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잇따르는 대표작 재번역

입력 2021-06-29 18:18   수정 2021-06-30 00:28

음침하고 어두운 배경, 고립되고 모난 성격의 등장인물들이 끝없이 발산하는 음울함, 끝이 보이지 않는 방대한 분량, 삶과 죽음·신앙과 불신·선과 악의 선명한 대비…. 러시아의 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사진)의 작품에서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들이다.

오랫동안 세계문학의 ‘고전’으로 평가받았지만, 선뜻 다가서기 어려운 험준한 고봉(高峯)으로 여겨졌던 도스토옙스키의 대표작들이 잇따라 새로 번역 출간되고 있다. 오는 11월 11일 그의 탄생 200주년을 앞두고 주요 출판사들이 자존심을 걸고 원전에 충실한 ‘정역본’을 내놓고 있다.

민음사는 지난 25일 도스토옙스키의 대표작 《악령》(전3권)을 선보였다. 총 1276쪽 분량의 작품을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사범대에서 도스토옙스키 작품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연경 씨가 새로 옮겼다. 앞서 15일에는 창비가 총 1452쪽에 달하는 또 다른 대작 《까라마조프 형제들》(전3권)을 내놨다. 이 역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도스토옙스키 전문가 홍대화 씨가 번역을 맡았다.

이들 작품은 이미 열린책들, 범우사, 동서문화사 등 여러 출판사에서 다양한 번역본으로 선보인 바 있다. 이번에 민음사와 창비는 러시아어 원전을 바탕으로 번역의 정확도를 높였고, 새로운 세대에 걸맞게 단어와 문장을 가다듬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악령》은 2000년 같은 역자가 열린책들에서 내놨던 기존 번역을 전면적으로 개역했다. ‘우리 일당’ ‘나그네’ 같은 예스러운 느낌이 나는 단어들을 ‘우리 편’ ‘여행자’로 바꾸는 등 가독성을 높였다. 2017년부터 3년간 번역 작업에 매진해 지난해 탈고한 원고를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을 맞은 올해에 맞춰 책으로 선보였다.

번역자 김연경 씨는 “우리말의 장단점을 더 잘 파악하고 불필요한 대명사와 접속사 사용을 최대한 줄여 예전 번역본보다 압축적으로 표현했다”며 “독자들이 예전보다 훨씬 읽기 수월한 번역본을 내놨다”고 설명했다.

《까라마조프 형제들》은 ‘도스토옙스키’ ‘카라마조프’ 같은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지 않고 ‘도스또옙스끼’ ‘까라마조프’ 등으로 원어 발음을 최대한 살려 표기했다. 기존 번역들에서 관례적으로 사용하던 제목인 ‘카라마조프가(家)’ ‘카라마조프 집안’에 얽매이지 않고 원저 그대로 ‘까라마조프 형제들’이란 제목을 택했다. 러시아정교회 사제들에게 자문해 가톨릭이나 개신교가 아니라 정교회 용어를 사용하는 등 번역의 정확성에 공을 들였다.

기존 번역본에서 ‘감정의 분출’ ‘감정의 파열’ 등으로 번역했던 ‘나드리브’라는 단어는 ‘격정’으로, ‘사상의 간통자’로 번역됐던 단어는 ‘사상을 타락시키는 매문(賣文) 평론가’로 바꾸는 등 의미를 명료하게 전달하는 데 주력했다. ‘소스나 까끄 소 스나(сосна, как со сна)’라는 표현도 ‘꿈에서처럼 소나무’로 직역하지 않고 ‘풀이 풀풀 기억난다’로 풀었다. 홍대화 번역자는 “원어가 주는 유희성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출판계는 도스토옙스키 주요 작품에 대한 재번역 외에도 작가 탄생 200주년에 맞춘 다양한 이벤트도 하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지만지가 《죄와 벌》 한정판 양장본을 선보였다. 민음사는 네이버와 협업해 《죄와 벌》 오디오북을 제작했다. 《악령》 《지하로부터의 수기》 등 다른 작품들의 오디오북도 추가로 내놓을 예정이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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