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한 척 만들 때마다 100억 로열티…'K-조선' 수주 잭팟의 이면 [한경우의 케이스스터디]

입력 2021-08-01 06:11   수정 2021-08-01 07:20


5년 전 고사 직전까지 몰렸던 한국의 조선산업이 부활했습니다.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되기도 하는 액화천연가스(LNG) 덕분입니다. 상선 건조 분야에서 저렴한 인건비를 앞세워 한국 조선업계를 맹추격하던 중국 조선업계도 아직 LNG 관련 선박을 건조하는 데는 서투르죠. 작년과 올해 발주된 LNG 운반선 건조 일감은 한국 조선소가 싹쓸이하다시피 했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가히 K-조선이라고 불릴 법도 합니다.

영국 조선·해운시황 분석업체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한국 조선소들은 143만3562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선박의 건조 난이도를 고려한 무게 단위)의 LNG운반선을 수주했습니다. 이 기간 전 세계에서 발주된 LNG운반선 152만9421CGT의 94%를 가져온 겁니다. 한국 조선소들이 독보적인 LNG 관련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기에 나타난 결과입니다.

LNG는 끓는점이 영하 162도로 굉장히 다루기 어려운 에너지원이예요. 배에 실어 나를 때 낮은 온도를 유지하기 위한 보냉을 아무리 잘 해도 자연적으로 기화(액체가 열에너지를 흡수해 기체로 변화)돼 날아가는 가스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낭비되는 가스를 얼마나 줄이느냐가 LNG운반선 건조 경쟁력입니다. 기화된 가스를 LNG운반선의 추진연료로 사용하거나, 날아가는 가스를 잡아 다시 액화시키는 방식으로요.

LNG운반선에서 LNG를 담는 공간을 화물창이라고 합니다. 위험하고 기화되기 쉬운 LNG를 담아야 하니 고난도 설계 기술이 필요하겠죠. 현재 건조되는 LNG운반선의 화물창은 멤브레인이라는 형태가 대세입니다. 원천 기술 특허는 프랑스의 엔지니어링 회사 GTT(Gaz Transport & Technigaz)사의 소유고요. 때문에 한국 조선소들은 가장 큰 사이즈 기준으로 신조선가가 척당 2000억원가량인 LNG운반선 한 척을 건조할 때마다 GTT사에 100억원가량의 로열티를 내고 있습니다.


이미 한국 조선업계는 성능이 더 나을 것으로 기대되는 LNG 화물창 기술들을 개발했습니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 빅3과 한국가스공사가 손잡고 2014년 한국형 LNG 화물창 기술 ‘KC-1’을 만들어냈죠. 이 화물창은 한국가스공사로 공급될 LNG를 실어 나를 배에 적용돼 삼성중공업이 건조했습니다.

대우조선해양은 ‘솔리더스’라는 이름의 화물창 기술을 2017년 개발했습니다. 당시 글로벌 조선·해운업계에서는 선박이 운항하는 동안 기화돼 날아가는 LNG의 양을 줄이는 한계가 하루에 0.07%로 인식되고 있었는데, 솔리더스는 이를 0.05%로 낮췄죠.

하지만 한국 조선업계가 개발한 LNG화물창 기술은 아직까지 여러 발주사들로부터 선택을 받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 실제 운항하는 선박에 적용된 사례가 적기 때문이죠. 선택을 받아야 실제 사용된 데이터가 쌓여 이를 근거로 영업할 텐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셈입니다. 조선업 후발주자의 설움입니다.
조선 기술력 최고라는 한국은 왜 크루즈선을 못 만들까
중국도 아닌 글로벌 상선 건조 기술력 1위의 한국을 후발주자로 평가한 게 의아할 수도 있을 겁니다. 대부분의 상선이 한국, 중국, 일본의 조선소에서 만들어지고, 상선 중에서 가장 비싼 LNG운반선을 싹쓸이하고 있는 한국인데 말이죠.

한국 조선소에서 화물 말고 사람이 타는, 그 중에서도 초호화 여객선인 크루즈선이 건조됐다는 이야기를 못 들어봤을 겁니다. 지금은 해체된 STX그룹이 유럽의 크루즈선 전문 조선사를 인수해 운영한 적이 있지만, 한국에서 크루즈선이 건조된 적은 없습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일본의 미쓰비시중공업이 2010년대 중반 크루즈선 건조에 나섰다가 2조5000억원가량의 손실을 보기도 했죠. 기자재 수급 때문입니다. 선주사들은 선박을 발주할 때 어느 회사의 부품을 써야 할지까지 고르기도 합니다. 크루즈선의 경우엔 객실이나 홀의 가구까지도 유럽에 소재한 명품 제작사를 지정한다고 하네요. 상선의 경우엔 조선소와 가까운 곳에 있는 기자재 업체로부터 공급받아 선박에 달면 되는 부품·가구 하나까지도 전부 유럽에서 수입해오면서 손실이 불어났던 겁니다. 크루즈선 건조 경험이 적었던 미쓰비시중공업이 선주사에게 당했다고 볼 수도 있죠.

한국 조선업계도 비슷하게 당한 적이 있습니다. 2016년 조선업 위기를 만든 해양플랜트 부문에서였죠. 2010년대 들어 중국 조선업계가 저렴한 인건비를 내세워 벌크선 분야부터 잠식해오자, 한국 조선업계는 신성장 동력으로 해저유전에서 석유를 퍼 올리는 해양플랜트 분야를 공략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한국 조선업계가 해양플랜트 분야에 경험이 부족했다는 겁니다. 발주사의 잦은 설계 변경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이에 인도 기일이 늦어지게 됐죠. 해양플랜트가 발주됐을 때는 배럴당 100달러가 넘던 국제유가가 2014년 하반기부터 급락하더니 2016년초에는 20달러대까지 떨어지자, 발주사들은 인도지연을 이유로 계약 취소를 통보했습니다.

해양플랜트 분야에서 비롯된 손실은 엄청났습니다. 현대중공업(현 한국조선해양)은 2014년과 2015년 각각 3조2740억원과 1조584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습니다. 대우조선해양의 영업손실은 2012년 721억원으로 시작한 뒤 2013년 1조100억원, 2014년 5599억원, 2015년 2조1245억원, 2016년 1조5308억원이었고요. 정부가 수조원대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겨우 대우조선해양을 살렸죠.



해양플랜트 분야에서의 천문학적인 손실은 한국 조선업계가 자초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국내 조선 빅3끼리 해양플랜트 수주 경쟁이 붙으면서 저가 수주가 난무했고, 선박 건조 분야에서는 드문 ‘헤비테일’ 대금 지급 방식까지 도입됐거든요. 헤비테일 방식은 조선사가 약 20%의 계약금을 계약 당시 받고, 나머지는 인도 시점에 받는 걸 말합니다.

발주사 입장에서는 ▲국제유가가 급락해 발주한 해양플랜트를 인도받아도 별로 쓸모가 없는데 ▲조선사에 지급한 대금의 규모도 크지 않고 ▲설계 변경으로 인도를 지연시켜 조선사가 납기를 어겼다는 구실도 만들어놨으니 부담 없이 계약 취소에 나섰던 거죠.

이로 인한 소송이 최근까지도 우리 조선사들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삼성중공업은 해양플랜트 건조 계약 해지를 통보했던 스웨덴 스테나사에 4632억원을 반환하라는 판결을 영국 중재재판부로부터 올해 3월8일 받았습니다.
15세기부터 이어진 유럽의 해사 패권
이야기가 많이 옆으로 샜네요. 드디어 영국 중재재판부가 등장했습니다. 스웨덴 시추회사와 한국 조선사 사이의 분쟁에 대한 판결을 왜 영국 재판부가 했을까요?

해사 분야 분쟁 조정만 영국 기관이 하는 게 아니에요. 새로 지은 선박이 바다 위를 돌아다닐 만큼 안전한지를 기술적으로 평가해 인증을 내주는 선급 중 영국의 로이드선급이 글로벌 톱3에 포함돼 있습니다. 나머지 둘은 노르웨이 DNV와 미국 ABS입니다. 국제해사기구(IMO)의 본부도 영국 런던에 있습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 지역이 해사 분야의 글로벌 헤게모니를 쥐고 있습니다. 15세기 항해술을 발전시켜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하고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아시아 지역으로 진출하는 항로를 개발한 ‘대항해시대’ 때부터죠. 제국주의 시대엔 영국이 세계 최강대국이었기 때문에 해사 분야의 규범·제도적인 조정자 역할은 영국이 많이 담당하고 있었죠. 글로벌 컨테이너선사 1위와 2위는 덴마크 머스크사와 스위스 MSC사입니다. 에너지 운송 관련 해운사들은 그리스의 선박 가문이 기업화된 곳이 많고요. 특히 그리스 1위 해운사인 안젤리쿠시스그룹은 대우조선해양의 단골로도 유명하죠.

선박 건조 기술 분야도 유럽이 주도하고 있다는 게 중론입니다. 프랑스 GTT가 특허를 보유한 멤브레인형이 LNG 화물창의 대세로 자리잡기 전에 많이 쓰였던 모스형의 특허는 스웨덴 회사가 갖고 있습니다. 과거 가스를 저장하던 육상 저장고나 배 위의 가스 화물창의 외형이 둥그런 공 모양이었던 게 기억날지 모르겠습니다. 선박 추진엔진 기술도 현대중공업그룹이 맹추격하고 있지만, 글로벌 톱티어로는 덴마크의 MDT(만 디젤&터보)사와 핀란드의 바칠라사가 꼽힙니다.

규범·제도적인 헤게모니와 선박 관련 원천기술을 많이 확보하고 있는 유럽이 직접 선박을 짓지 않는 이유는 뭘까요. 바로 전문인력들이 할 일이 많아서입니다. 특히 용접이 그렇습니다. 선박 외부를 용접하는 기술은 건물을 지을 때 철근이나 철판을 용접하는 것보다 훨씬 고난도라고 합니다. 선박의 철판이 두껍기도 하고, 물 속에서 저항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죠. 선박 용접 기술은 경험을 쌓아가며 배우고, 후배들에게 전수해주기 때문에 한번 명맥이 끊기면 복원하기도 쉽지 않다고 하더군요.
해운 덮친 탈탄소 압력, 유럽과 대등한 위치 설 기회될까
그럼 우리는 계속 유럽의 원천기술을 사와서 고생스러운 선박 건조만 해야 할까요? 다행히 최근 따라 잡을 기회가 생겼습니다. 세계적인 탄소저감 트렌드가 해운 분야를 강하게 압박하면서죠.

EU집행위원회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량은 1990년 대비 최소 55%를 감축하기 위한 정책 패키지인 ‘핏 포 55(Fit for 55)’를 지난달 17일 발표했습니다. 여기에는 해상 운수 분야도 탄소배출권거래제(ETS)에 포함시키는 방안이 담겼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다른 산업과 비슷한 수준의 탄소배출 규제의 적용을 받는다는 게 해운업계 입장에서는 적잖은 충격이었습니다. 현재 적용되는 해운 분야의 친환경 규제는 탄소에 대해 손도 못 댄 수준이거든요.

현재 선박 추진연료는 벙커C유가 대세입니다. 벙커C유는 석유를 정제할 때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가장 저급의 석유제품입니다. 태우면 탄소는 물론이고 유해한 가스도 나오죠. 유해한 황산화물(SOx)부터 선박 배기가스의 0.5% 미만으로 줄여보자는 IMO 2020 규제가 작년에 시작됐습니다. 조선·해운업계는 급한 대로 배기가스의 황산화물을 걸러내는 탈황설비(스크러버)를 장착하거나, 정유사가 미리 탈황설비를 통과시킨 저유황유를 쓰는 방식으로 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다만 저유황유는 비싸고, 탈황설비는 선박 내 공간을 차지하는 데다 걸러낸 황산화물을 버릴 곳이 별로 없다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에 LNG 추진선이 친환경선박으로 각광받았습니다.

LNG도 화석연료입니다. 태우면 탄소가 배출되죠. 이제 시작 단계라고 생각했던 차세대 친환경 선박인 LNG추진선도 핏포55에서는 규제 대상인 겁니다. 이에 유해·온실가스를 더 적게 배출하는 메탄올, 암모니아, 수소, 원자력 등을 통해 추진력을 얻는 선박에 대한 연구·개발(R&D)이 더 탄력을 받을 전망입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최근 덴마크 머스크사와 메탄올추진 컨테이너선 3척에 대한 건조의향서(LOI)를 체결했습니다. 계약 규모가 12척에 이를 수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도 합니다. 또 HMM, 포스코, 한국선급, 롯데정밀화학, 롯데글로벌로지스 등과 컨소시엄을 맺고 그린 암모니아 해상운송 및 벙커링 사업을 추진 중입니다.



삼성중공업은 말레이시아 선사 MISC, 독일 만 에너지솔루션과 2024년 상용화를 목표로 암모니아추진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대우조선해양은 작년 10월 영국 로이드선급으로부터 암모니아를 추진연료로 쓰는 2만3000TEU(1TEU는 6m짜리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에 대한 승인을 받았죠. 최근에는 서울대, 미국 미시간대 등과 ‘친환경 스마트 선박 유체기술 글로벌 R&D 네트워크’를 구성하기도 했습니다.

차세대 선박 추진 연료 분야는 초기 단계로 한국 조선업계가 치고 나갈 기회인 건 맞지만, 선도하고 있는 건 아니라고 합니다. 친환경 선박 추진 엔진 분야는 MDT와 바칠라가 앞서 있다는 게 조선업계 관계자의 솔직한 평가입니다.

한국 조선업계는 선박 설계 분야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조선소 출신의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GTT가 내놓은 신형 LNG 화물창의 기술적 문제를 해결할 솔루션을 한국 조선소들이 개발해 역으로 알려준다고도 전합니다.

반도체, 자동차, 이차전지 등 한국이 글로벌 선두주자들을 따라잡아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한 산업 분야가 적지 않습니다. 조선업 분야도 같은 길을 걷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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