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우의 Fin토크] 갓 졸업한 청년이 1억원을 받는다면…

입력 2021-08-09 17:30   수정 2021-08-10 01:28


“해마다 100만원씩 청년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 “군대를 전역할 때 사회정착금 3000만원을 주겠다.” “스무 살이 되면 1억원이 든 미래씨앗통장을 주겠다.”

어느 당의 대선 후보 경선에서 유력 주자들이 쏟아내고 있는 이른바 ‘청년 공약’의 면면이다. 이 경선은 같은 당 후보로부터 ‘나랏돈 물 쓰듯 쓰기 대회’로 변질됐다는 촌철살인 지적을 받은 바 있다. ‘청년 표심 잡기’ 종목에서도 금·은·동메달 경쟁이 치열하다.

모든 공약은 표 얻으려고 하는 법이지만, 대놓고 그렇게 말하는 정치인은 없다. 화끈하게 현금을 뿌리는 공약일수록 미사여구가 따라붙게 마련이다. “이력서 150통을 쓰고 홀로 원룸에서 세상을 떠난 어느 청년의 소식에 마음이 아파서” “취업 전까지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 “저출산과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 이런 공약을 만들었다고 후보들은 말한다.
돈 다루는 법에 서툰 사회초년생
사회에 갓 첫발을 뗀 청년들이 두둑한 현금을 덜컥 쥐었을 때 무슨 일이 생길지 상상해봤다. 내심 걱정이 든 것은 재정건전성 같은 거창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일자리를 구해 자리잡기 전까지 알토란처럼 불리고 살뜰하게 쓴다면야 그 나랏돈, 아깝지 않다. 만약 1억원을 쥔 청년들이 갭 투자에 눈 뜨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 데 쓰면 차라리 다행이다. 서울 강남 유흥가나 백화점 명품관이 엉뚱한 호황을 누리진 않을까. 코인 열풍이 다시 불붙진 않을까. 경제관념이 형성되기에 앞서 쓰는 데부터 익숙해진 삶은 재앙이 된다. 지역화폐 지급 따위의 안전장치를 만든다고 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청년 비하가 아니다. 자기 금융생활을 통제하지 못하는 20대가 소비력만 갖게 되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를 우리는 ‘카드 사태’에서 절절하게 배웠다. 30대 후반~40대 초반이라면 “신용카드를 만들면 현금을 준다”고 대학생들을 붙잡던 길거리 좌판을 기억할 것이다. 신용불량자가 사상 최대치(382만5269명)를 기록했던 2004년 2월, 이들 중 19%(72만9695명)가 20대였다. 당시 멋모르고 카드 만들어 쓰다가 피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우리는 12년 동안 초·중·고등학교를 다녀도 ‘돈을 다루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 저축도 빚도 재테크도 사회에 나가 좌충우돌하며 알아서 체득해야 한다. 금융위원회가 2년 전 내놓은 ‘금융교육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학교 정규교과 시간 중 금융을 가르치는 시간은 1년에 딱 8.9시간이다. 금융만 가르치는 과목은 아예 없고, 다른 과목에서 금융이 언급되는 수업까지 싹싹 더한 것이다. 보고서에는 “경제 교과서 맨끝에 구색 맞추기 식으로 주식, 부동산 등 온갖 내용을 우겨넣어 실효성이 없다”는 교사들의 직언이 생생하게 담겼다. 국민의 68.6%는 자신의 금융지식이 충분하지 않다고 털어놨다. 산전수전 겪은 중장년층조차 불완전판매에 당하는 이유가 있다.
현금 살포는 '청년 정책' 될 수 없다
청년층 빚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불어났다고 한다. 금융감독원이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대의 은행 대출 잔액은 2017년 1분기 16조4000억원에서 올 1분기 43조6000억원으로 급증했다. 4년 동안 165.9%가 불어났다. 그들의 부모 세대인 50대(25.5%)와 60대(39.9%)의 증가율을 압도한다. 저금리 시대밖에 경험해보지 못한 지금 20대로서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셈이다. 20대가 끌어다 쓴 카드론 잔액도 1년 새 18.5% 늘었다. 어른들이 “빚 무서운 줄 모르고…”라며 걱정할 만하다.

어떤 청년은 취업난과 생활고에, 어떤 청년은 벼락거지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빚을 냈을 것이다.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이런 현실에 정공법의 대안을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 군대 다녀온 청년에게 자신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자부심을 주는 방법이 반드시 3000만원의 정착금일 필요는 없다. 150번째 이력서를 쓰며 눈물 흘리던 그가 간절하게 기다린 것 역시 100만원의 기본소득보다는 일자리였을 터다. 현금 살포 공약이 쏟아지는데도 아직 마음에 드는 대통령감을 정하지 못했다는 20대가 절반을 넘는다. 청년들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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