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평범한 20대 청년 ‘박구’, 어느 날 단기간에 큰 돈을 벌 수 있는 제약회사 임상실험 아르바이트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심각한 약물 부작용으로 물고기로 변하고 만다. 가까스로 탈출하여 제약회사의 만행을 세상에 폭로하지만 오히려 반격을 받고, 주변인들도 도와주는 척 하지만 사실은 물고기 인간을 이용해 한 몫 챙기는데 혈안이 돼 있다. 긴 투쟁 끝에 지친 그는 결국 부작용 치료를 포기하고 태평양을 누비며 자유로운 물고기로 살아간다. 영화 ‘돌연변이’의 내용이다.우리가 약을 먹고 물고기로 변할 일은 없겠지만 체내에 섭취하는 약은 불가피하게 일정 수준의 부작용을 수반할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부작용 걱정을 조금은 덜어도 되겠다.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을 필요가 없는 ‘디지털 치료제(Digital Therapeutics·DTx)’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AI가 진료나 치료를 보조하는 수준을 넘어 그 자체로 치료제가 되는 시대로 진화하고 있다.
가령, 미국의 바이오 테크기업 메드리듬(MedRhythms)은 AI와 음악을 이용한 뇌신경 치료를 통해 뇌졸중 환자들의 보행을 개선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환자들이 음악을 들으며 보행치료를 시작하면 AI가 신발에 부착된 센서로 걸음걸이를 분석하여 리듬을 조절한다. 음악을 통한 자극으로 보행속도와 타이밍의 개선을 유도하는 것이다. 의학발전으로 뇌졸중 생존율은 높아졌으나 생존자 중 절반 이상이 겪는 후유증인 보행장애는 마땅한 치료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메드리듬의 AI 솔루션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여 FDA로부터 혁신 의료기기(Breakthrough Device)로 지정되어 승인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탠포드 대학교 연구진은 AI 의료기업 코그노아(Cognoa)와 협력하여 AI와 AR기술을 활용한 자폐증 행동치료 프로그램을 개발하였다. 수퍼파워 글래스(Superpower Glass)라고 불리는 이 프로젝트는 자폐 아동이 구글 글래스를 착용하면 AI가 상대방의 얼굴을 감지해 헤드업 디스플레이를 통해 상대방과 눈을 맞출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 후 상대방의 표정을 분석하여 행복, 분노, 놀람, 슬픔, 두려움, 혐오, 경멸의 7가지 감정을 이모티콘을 통해 아이에게 알려준다. 일주일에 몇 차례 진행되는 치료를 통해 자폐 아동은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아이슬란드 스타트업 사이드킥 헬스(Sidekick Health)는 귀여운 캐릭터, 레벨, 미션 등의 게임요소를 활용하여 사람들의 생활습관 변화를 유도함으로써 당뇨, 궤양성 대장염 등 만성질환을 관리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플랫폼에 적용된 AI는 데이터를 분석하여 인사이트를 제공하고, 개인 맞춤형 액션 플랜을 수립하고, 동기부여 메시지를 보내 재미있고 효과적으로 생활습관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한다. 생활습관은 현대인의 건강관리 비용과 사망률을 높이는 주된 원인이기 때문에 AI를 활용한 일상생활 속 개입을 통해 질병을 예방하고 관리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앞으로 이 분야에서 우리 기업들의 많은 활약이 기대된다. 특히 디지털 치료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대규모 R&D 자금, 긴 임상기간, 부작용 리스크 등에서 비교적 자유로워 새로운 혁신기업이 쉽게 진입할 수 있는 영역이다. 반면 기존 기업은 구 패러다임 하에 보유하고 있는 시장의 우월적 지위 때문에 혁신 기술 도입을 주저할 수 있다(Incumbent Trap). 따라서 혁신기업은 보다 적극적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채택하여 기존 기업과는 다른 경로를 통해 빠른 성장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기회를 잘 살려 디지털 역량에 강점을 보유한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디지털 치료제 시장을 주도하길 기원해본다.
진성민 KT경제경영연구소 선임연구원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