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중국에 대한 견제가 강해진다는 건, 뒤집어 보면 중국의 발전이 그만큼 위협적이라는 의미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중국도 당연히 서방의 견제가 더욱 강해질 것으로 보고 있고요, 그래서 틈만 나면 강조하는 게 기술 자립입니다. 중국 기술 자립의 선봉장이라면 두 기업을 들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고요, 또 하나는 반도체 파운드리에서 중국 1위인 중신궈지, SMIC입니다. 화웨이는 비상장사라서 일반 투자자가 접근하긴 어렵습니다. 오늘은 상하이와 홍콩에 상장돼 있는 중신궈지를 중심으로 중국 반도체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이름부터 보면 중신궈지는 한국식으로 읽으면 중심국제(中芯國際)입니다. 중은 중국, 신은 중국어로 반도체를 뜻하는 심입니다. 궈지는 말 그대로 국제, 인터내셔널입니다. 영어 이름 SMIC는 Semiconductor Manufacturing International Corporation의 약자입니다.참고로 반도체 파운드리 세계 1위인 대만의 TSMC는 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입니다. '대만반도체제조회사'입니다. 중신궈지나 TSMC나 네이밍 센스는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중신궈지는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5위를 하고 있습니다. 점유율은 5% 안팎입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TSMC가 50% 정도 하고요, 삼성전자가 18%로 2위입니다. 미국 글로벌파운드리와 대만 UMC가 7~8%씩이고요, 중신궈지가 그 다음입니다.
파운드리는 반도체 수탁생산이라고도 합니다. 반도체를 제품 기준으로 나누면 메모리와 비메모리로 구분하기도 하는데요. 한국이 워낙 메모리 강국이라 이런 구분이 생긴 것 같습니다. 글로벌 시장 규모로 보면 비메모리가 70%고 메모리가 30% 정도로 비메모리 시장이 두 배 이상 큽니다. 비메모리를 시스템반도체라고도 하는데요, PC를 보면 중앙처리장치인 CPU는 시스템반도체, 비메모리고 램은 메모리로 보면 됩니다.반도체는 매년 엄청난 설비 투자를 해야 하는 대표적인 장치산업입니다. 비교적 정형화돼 있는 메모리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기업이 설계도 하고 생산도 합니다. 그런데 비메모리는 워낙 종류가 다양해서 설계와 생산이 분업화돼 있습니다. 설계 전문업체는 공장인 팹(fabrication)이 없다고 해서 팹리스(fabless)라고 하고요, 생산 전문업체는 파운드리(foundry)라고 부릅니다. 설계와 생산을 모두 하는 기업을 종합반도체기업, IDM이라고 하는데 인텔이 대표적입니다. 설계와 생산에서 갈수록 분업화가 심화되고 있고요, 인텔도 생산 부문에서 TSMC나 삼성에게 외주화를 늘리고 있습니다.
1차와 2차 빅펀드가 가장 다른 점은 선택과 집중입니다. 1차 빅펀드는 반도체를 하겠다고 하는 기업들에게 그야말로 '묻지마' 투자를 했습니다. 정부와 민간에서 2조원 넘는 자금을 유치했다가 작년에 도산한 우한훙신반도체처럼 먹튀 사례도 많았습니다.2차 펀드에선 이런 시행착오를 줄이겠다는 게 중국 정부 목표입니다. 물론 중국이 이런 목표를 공식적으로 제시한 건 아닙니다. 이런 목표를 내놓으면 1차 펀드 실패를 인정하는 꼴이 되니까요. 하지만 실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반도체에 투자하는 흐름을 보면 2차 빅펀드의 절반 이상이 중신궈지로 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중신궈지는 중국 국유기업 중에서도 중앙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기업입니다. 중국 국유기업은 국무원 국유자산관리위원회 아래 있는 중앙기업과 각 성이나 시가 보유한 기업으로 구분합니다. 중앙정부 국유기업은 줄여서 중앙기업, 중국식으로 하면 '양치'라고 합니다. 중신궈지의 최대 주주는 중국정보통신과학기술이라는 국가기관이며 지분 11.8%를 갖고 있고요, 조금 전에 말씀드린 국가반도체산업투자펀드, 1차 빅펀드가 갖고 있는 투자회사인 신신투자회사가 또 10.2%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정부 보유 지분이 20%를 조금 넘습니다.
실적이 이렇게 좋아지는 건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수요가 계속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 같은 기술 발전으로 반도체가 더욱 많이 쓰이고 있는데다 작년에는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확대되면서 관련 기기 시장도 커졌습니다. 그런데 파운드리업체들의 증설은 이런 수요 증가를 따라잡기엔 아직 속도가 느려서 당분간 실적 호조가 계속될 것으로 중신궈지는 전망했습니다.

중신궈지는 현재 홍콩거래소와 중국본토 상하이거래소 커촹반에 상장돼 있습니다. 커촹반은 선전거래소 촹예반과 함께 중국판 나스닥으로 불리는 과학기술기업 중심 시장입니다. 2004년에 뉴욕과 홍콩에 동시 상장했다가 2019년 뉴욕 상장을 자진해서 폐지했습니다. 그 다음 작년 8월 상하이에 입성했습니다. 당시 530억위안, 약 9조원을 조달했습니다. 상장 첫날에는 공모가보다 3.5배 오른 82위안을 기록하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주가는 계속 50위안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주가 55위안 기준 시가총액은 4300억위안, 약 75조원입니다. 실적이 좋은데도 주가가 안 오르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제재라고 하겠습니다.
미국은 지난 3월 ASML이 중신궈지와 맺은 공급 계약을 올해 말까지 연장하는 걸 승인해 줬습니다. 하지만 극자외선 노광장비가 아니라 기존에 공급하던 장비 범위 내에서만 허가했습니다. 미국 정부가 최근 ASML 말고 다른 자국 반도체 소재 장비업체들에게 SMIC와의 거래를 승인해 주고 있습니다. 자국 반도체 소재 장비업체들이 실적이 악화되자 지속적으로 정부에 거래 허가를 요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중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제재가 일부 완화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옵니다.
다만 중신궈지가 뉴욕증시에서 이미 떠난 상태이기 때문에 이런 투자 제한 제재는 장비 구매 제한보다는 영향이 적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입니다.

파운드리 회사들은 이런 공정을 보통 30%씩 줄여왔습니다. 선폭을 30% 줄이면 넓이는 절반 정도로 줄어드니까 같은 면적에서 생산하는 반도체 양이 두 배로 늘어나고, 또 같은 크기의 반도체라면 성능이 두 배로 늘어난다는 얘기도 됩니다. 무어의 법칙이라고 많이들 들어보셨을 텐데, 반도체의 성능이 2년마다 두 배씩 좋아진다는 일종의 경험칙입니다. 실제로 파운드리 회사들은 2~3년에 한 번 씩 공정 숫자를 30%씩 줄여오고 있습니다.
TSMC가 2011년에 28㎚를 했고, 2014년 16㎚, 2017년 10㎚, 2018년 7㎚에 돌입했습니다. 5㎚는 올해 시작했고요. 삼성전자도 TSMC를 1년 정도 차이를 두고 따라가고 있습니다.
중신궈지는 2011년에 40㎚ 수준이었는데 중간 과정 건너뛰고 2015년에 28㎚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더니 4년 뒤인 2019년에 다시 14㎚로 끌어올렸습니다. 5㎚인 TSMC나 삼성전자에 비하면 세대로는 3세대, 햇수로는 대략 5년 이상 뒤쳐져 있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14㎚ 공정 고객사는 사실상 화웨이밖에 없습니다. 중신궈지의 대부분 공장들은 여전히 40㎚ 이상 공정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신규 투자 공장들도 대부분 14㎚급이고, 기존 주력인 상하이가 7㎚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10㎚를 건너뛰고 7㎚로 바로 간다는 점은 주목할 만 하다고 하겠습니다.
중신궈지는 또 지난달에 전체 직원의 20% 정도 되는 4000여명에게 특별 스톡옵션도 지급했습니다. 한 주당 행사 가격이 20위안이니까 현재 주가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입니다.
중국 정부가 반도체 산업 육성에 나서면서 돈을 풀자 그동안 소프트웨어로 몰렸던 인재들이 반도체 업계로도 많이 이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많은 중국 젊은이들은 샤오미 레이쥔이나 텐센트 마화텅 같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시작해서 창업하고 큰 돈을 번 사람들을 롤모델로 삼아 왔습니다. 중국 반도체가 잘 안 됐던 이유로 인재 부족을 많이 꼽았는데, 이제 반도체에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니 인재가 더 많이 몰려들 것으로 전망됩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중신궈지 말고 중국에서 주목받는 반도체 관련 종목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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