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교육 알박기' 된 교육과정 개정 시도

입력 2021-06-17 18:10   수정 2021-06-18 00:06

교육부가 느닷없이 초·중·고등학교 교육과정 개편 작업에 착수했다. 맹목적인 경쟁 중심의 교육과정을 다른 사람들과의 협력·연대를 강조하는 ‘미래형’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교육부가 밝힌 개정의 명분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오히려 대선 공약이었던 ‘고교학점제’의 2025년 전면시행에 대못을 박아버리겠다는 불순한 시도일 가능성이 더 높다. 여당이 ‘국가교육위원회법’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과 똑같은 ‘교육 알박기’일 수 있다는 뜻이다.

교육과정 개정이 절박한 것은 사실이다. 북한의 6·25 남침에 대한 엉터리 설문조사로 촉발된 국사 필수화를 핑계로 탄생한 현행 2015년 개정 교육과정은 부끄러운 졸작이었다. 국사를 포함한 모든 과목이 부실해졌고, 모든 학생이 피해자가 됐다. 특히 수학과 과학은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무너져버렸다. 물리나 화학을 선택한 학생은 찾아보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학생의 적성을 살려주고, 학습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약속은 빈말이었다. 학생들의 선택권은 사범대의 극단적인 이기주의에 의한 과도한 과목 쪼개기로 의미를 잃어버렸다. 일제 잔재인 ‘문과·이과’의 구분은 학교 현장에서 더욱 확실하게 고착화됐다. 교육부를 믿고 수학을 외면했던 ‘문송이’들은 최근 시행된 무늬만 ‘통합형 수능’에서 참패했다.

교육과정 개정은 임기를 10개월 남겨둔 정부가 섣불리 시작할 일이 절대 아니다. 교육과정 목표와 학년별 교과 체제를 밝히는 ‘총론’과 교과별 교육 내용과 평가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규정한 ‘각론’을 마련하는 데만 적어도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교사·교육학자·학부모를 포함한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이견을 조율하는 일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후속 작업도 엄청나다. 개정된 교육과정에 따라 수백 종의 교과서를 개발하는 데도 1년 이상의 시간과 상상을 넘어서는 투자가 필요하다.

개정을 추진하는 일정부터 묘하다. 내년 10월에 교육과정을 고시하는 것이 교육부 목표다. 교육과정 개정의 대부분과 후속 작업이 모두 내년 5월 들어서게 될 새 정부의 몫으로 남겨지게 된다는 뜻이다. 교육과정 개정 작업은 일단 시작하면 중간에 목표를 바꾸거나 작업을 중단하기가 어렵다.

결국 지난 4년 동안 교육부가 실질적으로 내팽개쳐 뒀던 ‘고교학점제’의 전면 시행도 기정사실로 굳어질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로서는 개정 작업을 시작만 해버리면 공짜로 대선 공약을 시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개정 방법도 황당하다. 일반 국민으로 구성된 국민참여단의 공론화로 미래 교육 비전과 인재상, 교육 목표, 지원 체계를 결정하겠다는 것이 교육부의 구상이다. 공론화는 1988년 미국 스탠퍼드대의 언론학자 제임스 피시킨이 개발한 여론조사 기법이다. 국민참여단의 ‘숙의(熟議)’ 과정을 추가해 단순한 여론조사의 편향성과 불확실성을 부분적으로 개선해보려는 시도다. 공론화의 효용성이나 사회적 가치가 분명하게 확인된 것은 아니다.

더욱이 피시킨의 공론화를 통해 복합적인 문제에 대한 사회적 여론을 수렴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학생들의 평생을 좌우하게 될 교육 비전과 목표를 최소한의 전문성이나 책임감을 기대할 수 없는 국민참여단에 떠맡겨버리겠다는 발상부터 무책임한 것이다. 2017년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중단시키기 위해 처음 도입한 공론화의 경험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학생들에게 무제한적인 과목 선택권을 보장해준다고 교육의 다양성이 실현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학생들의 과도한 편식을 차단하기 위한 적지 않은 준비와 상당한 물질적 투자가 반드시 선행돼야만 하는 매우 낯설고 어려운 제도다. 고교학점제가 복마전으로 변해버린 대학 입시의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공허한 것이다. 대선 공약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비현실적인 고교학점제를 다음 정부에 강요하겠다는 시도는 절대 용납될 수 없다. 국민들은 지금도 수능 절대평가와 자율형사립고 폐지 등의 뼈아픈 교육정책 실패를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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