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차가 곧 등장한다는 전망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2016년 퀴즈쇼 에서 우승한 IBM의 인공지능(AI) 시스템 왓슨이 인간 의사들이 놓치기 쉬운 문제를 해결하는 의료 혁명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 역시 비슷하다. 전 세계적으로 저명한 AI 과학자 제프리 힌턴은 방사선과 전문의 교육을 중단하는 일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표현했다.
《2029 기계가 멈추는 날》의 저자이자 AI 연구 최전선에 있는 뉴욕대의 게리 마커스와 어니스트 데이비스 교수는 많은 경우 AI의 발전이 과대평가됐다고 이야기한다. 약간의 진보를 마치 패러다임의 대전환인 것처럼 포장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알리바바는 보도자료를 통해 그들이 만든 알고리즘의 독해 능력이 이전 기록인 82.13%에서 82.65%로 증가된 사례를 두고 사람처럼 서류를 읽고 문제에 답할 수 있는 AI를 만들었다고 표현한다. 페이스북 역시 간단한 이야기를 읽고 이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는 검증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언론은 지능이 한층 높은 로봇 설계의 비밀을 찾아낸 듯 보도했지만, 해당 프로그램이 실제로 읽은 글은 고작 다섯 줄이었다. 게다가 질문 역시 모두 문장에 그대로 나와 있는 기본적인 내용이었다. 맥락을 고려한 질문이 아니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대중은 이런 과장 덕분에 AI가 실제로 완성형에 가까워졌다고 믿기 시작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여전히 인간에는 비할 바가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오늘날 가장 진전된 자율주행 기술은 날씨가 좋은 고속도로에서는 상당히 믿을 만하지만, 뉴욕 한복판이나 인도 뭄바이의 비 오는 거리에서 사용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매우 제한된 상황에서만 작동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즉, AI가 직면한 상황이 이전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태에서 특정한 과제를 수행할 때만 인간보다 낫다. 바둑은 엄청난 연산을 요하지만 그 규칙은 2500년간 바뀌지 않았다. 가로 19줄, 세로 19줄의 격자와 흰 돌, 검은 돌을 고정된 규칙 내에서 다루다 보니 당연히 많은 가능성을 빠르게 학습하고 처리하는 기계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규칙이 정해져 있지 않다. 아무리 큰 규모의 빅데이터도 일상을 완벽하게 반영하지 못한다. 고정된 규칙이 없고, 가능성은 무한하기 때문이다. 딥러닝을 통해 지난 모든 역사를 학습시켜도 새로운 상황이 발생하면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런 측면에서 오늘날의 AI에 의한 일자리 문제, 사회 구조의 변화 문제 역시 어쩌면 과장된 AI가 빚어낸 지나친 우려일지 모른다. 관련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정책 결정자들이 현실성 높은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술의 현실적인 상태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AI를 둘러싼 많은 대중적 논의가 상상 속의 AI가 가진 장점에만 매몰된 공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다.
김동영 KDI 전문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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