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흰머리와 스트레스

입력 2021-06-24 17:20   수정 2021-06-25 00:20

‘천자문(千字文)’의 다른 명칭이 ‘백수문(白首文)’이라는 건 잘 알려진 얘기다. 6세기 중국 남북조시대 양(梁)나라의 학자 주홍사가 황제로부터 “어기면 죽음”이라는 명을 받고 하룻밤 새 1000자로 만든 250개의 사언시를 짓고 백발이 됐다는 일화에서 나온 이름이다.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1793년 10월 단두대 처형을 앞두고 하루 만에 백발이 됐다는 얘기도 극심한 스트레스와 모발 간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그런 현상은 지금도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현 질병관리청장)은 지난해 코로나 사태를 진두지휘한 지 100일도 안 돼 머리가 반백으로 변했다. 중국 지도부와 갈등을 빚는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도 얼마 전 하얗게 센 머리로 갑자기 등장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퇴임 인터뷰 때 “재임 8년간 뭐가 가장 많이 달라졌느냐”는 질문에 “흰머리가 많이 늘었다”고 답했다.

흰머리는 모낭(머리카락을 만드는 피부기관) 속에서 검은 색소(멜라닌)를 만들어내는 멜라닌세포가 고장나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검은 색소를 못 만들어내니 머리카락이 염색 안 된 상태로 희게 또는 회색빛으로 나오는 것이다. 멜라닌세포가 기능을 못 하는 이유는 세 가지 정도다. 노화로 인한 기능 약화도 있지만 유전적 요인과 스트레스도 큰 원인이다. 유전과 관련해서는 흰머리를 나게 하는 유전자가 우성으로, 부모 중 한쪽이라도 흰머리가 빨리 났다면 자식도 그럴 확률이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스트레스 관련해선 그동안 정성분석은 많았지만 과학적인 정량연구가 없었다. 최근 미 컬럼비아대 연구팀이 내놓은 모발 연구결과는 그런 측면에서 눈길을 끈다. 연구팀은 인종과 연령이 다른 14명으로부터 모발을 채취해 지난 2년간 스트레스를 받은 구간과 그렇지 않은 구간을 비교해 스트레스가 모발 색깔에 미치는 영향을 밝혀냈다. 한 30세 아시아 여성의 경우 배우자와의 불화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엔 모발이 흰색(또는 회색)이었다가 이혼 후 다시 검게 돌아왔다는 것이다.

결혼식에 가면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백년해로하라”는 주례사를 자주 듣는다. 모든 부부들이 스트레스 없이 검은 머리는 오래오래, 파뿌리 머리는 되도록 짧게 경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수진 논설위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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