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되살아난 국어사전

입력 2021-06-17 18:05   수정 2021-06-18 00:19

고교 2학년 수업시간. 교사가 “영화 ‘기생충’의 가제(假題·임시제목)는 ‘데칼코마니’였다”고 말하자 학생들이 “가제는 랍스터 아닌가요?”라고 물었다. ‘가제’ 뜻을 모르니 ‘바닷가재’로 받아들인 것이다. 얼마 전 EBS 다큐멘터리 ‘당신의 문해력’에 나온 장면이다. 중3 학생의 문해력도 30%는 미달, 11%는 초등학교 수준으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가 지난달 발표한 국제학업평가에서 한국 청소년들은 문장 속의 ‘사실’과 ‘의견’을 구별하는 능력(25.6%)에서 꼴찌를 기록했다. 글자만 알지 문장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순우리말 뜻은 더 모른다. 지난해 광복절 연휴가 사흘로 늘었을 때 “3일을 왜 사흘이라고 하느냐. 사흘은 4일 아니냐”고 항변하기도 했다.

그나마 올 들어 국어사전 판매가 140%나 늘었다니 반가운 일이다. 교보문고 구매층 가운데 40대 여성이 초등생 자녀를 위해 주로 구입했다고 한다. 코로나 사태로 비대면 수업이 늘면서 자녀의 언어능력이 떨어질까 봐 ‘초등 국어사전’을 앞다퉈 사준 것이다.

국어사전에는 언어의 그루터기인 개념어가 담겨 있다. 이를 모르면 학업과 일상업무, 교역 등 모든 분야에서 소외된다. 언어는 문명의 척도다. 그 기본이 맞춤법인데 학생을 가르치는 학원마저 합격률을 ‘합격율’로 써 놓고 부끄러운 줄 모른다. 사물에 존칭까지 붙인다. “커피 나오십니다” “2만원이십니다” 같은 코미디가 난무한다.

한글의 역사는 짧다. 가장 완벽에 가깝다는 프랑스어 문법체계는 긴 세월에 걸친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연구 위에서 정립됐다. 우리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표제어 51만여 개 중 고유어는 25.5%에 불과하다. 그래서 한자 개념어를 빌려다 쓰는 게 많다. 이마저도 공부하지 않으면 까막눈이 된다.

최근 발행된 국제학술지 ‘아동 발달’에 따르면 자녀의 문해력은 부모의 독서와 언어 사용에 큰 영향을 받는다. 가정에서 책을 많이 읽어야 문해력이 높아진다는 말이다. 단순한 인터넷 검색보다 사전을 찾아가며 낱말과 문장 의미를 이해하는 게 그 첫걸음이다.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4명이 1년에 책을 한 권도 안 읽는다. 그러니 EBS 문해력 측정에서 성인들의 평균 점수가 54점밖에 안 된다. 이참에 자녀를 위해 사다 놓은 ‘초등 국어사전’이라도 다시 한번 들춰 볼 일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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