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프리즘] 한국 양궁의 초격차와 한국 기업이 일군 기적

입력 2021-08-05 17:35   수정 2021-08-12 15:23

지름 12.2㎝. 사과 한 알 크기다. 양궁의 목표는 단순하다. 화살로 과녁의 중심에 최대한 가깝게 맞히는 것이다. 과녁에서 70m 떨어진 곳에서 화살을 쏴 과녁 가장 안쪽의 지름 12.2㎝ 동심원에 명중시키면 10점을 받는다. 도쿄 올림픽에서 한국 양궁 국가대표 선수들이 연이은 연장승부(슛오프)를 가르며 금메달을 가져온 것도 10점 한 방이었다. 사대에 서면 10점 과녁은 점 하나 정도로 보인다고 한다. 여기를 뚫어야 한다.

88올림픽 이후 33년간 이어진 한국 양궁의 초격차를 외신들은 “기적”이라고 하지만 ‘인프라’가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안면 인식을 통한 심박수 측정, 맞춤형 활 그립, 화살 위치를 분석하는 전자 과녁 등이 대표적이다. 모두 기업이 보유한 일류 기술에서 나왔다. 양궁협회장을 맡고 있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불량 화살을 골라내는 슈팅 머신이 특히 중요했다. 그래서 편차 없는 좋은 화살을 골라 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경제도 다를 바 없다. 지난달 한국 수출이 554억달러를 넘어 역대 월간 최고 기록을 다시 썼다. 무역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56년 이후 65년 만에 가장 큰 수치다. 반도체에서부터 자동차 석유화학 철강 선박 휴대폰 디스플레이 바이오헬스 2차전지 가전 컴퓨터 등 15대 주력 품목의 수출 증가율이 모두 플러스를 나타냈다. 편차 없는 모든 산업의 분투가 대기록으로 이어졌다.

‘K제조업 원팀’이 이룬 성과의 이면에는 수많은 기적이 숨어 있다. 반도체와 더불어 자동차산업이 특히 그렇다. 사상 초유의 국가부도 사태를 불러온 1998년 외환위기 직후 세계적 컨설팅회사에서 한 권의 두툼한 보고서를 청와대에 건넸다. 한국 경제의 재건을 위한 제안을 담은 보고서에는 ‘두 가지 하지 말아야 할 것’과 ‘두 가지 해야 할 것’이 들어 있었다.

포기해야 할 두 가지 중 하나로 지목된 게 자동차산업이었다. 당시 GM 등 미국의 ‘빅3’와 독일의 벤츠, BMW, 폭스바겐, 일본의 도요타와 혼다 등 즐비한 글로벌 강자들 틈속에서 변변한 자체 엔진 기술력도 갖추지 못한 ‘자동차의 변방’ 한국에는 승산이 없다는 진단이었다.

한국은 반대로 갔다. 현대차는 부도가 난 기아를 인수해 플랫폼을 통합하고, 유럽과 미국, 중국, 브라질, 러시아에 연이어 생산공장을 지으면서 연간 생산대수를 이전의 3배인 800만 대 체제로 만들었다. 연구개발 인력을 1만2000명까지 배로 늘리면서 기술력을 끌어올렸다. 그렇게 현대차는 전후방 효과가 막대한 자동차산업을 통해 한국 제조업 전체를 이끄는 ‘거함’ 역할을 했다.

현대차에 자동차 기술을 전수한 일본 미쓰비시는 “우리를 넘어섰다”고 고개를 숙였고, 현대차는 숙적 혼다도 제쳤다. 1999년 11위였던 글로벌 순위도 지난해 5위로 수직상승했다. 반도체 기적 못지않은 성공 신화를 일궜지만 현대차 내부에선 이 시기를 ‘고난의 20년’으로 부른다. 위기와 시련을 돌파하는 힘은 리더의 결단에서 나왔다.

그렇게 한국의 기업은 각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자들이 인정하고 두려워하는 존재로 성장했다. 지금은 반도체와 자동차뿐만 아니라 2차전지, 수소 분야의 경쟁력도 세계 톱 수준이다. 모빌리티산업의 핵심 기술을 갖고 있는 4대 그룹 간 긴밀한 협업도 진행 중이다.

최근 정례적으로 열리는 4대 그룹 총수 모임에서는 한 자리를 더 만들어 놓고 비워둔다고 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빠른 경영 복귀를 희망한다는 뜻에서다. 청와대에 사면을 건의한 경제단체와 소속 기업인들의 뜻도 담겨 있을 테다. 미래를 주도할 신산업 분야에서 드림팀을 갖고 있는 한국을 세계가 부러운 눈으로 보고 있다. 실상 한국이 이룬 가장 큰 기적은 기업이다. 기업인들은 이제 선대가 가보지 못한 길을 향해 가고 있다. 한국 기업을 대표하는 팀 어벤저스의 완전한 복귀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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