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는 사람이 바보지" 했는데…보이스피싱에 7억 날린 남편

입력 2021-06-24 10:22   수정 2021-06-24 10:45


"남편이 보이스피싱 일당에 속아 현금 7억2천만 원을 건넸습니다."

지난 3월 남편이 보이스피싱 피해를 보았다는 사실을 밝힌 A 씨는 23일 커뮤니티에 위와 같은 제목의 글을 올리면서 "제목을 쓰면서도 기가 막힌다. 예금·적금도 제대로 없고 가진 거라곤 집 한 채인 외벌이 직장인이 무슨 돈이 있어서 그 거액을 현금으로 갖다줬을까"라고 한탄했다.

A 씨 남편 B 씨는 어느 날 검찰로부터 '범죄에 연루됐다'는 전화를 받았다.

평소 '보이스피싱은 어리석은 사람만 당하는 것이다. 중국말투로 어설프게 전화 오는데 그걸 속는 사람이 바보지'라고 했던 B 씨지만 3주 동안 수사에 협조한다는 생각만으로 아내에게도 이런 사실을 감추고 철저히 속고 있었다.

◆ "수사에 협조 안하시면 도와드릴 수가 없습니다"

처음 전화를 건 여성은 "○○○ 검사가 수사 때문에 통화를 해야 하니 전화 연결되면 받으라"고 안내했다. 공식적인 말투로 전화를 하자 B 씨는 놀란 마음으로 통화를 하게 됐고 그가 믿는다는 걸 알게 된 일당들은 검찰, 금융감독원 등으로 사칭해 정신없이 전화를 돌렸다.

온갖 공문을 보여주고 영상통화까지 하면서 B 씨를 믿게 만들었고 인증프로그램이라고 속인 해킹 프로그램을 깔게 했다.

핸드폰으로 전화 위치가 다 통제되니 B 씨는 더욱더 그들을 관공서 직원이라고 믿고 지시하는 대로 따르게 됐다.

이렇게 해서 B 씨는 6회에 걸쳐 예금, 카드론, 신용대출, 집 담보대출까지 현금으로 받아 쇼핑백에 싸서 수사관이라는 사람을 만나 건넸다. 이런 대면 편취 수법에 당한 남편은 처음엔 이를 눈치챈 아내에게 '절대 보이스피싱은 아니다'라고 펄쩍 뛰다가 나중에 경찰서에 가서야 무너지고 말았다.

A 씨가 경찰에 신고하고 백방으로 수소문해 봤지만 계좌이체가 아닌 대면 편취 보이스피싱은 아무런 구제책이 없었다.

결국 5일 만에 집을 급매로 내놓고 잔금까지 받아서 빚을 갚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범죄피해자 구제센터에 문의했지만 보이스피싱은 도움을 받을 길이 없었다.

A 씨는 "큰아이가 수험생이라 공부에 몰두해야 하는데 학원은커녕 문제집도 못 사줄 상황이다. 둘째가 김과 김치만 놓인 식탁을 보고 왜 '텅 비었어?'라고 말하자 눈물이 났다"며 "전에는 햄버거 먹고 싶다고 할 때 '몸에 안 좋아서 안 된다'라고 했는데 이제는 '돈이 없어서 못 사준다'고 해야 하는 상황이 막막해 눈물이 난다"고 밝혔다. 이들은 현재 월 800만 원이 넘는 이자를 내고 있다.

A 씨는 "일당 중 1명은 검거돼 검찰에 송치됐다고 하는데 한 가정을 박살 내고 아이들 미래를 망쳐놓은 사람들이 꼭 죗값을 받길 바란다"고 했다.

이어 "평생 일구어 온 것을 한순간에 잃었지만 빚을 갚고 다시 시작해 보려 한다"면서 "잘 버티고는 있지만 한순간 '다 놓아버릴까' 생각이 들 때가 있어 섬뜩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보이스피싱으로 극단적 선택한 분들 기사 볼 때마다 이해가 간다"면서 "금전적 피해 본 것만으로도 너무 힘든데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후회와 자책까지 감당해야 한다는 게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이런 대면 편취 사기를 당한 이들은 하나같이 "치밀하게 설계된 사기 수법에 당시에는 보이스피싱이라는 의심을 하지 못했다"고 입을 모은다.

◆ 대포통장 범죄 연루됐다는 검찰 말에 5천만 원 건네


지난해 같은 수법으로 사기를 당한 C 씨 또한 "보이스피싱으로 약 5천만 원의 대면 편취를 당한 피해자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만 당시에는 제가 혼란스럽도록 계속 전화하고 가족까지 들먹여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경험담을 전했다.

C 씨는 "'대포통장 사기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서울 중앙지검 수사관에게 전화가 왔다"면서 "혐의를 입증하지 않으면 구속될 수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엔 저도 잘못한 게 없기 때문에 믿지 않았지만 담당 수사관, 검사, 금융감독원 직원을 차례로 바꿔주며 사건번호까지 알려주고 실제인 것처럼 행동했다"면서 "현 검찰총장 사인이 들어간 공문을 보내고 제 직장, 직장 상사의 이름, 가입한 보험까지 상세히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들은 수사에 필요하다며 경찰청 앱을 깔게 했다. 하지만 그건 보이스피싱을 위한 해킹 앱이었다.

일당들은 해킹 앱을 통해 다른 사람과 통화를 할 수 없게 했고 그때부터 전화가 오면 서울중앙지검 번호로 오도록 했으며 다시 서울중앙지검으로 전화를 해도 자신들이 받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

C 씨는 "그들은 제가 가진 돈이 세탁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현금 코드를 봐야 한다며 가진 현금자산을 모두 말하게 했고, 계좌에 있는 돈을 뽑아서 금융감독원으로 오라고 했다"면서 "그때까지도 의심하고 있었지만 금감원에 실제로 간다면 진짜일 수 있다는 생각에 돈을 인출하여 금융감독원으로 향했다"고 전했다.

C 씨가 여의도역에 도착한 뒤 전화를 하자 일당은 "왜 연금이 있었는데 말하지 않았느냐"면서 "이런 식으로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도와줄 수 없다. 금감원 출입을 제한할 테니 대신 우리가 보낸 직원에게 돈을 건네라"라고 다그쳤다.

C 씨는 "의심이 들다가도 여의도역 한복판에서 대담하게 범죄를 저지르진 않겠지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면서 "결국 저는 돈을 건네주었고, 범인은 금감원 위조문서를 건네주며 확인이 끝나면 바로 돌려주겠다고 하고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에 신고했지만 '왜 진작 신고하지 않았느냐'는 말에 할 말이 없었고 여의도 한복판에서 만난 사람조차 CCTV로 찾는다는 건 힘들었다"면서 "피해를 본 사람은 돈도 돈이지만 당했다는 생각에 어디에 부끄러워서 말도 꺼내지 못하고 피해자인데도 경찰에게 당당한 권리를 요구하지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다 속이 문드러져 가고 있다"고 전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발생한 보이스피싱 피해 사례만 3만여 건, 피해 금액은 7,000억 원에 달한다.

보이스피싱은 코로나19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서민 가정을 파괴하고 국가 경제를 좀먹는 악성 범죄지만 정보기술(IT) 발달로 전기통신 금융 사기의 수법까지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 출처 확인되지 않은 문제 누르지 말아야


렌터카·숙박권 등 여행 상품 판매를 싸게 판다거나 택배 배송조회 등 URL 포함 메시지도 스미싱이 아닌지 잘 살펴야 한다.

최근에는 이미지에 해킹을 심어 해킹을 깔기도 하고 메시지에 나와 있는 번호로 전화를 하면 가짜 상담원이 경찰 신고를 돕겠다고 유인하기도 한다.

이후 경찰·검찰을 사칭하는 연락이 해 "알고 보니 당신 계좌가 범죄에 연루됐다"며 모바일 앱을 깔도록 유도, 그다음부터는 ‘112’로 전화를 해도 범죄자들에게 연결이 되고 피해자 스마트폰의 카메라·녹음도 실시간으로 전송된다.

다음 절차로 금융위원회에서 계좌추적 허가를 받았다거나 본인 또는 가족들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될 것이라며 가짜 공문을 주고, 계좌이체를 유도하거나 현금을 준비하도록 해 대면 편취를 한다.

정부 기관이라며 본인과 가족 등의 개인정보를 줄줄 읊으면 이에 속아 보이스피싱 피해를 볼 수 있으므로 주의가 요구된다.

개인정보 유출·범죄사건 연루 등을 이유로 금융거래정보를 요구한다면 절대 알려주지 말아야 하며 피해 여부를 확인하거나 돈이 세탁됐는지 확인한다며 현금지급기로 유인한다면 100% 사기라고 봐도 된다.

출처가 확인되지 않은 문자메시지는 아예 누르지 않는 게 좋지만 지인이 보내온 것이라면 미리 확인하자. 아울러 ‘출처를 알 수 없는 앱’은 설치하지 않도록 스마트폰 보안 설정을 강화하거나, 통신사 측을 통해 미리 소액결제·콘텐츠 결제 등을 차단하는 방법도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해킹 앱이 깔려 있다면 내가 저장해 둔 금융사나 공공기관 번호를 본인들에게 연결되도록 조작해 놓기 때문에 지인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타인의 휴대전화로 확인을 재차 하는 것도 필요하다.

국제전화 등 의심스러운 번호가 아니라고 안심해서도 안된다. 최근에는 국외전화번호를 010로 변조하는 보이스피싱 범죄 일당이 구속됐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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