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달보다 경기 즐긴 Z세대의 열정·투혼…팬들, 환호로 응답했다

입력 2021-08-08 17:56   수정 2021-08-09 00:38


금메달 6개, 은메달 4개, 동메달 10개. 8일 막 내린 2020 도쿄올림픽에서 한국이 거둔 성적표다. 대회 전 목표였던 금 7개, 종합 순위 10위 이내 달성에 미치지 못했다. 1984년 LA올림픽 이후 37년 만에 가장 저조한 성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감동만은 여느 대회 못지않았다. 한국 국가대표 선수들이 보여준 열정과 눈물, 웃음은 스포츠가 줄 수 있는 본연의 감동을 느끼기에 모자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올림픽에 “금메달을 따지 못해 죄송하다”고 울먹이는 ‘태극전사’는 없었다. 대신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내고, 경기 자체를 즐기는 신인류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 스포츠맨이 있었다.

한국 선수로는 9년 만에 수영 자유형 200m 결선에 오른 황선우(18)는 170m까지 1위로 질주하다가 마지막 30m를 남겨놓고 7위로 미끄러졌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 아쉬움은 없었다. 생애 첫 국제대회에서 쟁쟁한 강자들과 나란히 달렸지만 위축되는 모습도 없었다. “초반에 오버 페이스하는 바람에 마지막 50m에서 처졌다”며 “완주해서 후련하다”는 황선우의 당찬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짜릿함을 선사했다. 올림픽 기간에 연달아 한국 기록을 새로 쓴 그는 올림픽 최종 성적 7위를 넘어 앞으로 보여줄 성장세에 대한 기대감으로 더 큰 즐거움을 줬다.

‘탁구 신동’ 신유빈(17)은 경기마다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 큰 감동을 안겼다. 자신보다 41살 많은 고수 니시아렌(58·룩셈부르크)과 대결한 여자단식 64강전이 백미였다.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상대의 허점을 찌르는 베테랑과의 대결에서 신유빈은 초반에 판판이 무너졌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더욱 초롱초롱해졌다. 변칙적인 공격에 적응하며 조금씩 자신의 경기로 만든 신유빈은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32강전에서 탈락해 눈물을 쏟으면서도 “그래도 재미있었다”며 다음을 기약하는 그의 모습에서 ‘도전과 성장’의 감동이 전해졌다.

높이뛰기 결선에서 보여준 우상혁(25)의 열정은 코로나19에 지쳐 있던 국민에게 생생한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2m33 1차 시기에 실패한 뒤 두 번째로 나선 도전. 경기장 내 사람들에게 박수를 유도하고 흥을 일으키는 등 경기 자체를 즐기며 한국 트랙&필드 역대 최고 순위인 4위를 기록했다. 2m39에 도전해 실패했지만 “괜찮아”라고 외치고 동메달 획득에 실패한 데 대해서도 “후회 없이 뛰었다”며 환하게 웃는 모습은 진정한 올림픽 정신을 느끼게 했다.

이들에게 올림픽은 ‘승리 아니면 패배’의 이분법적 세계가 아니다.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고 그 순간을 즐기는 축제의 장이다. 대중은 이들을 ‘갓기’라고 부르며 열광했다. ‘갓기’는 ‘신(god)’과 ‘아기’를 합쳐 멋진 재능과 매력을 가진 어린 세대를 뜻하는 신조어다. 우렁차게 ‘파이팅’을 외치며 한국 양궁의 미래로 떠오른 김제덕(17), 한국 여자 기계체조 최초의 메달을 따낸 여서정(19), 스포츠클라이밍의 서채현(18) 등이 ‘국민 갓기’로 등극했다.

올림픽을 대하는 국민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국가별 자존심 대결, 은·동메달을 ‘패배’라고 여기던 시선은 없어졌다. 은·동메달에도 금메달 못지않은 박수를 보냈고, 메달을 따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종목에서 새로운 기록을 써낸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대한체육회에 따르면 이번 올림픽 국가대표 중 17~21세 11명, 21~23세 20명의 선수가 15개 종목에 출전했다. 23세 이하 선수들이 딴 메달이 10여 개에 이른다. 메달을 따지 못했어도 한국 스포츠에 의미 있는 기록을 남긴 선수도 많았다. 이기흥 회장은 “이번 대회에선 적잖은 젊은 선수들이 처음으로 큰 대회를 치렀음에도 당당하게 겨뤘다”며 “이들 신진 선수가 한국 스포츠의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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