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평양 능라도 영상' 삽입한 제작사 존재도 몰랐다

입력 2021-06-18 14:54   수정 2021-06-18 14:57


외교부가 지난달 P4G 정상회의 개막식 영상에 ‘평양 능라도 영상’을 삽입한 영상 제작 업체들의 존재도 몰랐던 것으로 드러났다. 능라도 영상은 외교부가 알지도 못하던 업체들의 자체 판단하에 추가됐다. 외교부는 영상 참사 20일이 지나서야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외부 기관에 수사 의뢰를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늑장 대처’에 나선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외교부 당국자는 18일 능라도 영상이 삽입된 경위에 대한 자체 조사한 결과를 발표하고 “지난 4월 행사 대행업체 A사가 일차 외주업체 B사와 3850만원을 주고 계약하고 모션 그래픽 특별 부분에 대해서는 C사에 의뢰를 했다”며 “준비기획단은 B사나 C사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지난해 2월 행사 대행 업체 A사에 47억8000만원을 주고 계약을 했는데, A사가 영상 제작을 위해 따로 B사와 계약을 하고 B사가 다시 C사에 외주를 맡길 때까지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능라도 영상은 정상회의 나흘을 앞두고 외주 업체들이 보고도 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내린 판단에 따라 삽입됐다. 수묵화가 들어갔던 첫 번째 버전의 영상은 지난달 19일 준비기획단에 보고됐지만 기획단은 “행사 방향과 맞지 않는 것 같다”며 수정을 지시했다. 이후 A사는 “40여개국 정상들이 참여하는 행사이니 지구 영상을 추가하는 게 어떻겠냐”고 지시했고 B사는 25일 지구 영상이 삽입된 개막 영상을 기획단에 보고했다. 하지만 B사 대표는 자체적으로 “서울에서 열리는 행사이니 미국이 아니라 서울에서 ‘줌 아웃’되는 게 좋겠다”며 C사에 영상 교체를 요구했다. C사는 영상 구매 사이트에서 ‘코리아’, ‘위성’, ‘지구’ 등의 단어를 검색해 찾은 능라도 영상을 삽입했다. C사 담당자는 이 영상의 미리보기 영상을 B사 담당자에 보내 이를 기초로 공동작업에 착수했다.

하지만 이 원본 영상의 제목에는 ‘평양’이 명시돼있었다. 지난 3일 한국경제신문의 단독 취재 결과 C사가 해당 영상을 구매했다는 사이트에 올라온 영상 제목은 ‘지구 궤도에서 동아시아의 북한 평양으로의 줌인(Zooming in from earth orbit to Pyongyang North Korea in East Asia)’이었다. 외교부 당국자는 “C사 담당자는 지난달 30일 첫 언론 보도 이후 해당 사이트에 가서 재확인하니 다운로드 위한 페이지 상에 해당 제목이 명시돼있어 자신이 실수했음을 후회했다고 언급했다”고 말했다. 원본 제목에 평양이 떡하니 있었는데 두 업체는 이를 인지하지 못했고 언론 보도가 나온 이후에야 확인했다는 설명이다.


해당 영상은 청와대와 외교부 관계자 등이 참여한 리허설에서 상영됐지만 실무진 어느 누구도 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능라도 영상이 추가된 뒤 리허설은 개막식 이틀 전인 지난달 28일. 그 다음날인 29일, 개막식 당일인 30일 오전까지 총 세 차례 열렸다. 최초 리허설 당시에는 청와대 관계자들도 참석해 있었다. 외교부 당국자는 “기획단은 A사만이 직접 계약 업체라 B사와 C사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며 “A사의 설명에 따르면 B사가 인공지능(AI) 기술이 현장화면을 생동감, 현실감 있게 바꾸는 그런 실력을 갖고 있고 영상 디자인 인증된 업체라 선정했다고 한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최종 점검을 하지 못한 책임을 인정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최종 콘텐츠 점검과 승인이 준비기획단의 주 임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관리 책임을 사실상 방기했다고 판단한다”며 “개막식 영상물만 별도로 시사회나 평가회를 열어 점검했어야 하는데 민간 행사업체에 일체를 위임하는 중대한 귀책사유를 야기했다”고 밝혔다. 이어 “기획준비단장을 포함해 부단장, 심의관, 의전행사부 실무자에 대한 조사를 집중적으로 했고 경중에 따라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고 했다. 기획준비단 지휘관리 책임자 4~5명에 대해서는 징계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문제는 해당 업체에 대한 처벌이다. 외교부는 지난달 30일 능라도 영상이 처음 상영된지 20일 만에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단순 실수나 고의성을 뒷받침할 정황이 있었냐는 질문에는 “문답도 받고 대면도 했는데 확인은 못했다”며 “파일명이 크게 나오는데 확인 없이 영상만 보고 했다는 게 상식적으로 파악이 안 된다”고 밝혔다. 실수라고 믿기 어려운 정황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지금까지 “제작 업체의 실수”라는 입장만을 반복했고 자체 조사로는 확인도 못했다는 점이다.

수사 기관에 의뢰하는 것도 “검토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을 밝힌 것에 대해 늑장 대처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P4G 정상회의는 코로나19로 1년 연기되기 전엔 당초 지난해 개최가 예정됐던 대규모 정상회의다. 하지만 개막식 영상이 개막 나흘 전 갑자기 바뀌었고 영상 참사가 났음에도 ‘자체 조사’를 고집해 20일만에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외교부 당국자는 “국가계약법에 나온 것처럼 단순 실수는 구분이 되는데 고의적으로 한 거라면 당연히 여러 방면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며 “수사 전문 기관의 설명을 받아서 들어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의뢰 결정은 아직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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