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일본 경제정책 어디로 가나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입력 2021-06-25 07:32   수정 2021-06-25 07:40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내각은 지난 18일 각의(국무회의)를 열어 경제재정운영과 개혁의 기본방침(호네후토 방침)을 확정했다. 매년 6~7월 정해지는 호네후토 방침은 일본 정부의 이듬해 경제정책과 예산편성의 기본 방향이 된다.

호네후토(骨太)란 '기개가 있는'이란 뜻의 일본식 표현이다. 2001년 모리 요시로 내각의 재무상이었던 고(故) 미야자와 기이치가 "국가예산은 재무성에 맡겨 심도있게 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발언한데서 이런 별칭이 붙었다. '경제재정운영과 개혁의 기본방침'이라는 명칭이 길기 때문에 지금은 일본 총리도 기자회견에서 '호네후토 방침'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호네후토 방침에 오른다는 건 이듬해 예산을 확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매년 5~6월이면 이해관계가 걸린 정책을 반영시키려는 정부 부처와 경제단체의 치열한 로비전이 벌어진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일본 정부의 후진성이 만천하에 드러난 지난해 호네후토 방침의 1순위는 행정의 디지털화였다. 올해는 디지털화와 탈석탄화 등 스가 정부의 양대 정책에 중국을 염두에 둔 경제안보가 핵심 과제로 추가됐다. 최저임금 인상, 고용제도 개선 등도 내년 일본 정부가 주시할 경제정책으로 예고됐다.

◇경제안보 : 반도체 '주요국 수준' 지원

일본 정부는 반도체를 디지털화를 위한 '국제전략물자'로 지정하고 경쟁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지원하기로 했다.현재 일본 정부가 반도체를 지원하기 위해 만든 기금의 규모는 2조엔(약 20조5000억원)이다.

반면 유럽은 1450억유로(약 197조원), 미국은 390억달러(약 44조원)를 앞으로 2~5년간 지원할 방침이다. 중국도 100조원 규모의 지원책을 발표했다. 우리나라는 2022년까지 약 5조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다른 나라와의 차이를 의식해 집권 여당인 자민당의 아마리 아키라 반도체전략추진의원연맹 회장(세제조사회장)은 "조엔 단위 규모의 지원을 원한다"고 말했다.



반도체를 국제전략물자로 지정한 건 세계적인 반도체 부족이 반복되는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일본은 반도체의 6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대만과 중국 의존도가 높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행정부와 협조노선을 강화하는 측면도 있다. 지난 4월 미일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재구축하기로 합의했다.

일본 정부는 스마트폰과 가전제품, 자동운전 차량에 사용되는 반도체의 제조·개발 거점을 자국에 유치하는데 투자를 집중할 계획이다.

◇탈석탄 : 소형 트럭·버스도 2040년 친환경차로

스가 총리는 지난해 10월 취임 후 첫 국회 연설에서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실질 배출량을 0으로 줄여 탈석탄사회를 실현한다는 목표를 공식화했다. 이를 위해 일본 정부는 해상 풍력발전 등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040년까지 전체의 60~70%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현재 발전능력이 1만4000㎾에 불과한 해상 풍력발전 설비를 2030년까지 1000만㎾, 2040년에는 원자력발전소 40기 규모인 3000만~4500만㎾로 늘릴 계획이다.

화석연료의 대체 수단으로 기대를 모으는 수소 산업을 육성하는데도 정책을 총동원하기로 했다. 현재 ㎏당 1100엔인 수소 가격을 2030년까지 330엔, 장기적으로 220엔까지 낮춘다는 목표를 세웠다. 차량용 수소스테이션도 2030년까지 현재의 6배인 1000기로 늘리기로 했다.

지난해 12월 발표한 탈석탄화의 로드맵 '그린 성장전략'도 구체화해 호네후토 방침에 명시했다. 먼저 2035년까지 신차를 친환경차로 교체하기로 했다. 8t 이하 트럭 등 소형상용차도 2040년까지 100%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 연료전지차(FCV) 등 친환경차량으로 바꾸기로 했다.

친환경차 보급을 위해 일본 정부는 2030년까지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용 급속충전기 3만기와 충전설비 15만기를 갖출 계획이다. 전기차 배터리 제조능력 역시 1억㎾ 규모로 늘리기 위해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일본 정부는 특히 자동차 업종에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2019년 일본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의 16%가 자동차에서 나왔다. 하이브리드차에 집중한 결과 전기차 같은 친환경차 보급률도 경쟁국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전기차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 판매대수는 300만대로 1년새 40% 늘었다. 유럽은 140만대로 2배 이상 늘었다. 일본은 2만9000대로 25% 줄었다.

◇최저임금 : 전국 평균 1000엔 조기실현

일본 정부는 호네후토 방침에 "코로나19 감염증 확대 전의 실적을 이어나가 전국 평균 1000엔을 목표로 한다"고 명시했다. 작년 일본의 전국 평균 최저임금은 902엔이었다. 아베 신조 전 총리 내각은 2016년 호네후토 방침에 연 3%씩 최저임금을 인상해 전국 평균 1000엔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처음 제시했다.

2019년까지는 이 목표가 대체로 달성됐다. 하지만 지난해 후생노동성 최저임금 심의회는 코로나19의 충격을 이유로 목표치 제시를 보류했다. 그 결과 지난해 일본의 최저임금은 1엔(0.1%) 올랐다.

일본의 최저임금은 주요국에 비해 낮다. 독일은 9.5유로(엔화 환산시 약 1260엔), 프랑스와 영국은 각각 10.25유로(약 1360엔)와 8.91파운드(약 1380엔)다. 코로나19를 겪은 지난해에도 대부분의 나라들은 최저임금을 1~2%씩 인상했다.

우리나라는 8720원으로 일본보다 낮지만 2018~2019년 2년간 30% 가까이 최저임금을 올렸다. 미국은 연방최저임금이 7.25달러(약 800엔)지만 많은 주들이 이보다 높은 수준에서 최저임금을 설정한다.

현재의 최저임금으로는 주 40시간을 일해도 연간 수입이 200만엔에 못미친다. 과거에는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 대부분이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주부나 학생들이어서 세대의 소득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았다. 최근에는 세대주가 최저임금을 받는 사례가 늘고 있어 가계의 소득과 소비수준으로 직결된다는 평가다.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미무라 아키오 일본상공회의소 회장 등 3대 중소기업 단체 대표자들은 지난 6월4일 스가 총리와 만나 "코로나19로 많은 중소기업·영세 사업자가 경영위기에 직면했다"며 최저임금을 유지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들은 "최저임금을 더 올리면 지역경제를 지탱하는 기업의 경영을 압박해 고용 조정과 폐업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하는 방식 개혁으로 'G7 꼴찌' 생산성 개선

호네후토 방침은 "시대에 맞지 않는 기업조직과 일하는 방식, 인재 육성 방법 등 사회 전체의 조직·구조를 전환해 포스트 코로나에 대비한 움직임을 가속화한다"고도 명시했다. 구체적으로는 인재 육성과 재교육을 적극 지원한다. 학업을 병행하는 근로자에게 지원금을 주는 제도 등이 마련된다.

선택적 주4일 근무제 도입을 권장하고, 우수한 인재와 자금이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흘러들어갈 수 있도록 겸업과 부업을 촉진하기로 했다. 미국과 유럽에 비해 저조한 창업도 활성화하기로 했다.

일본 정부가 일하는 방식과 재교육을 호네후토 방침에 반영한 것은 낮은 생산성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경제 회복도 어렵다고 판단해서다. 일본생산성본부에 따르면 2019년 일본인 1인당 노동생산성은 8만1183달러(약 9236만원)로 주요 7개국(G7) 가운데 꼴찌였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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