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달 1일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앞둔 중국은 축제 분위기다. 거리마다 국기인 오성홍기와 100주년 경축 문구가 적힌 붉은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TV 황금시간대는 공산당 역사 드라마가 점령했다. 중국 스마트폰 앱들의 첫 화면은 공산당 100주년 축하 메시지로 가득하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국민당과의 내전에서 승리한 공산당은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했다. 이후 1957~1961년 독자적 산업화 전략인 ‘대약진 운동’, 1966~1976년 극좌 사회주의운동인 ‘문화대혁명’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면서 위기에 몰렸다.

마오쩌둥에 이어 권력을 잡은 덩샤오핑은 1978년 개혁·개방을 선언했다. 정치는 공산당이 독재하는 권위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는 시장경제를 상당 부분 수용하는 이른바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도입한 것이다.
이후 지도자 자리를 계승한 장쩌민, 후진타오에 이어 시진핑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2010년에는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대국에 올랐고, 2019년에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 1만달러도 달성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2035년 선진국, 2050년 세계 최강국’이라는 비전을 내놨다. 이런 경제 발전은 중국 국민이 공산당을 지지하는 가장 큰 근거다.
이런 분석에 대해 중국 내부 전문가들은 중국 상황을 서구 시각으로 해석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자칭궈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중국은 여전히 개발도상국이며 발전과 개혁을 위해 일부의 이익을 희생하면서도 정책을 일관적으로 밀어붙일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공산당은 당원 9200만 명을 기반으로 전국인민대표대회 2200여 명, 중앙위원 370여 명, 정치국원 25명, 정치국 상무위원 7명, 주석 1명으로 올라가는 피라미드 구조다. 승진하려면 치열한 내부 경쟁을 통해 능력을 검증받아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친 지도부에 국민이 상당한 신뢰를 갖고 있다는 점도 체제 안정 이유로 제시된다.
공산당은 ‘만리방화벽’으로 국민의 해외 인터넷 접근을 규제하고 있다. 중국판 카카오톡인 위챗에서 민감한 단어들을 쓰면 계정을 정지시킨다. 반중 성향의 홍콩 빈과일보는 반강제로 폐간시켰고, 음성 기반 소셜미디어 클럽하우스도 화제가 되자마자 막아버렸다.
이런 통제가 앞으로도 통할지에 대해선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당의 집단지도체제에서 시 주석 1인 체제로 변화하는 것은 국민의 지지를 얻기 힘들다는 전망도 나온다. 부패 척결 과정에서 공산주의청년단이나 상하이방 같은 파벌이 무너져 현 지도층을 견제할 만한 세력이 없어졌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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