한 정부 주도 모델을 따를 여유가 없습니다. 시장이 성장과 분배를 주도하는 지배구조와 경제정책으로의 대전환이 필요합니다.

박수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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