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드립만 치면 돼'…주호민이 돈 내고라도 찍겠다던 그 광고

입력 2021-07-31 10:00   수정 2021-08-03 17:36


기업의 브랜드 광고 시리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K팝 스타가 나오지 않는데도 공개 약 두 달만에 유튜브 조회수 710만건을 넘겼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내용을 요약한 사진과 댓글이 줄줄이 올라온다.

KT가 지난달 선보인 ‘Y드립 시네마’ 얘기다. KT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이용자들의 댓글을 그대로 광고에 반영해 인기를 끌었다.

최근 기업들이 Z세대(1994~2010년생)를 사로잡기 위해 광고 전략을 바꾸고 있다. 별다른 가이드라인을 주지 않은 채 의견을 받고, 이를 그대로 콘텐츠에 반영하는 ‘참여·자율·존중’이 키워드다.
“내 댓글에 광고 내용이 달라진다”
KT는 지난달 초 광고 두 편을 딱 80%만 만들어 KT 유튜브 공식채널에 올렸다. 유명 영화 ‘신세계’, ‘백두산’의 주요 장면을 차용하고, 결정적인 장면의 대사를 말 대신 ‘삐’ 효과음으로 처리했다.

그리고 공지를 함께 올렸다. “마지막 대사를 댓글로 드립쳐주세요. 저희가 그대로 찍어드리습니다.” 드립은 재치있는 말장난을 뜻하는 인터넷 용어다.

‘노는 판’을 깔아주자 Z세대가 열광했다. 약 보름만에 댓글이 1만개 가량 달렸다. KT의 유튜브 채널 외에도 각종 커뮤니티에 아이디어가 올라왔다. 같은달 말 댓글을 반영해 새로 찍어 올린 광고 완성본 영상 댓글에선 ‘저 댓글, 보자마자 딱 선정될 줄 알았다’ ‘이 댓글이 나올줄 기대했는데 아니네’라며 이용자들의 참여가 이어졌다.

이 광고 시리즈는 KT 공식채널에서만 조회 수 674만 회를 기록했다. 광고 제작사인 돌고래유괴단 채널 등을 합치면 누적 조회 수가 710만 회에 이른다. 배우로 참여한 주호민 웹툰 작가는 이를 소재로 라이브 방송을 따로 열기도 했다.

KT는 20대 전용 브랜드 ‘Y’를 알리기 위해 이번 광고를 제작했다. 광고 중 KT의 기업명은 단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브랜드 슬로건도 빠졌다.

서양수 KT 통합마케팅커뮤니케이션(IMC)담당 차장은 “통신 대기업이라는 기존 이미지 대신 ‘재미, 자유, 소통’ 등 Y가 지향하는 브랜드 정체성을 홍보하는게 목표였기 때문”이라며 “자체 조사 결과 이용자 반응이 아주 긍정적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논리 따지는 대신 ‘원하는 것 그대로’
지난 23일엔 롯데푸드가 이용자 댓글을 기반으로 제작한 돼지바 광고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 돼지바는 1983년 출시됐다. 광고는 7년만이다. 롯데푸드는 Z세대 눈길을 끌기 위해 ‘상상력 돼장’ 댓글 공모전을 열었다.


뽑힌 댓글은 기성 세대가 보기엔 딱히 말이 안 된다. 한 신입사원이 회사 사장에게 돼지바를 선물한 것을 계기로 온 나라에 주4일 근무제가 정착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롯데푸드는 이를 그대로 광고에 썼다. 이 광고는 공개 일주일만에 조회수 75만건을 넘겼다.

LG유플러스가 지난달 공개한 20대 전용 브랜드 ‘플’ 광고도 비슷하다. ‘자취방에 찾아와 요리를 해달라’, ‘이화여대 정문 앞에서 같이 춤을 추자’, ‘월미도 바이킹 놀이기구를 내 대신 타달라’ 등 댓글 내용을 연예인 이영지가 그대로 해준다.

왜 이를 시키는지 묻지도, 맥락을 따지지도 않는다. 이 광고 시리즈는 공개 약 한달만에 조회수 242만회를 올렸다.

LG유플러스는 지난 23일엔 사내 마케팅 담당자들이 댓글 내용을 따라 주는 내용의 2차 광고도 만들었다. ‘요즘 피플(사람)의, 요즘 피플에 의한, 요즘 피플을 위한’이라는 브랜드 슬로건을 따랐다는 설명이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Z세대는 자신의 소신이나 의견을 가감없이 표현하는게 특징”이라며 “Z세대 의견을 적극 수용하고 소통하면 자연스럽게 브랜드 정체성이 알려질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각 기업들이 파격 전략에 나서는 것은 차세대 소비권력으로 부상한 Z세대를 잡기 위해서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에 따르면 Z세대는 자유로운 소통, 특이함, 한정짓지 않음 등을 추구한다. 유명세나 자기 맞춤형 콘텐츠에 주로 반응하는 밀레니얼 세대(1981~1996년생)와 다른 점이다.

한 광고 제작사 관계자는 “기존엔 기업이 오랫동안 쌓은 유명세와 신뢰도가 광고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Z세대는 반대로 새롭고 독특한 아이디어에 반응한다”며 "기성 제품이나 브랜드를 기존 방식대로 홍보하면 Z세대에겐 자칫 고루한 이미지를 줄 수 있어 새로운 시도가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KT 와이드립 광고, 이렇게 만들었다
KT 와이드립 시네마를 제작한 이들에게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최근 참신한 광고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광고제작사 돌고래유괴단의 변종현 감독, KT의 서양수 통합마케팅커뮤니케이션(IMC)담당 차장이 자리에 함께했다.


Q. 와이드립시네마 주연으로 유명 배우 대신 웹툰 작가 이말년씨와 주호민씨를 기용했다.
(변 감독) 기획 초반부터 콘텐츠를 기반으로 대중과 함께 즐기고 놀 수 있는 모델을 선정하고자 했다. 이말년 작가와 주호민 작가는 기존 팬층이 두꺼워 콘텐츠와 시너지 효과가 났다고 본다. 두 작가의 진지한 연기를 보면서 팬들이 새로운 즐거움을 느낀 것 같다.

(서 차장) 두 작가는 그간 소통형 콘텐츠를 선보였기 때문에 와이드립 시네마의 취지와 잘 맞았다. 주호민 작가는 나중에 본인 라이브 방송에서 "이 프로젝트엔 돈을 내고서라도 참여했겠다"고 했더라.

Q. 유튜브 댓글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나.
(서 차장) 댓글이 1만개 정도 모였다. 하나도 빠짐없이 읽느라 눈이 빠지는 줄 알았다. 댓글은 영상화했을 때 재미를 줄 수 있는 것을 뽑았다.

문장으로 봤을 때 직관적인 재미를 주는 댓글이 있고, 글보다 영상으로 시각화했을 때 더 재미있는 댓글이 있다. 이번엔 후자에 더 집중했다. '침세계' 편에서 "나 입으로 총소리 낼 수 있다", '민둥산' 편에서 "전 사실 거북이입니다" 등 댓글이 그런 예다.

아깝게 영상에 담지 못한 아쉬운 댓글도 있다. '민둥산' 편에서 비장하게 달려간 주호민 대원에게 정만식 배우가 "호민아 그쪽이 아니잖아"라고 소리친다는 내용의 댓글이 기억에 남는다.

Q. 촬영 과정은 어땠나.
(변 감독) 이말년 작가가 자꾸 장난치려고 해서 때리고 싶었다. '민둥산' 편에선 주호민 작가가 거북이 분장을 해야하는데 물감이 잘 안 칠해져서 어려웠다. 컴퓨터그래픽(CG)로 처리한게 아니라 진짜 분장이다.

'침세계'편은 내용에 조금 변화를 주고 싶어서 돌고래유괴단이 직접 댓글에 참여했다. (Q. '뇌절' 부분이 인기더라. 혹시 감독님도 Z세대인가.) 난 30대 중반이다. 철저한 교과서 위주 공부로 20대 감성을 익힌 '가짜 20대'다.

Q. 기업의 브랜드 정체성을 직접 광고하지 않았다.
(서 차장) 브랜드 Y의 정체성은 '20대들이 자유롭게 노는 것'이다. 이를 알리기 위해선 KT의 이름을 여러번 노출하는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광고가 아니라 진짜 찾아와서 즐기는 마당을 열고자 했다.

(변 감독) 광고주인 KT측에서 기업명이나 브랜드 슬로건 나레이션을 배제해달라고 먼저 얘기했다. 진짜 젊은이들이 놀아보라고 자유도를 주더라. 사람들이 Y드립 시네마를 봤을 때 즐거웠고, 그런 좋은 감정이 기억에 남는다면 그 자체가 브랜드를 알리는 일이라고 봤다.

Q. 앞으로도 비슷한 시도를 할 계획인가.
(서 차장) 똑같은 형식이 아니더라도 'Z세대의 참여와 즐거움'이란 키워드는 유지할 것이다. 지난 30일 발매한 Y 브랜드 송도 마찬가지다. 가수 비비(BIBI)가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하면서 Z세대에게 들은 얘기를 기반으로 가사를 썼다. 이런 식으로 캠페인과 모델은 바뀌지만 소통형 이야기를 풀어낼 계획이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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