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수묵화의 '새로운 경지' 두 거장을 만나다

입력 2021-08-01 17:15   수정 2021-08-02 00:23


화폭에 가득한 계곡 풍경 어디서도 푸른 물빛을 찾아볼 수 없다. 물결은 먹선으로만 간략히 그려져 있고, 계절을 느끼게 하는 색은 나뭇잎의 초록빛뿐이다. 그런데도 그림을 보고 있자면 어디선가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무더위를 식히는 시원한 바람이 얼굴에 불어오는 듯하다. 계곡의 바위와 뒤쪽의 산세는 질박하면서도 소재 특유의 질감과 세부를 그대로 살려내고, 화폭 위아래의 대담한 여백은 상쾌한 여운을 자아낸다. 임농 하철경 화백(68)이 한지에 수묵과 담채로 그려낸 올해 신작 ‘무릉계곡’이다.

전통 수묵화를 계승해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낸 두 거장의 전시가 서울 관훈동에서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각각 열린다. 오는 4일부터 인사아트프라자갤러리에서 개막하는 하 화백의 개인전 ‘하철경’과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박대성 개인전 ‘정관자득(靜觀自得): Insight’다.

하 화백은 20세기 한국 산수화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인 남농 허건(1907~1987)의 수제자이자 외손녀사위다. 소치 허련, 미산 허형, 남농으로 이어진 남종산수화의 전통에 현대적인 감각을 가미해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를 비롯해 중국, 일본, 러시아, 독일, 미국, 프랑스, 싱가포르 등에서 64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1000여 회의 그룹전과 초대전에 참여하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한국예총 회장(2회)과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등도 지냈다.

이번 전시에는 전국 각지의 산사와 겨울 바다 등 하 화백이 직접 본 풍경을 화폭에 담아낸 작품 50점이 나왔다. 고요함과 자연이 뿜어내는 생명력의 정중동(靜中動)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다. 전통 산수화 특유의 정확한 점묘와 극도의 세묘(細描), 절제된 표현 등이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선명한 색채가 생동감을 부여한다. 하 화백은 “전통과 현대를 역동적으로 조화시키려 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10일까지.

남종산수화의 전통을 이은 하 화백과 달리 박대성 화백(76)은 겸재 정선부터 이상범, 변관식으로 내려오는 진경산수화의 명맥을 잇는 거장이다. 박 화백은 6·25전쟁 중 부모를 여의고 왼팔까지 잃었지만 독학으로 한국화에 매진해 독보적 화업을 이뤘다. 담대함과 섬세함을 겸비한 붓질, 농묵·담묵의 조화, 역동적인 구성 등이 탁월하다는 평가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 때 환담장에 그의 작품이 걸렸고,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에도 그의 작품 ‘일출봉’이 포함돼 있다.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제목인 정관자득은 ‘사물이나 현상을 고요히 관찰하면 스스로 진리를 깨닫는다’는 뜻이다. 전시에는 금강산 구룡폭포와 소나무 등 기존에 즐겨 그리던 소재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 작품 총 70여 점을 걸었다. 개인적으로 수집한 전통 도자기 및 공예품을 사실적으로 그린 ‘고미’ 연작, 정물화 등도 함께 전시돼 작가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박 화백은 독창적인 방식으로 한국 전통 회화의 현대화를 이룩했다는 점에서 해외 미술계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내년 7월부터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카운티미술관 개인전을 시작으로 하반기 내내 미국 동부의 하버드대, 다트머스대, 뉴욕주립대 등 여러 명문대에서 순회전을 열 예정이다. 전시는 오는 23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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