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연봉 6천 '꿈의 직장'이라더니…끝나지 않은 '판교의 눈물'

입력 2021-06-25 11:24   수정 2021-06-25 13:11


다음달 상장을 앞둔 게임사 크래프톤에서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접수돼 관계 당국이 조사에 착수했다. 또 한 번 판교의 정보기술(IT) 기업에서 문제가 불거진 것으로 특정 회사의 문제라기보단 IT 업계 전반의 구조적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야근 요구, 업무 조정 거부, 협박 등 호소
25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크래프톤 일부 직원들이 상사인 A 유닛장과 B 팀장에게 지속적 괴롭힘을 당했다며 사내 인사팀에 신고를 접수했다. 이들은 변호사를 선임하고 서울동부고용노동지청에 진정서까지 제출했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조직 개편으로 A 유닛장과 B 팀장이 상관으로 부임하면서 고통이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진술서에 따르면 A 유닛장은 야근을 요구하면서도 회사 제도로 보장된 보상 반일 휴가는 사용하지 말라고 강요했다. 연장·휴일 근무와 관련해 논란이 일자 B 팀장은 회의에서 "A 유닛장은 한 명을 찍으면 끝까지 괴롭힌다. 우리 팀에서 그런 사람이 나오길 원치 않는다"고 언급했다.

또 B 팀장은 한 직원과의 면담에서 윗선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내가 마음만 먹으면 보고하고 당신을 일하는 동안 숨 막히게 만들 수 있다"고 위협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이 전해지자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누군지 알 것 같다. 정말 유명한 사람"이라며 "블라인드(직장인 익명 앱)에서 자자했다. 카카오·네이버·넥슨 터질 때 조만간 터지겠구나 싶었다"고 전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인사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면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없다"며 "공사 구분을 제대로 못해 발생한 사건인데 판교에 그런 구분을 못하는 'IT 꼰대'들이 넘쳐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에 크래프톤은 "즉각 구성원 보호 조치를 취했고 유급휴가로 트러블이 있는 구성원을 공간적으로 분리시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정한 조사를 외부 노무사를 고용해 조사 진행 중"이라며 "현재 한쪽 구성원 입장만 나온 상태다. 조사가 완료되면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알렸다.
상장 앞두고 악재…회사 덩치 커졌지만 질적 성장 '미지수'
크래프톤은 올 초 개발자 직군 신입 연봉을 6000만원으로 인상했다. 업계 최고 수준 대우로 주목받았다. 개발직군 연봉 2000만원, 비개발직군 1500만원씩 일괄 인상하며 게임 빅3로 꼽혀온 넥슨·엔씨소프트·넷마블에 버금가는 '꿈의 직장'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그러나 주52시간제가 아닌 포괄임금제를 적용하는 등 실제 근무 강도가 높다는 지적도 나왔다. 강도 높은 게임업계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크런치 모드'(프로젝트 마감을 앞두고 야근과 밤샘 근무를 반복하는 근무 형태)로 인해 연장근로 제한 및 보상 관련 근로기준법 조항을 위반, 2019년에는 고용노동부로부터 2차례 시정 지시를 받았다.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IT위원회가가 지난해 10~11월 판교 지역에서 조사한 'IT 노동자 노동환경 실태'에 따르면 응답자 809명 중 약 46%가 "포괄임금제가 여전히 시행되고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 32%는 "주 52시간을 초과해 근무하고 있다"고 답했고, 47%가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하거나 목격했다"고 전했다.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인사 리스크가 불거진 크래프톤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크래프톤에 대한 기대감은 공모가에 그대로 반영됐다. 지난 16일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고 본격 상장 절차를 밟고 있는 크래프톤은 '배틀그라운드' 히트에 힘입어 국내 IPO 시장 역대 최대 규모 공모에 나섰다.

크래프톤의 상장후 시가총액은 공모가격 희망 범위 기준으로 보면 23조~29조원에 해당한다. 단숨에 게임 빅3 시총을 넘어 게임업종 대장주로 등극할 전망. 하지만 이번 악재가 터지면서 회사가 양적으로 성장한 만큼 질적으로 준비가 되지 못한 것 아니냐는 반응도 나왔다.
정치권도 들여다본다…"고민 제보해주면 해결책 찾을 것"
IT 기업들의 인사 잡음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올해 들어 판교 기업들이 돌아가며 논란을 빚는 형국이다.

앞서 넥슨과 자회사 네오플이 전환배치팀(R팀) 소속 직원 중 1년 이상 업무에 재배치되지 않은 직원 16명에 대해 3개월의 대기발령 조치를 내려 노조가 반발했다. 카카오는 주52시간제 위반 등 노동관계법 위반 사항을 노동부에 신고했고 고성과자 선별복지, 비인간적 인사평가 등으로 홍역을 치렀다. 네이버도 최근 업무상 스트레스와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며 극단적 선택을 한 직원 사건이 발생했다.

IT 기업들의 연쇄 노사 관련 잡음에 대해 단기간 압축 성장을 하면서 조직 관리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구조적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 2~3년 전부터 IT 업계에 노조 설립 붐이 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2018년 네이버·카카오·넥슨·스마일게이트·안랩에 노조가 설립됐고 지난해 엑스엘게임즈에 이어 올해 들어서도 카카오뱅크·한컴·웹젠 노조가 만들어졌다.

정치권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네이버뿐 아니라 넷마블 등 게임업계에서도 괴롭힘과 과도한 업무강도를 이기지 못해 자살하거나 돌연사 하는 사례가 많았지만 정작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신고 건수는 단 한 건도 없다"며 "IT 업계가 워낙 협소해 피해자들이 재취업 제한 등 보복을 두려워하고, 회사는 이를 이용해 조직적으로 은폐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꼬집었다.

판교를 지역구로 둔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청년분들의 목소리를 들려주십시오' 제목의 글과 함께 '판교닷컴 신문고' 링크를 올렸다.

그는 "분당·판교 기업들이 이룬 성과는 기업가 정신, 피눈물 나는 투혼의 결과였다. 하지만 최근 일어난 사건들을 보면 청년들이 가슴 속에 품은 사연들이 있을 것 같다"면서 "글로벌 기업에서 '상명하복', '끼리끼리' 문화로 인한 그늘은 없는지, 노력과 결과에 따른 평가가 아닌 인맥과 친분에 의한 평가가 이뤄지는 것은 아닌가. 고민을 제보해 주면 해결의 길을 찾아가겠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IT 업계에서 발생하는 사태들의 본질은 '세대 갈등'"이라며 "임원급 혹은 갑질로 지목된 이들 대다수가 586세대거나, 그 언저리에 있는 자들인데 자신들이 일군 IT 신화를 후배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계속 쥐려 하는 게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선배들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후배들에게 기회와 수당을 양보하고 다시 도전에 나서야 한다"며 "시스템 문제가 아니라 사람 문제다. 사람이 안 바뀌면 판교도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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