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끝까지 변명한 뉴욕주지사

입력 2021-08-16 17:24   수정 2021-08-17 00:17

미국 뉴욕시 북쪽엔 허드슨강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현대식 교각이 놓여 있다. 길이가 5㎞에 달하는 ‘마리오 쿠오모 다리’다. 1983년부터 12년간 뉴욕주지사를 지낸 쿠오모를 기리기 위해 이런 이름이 붙었다.

앤드루 쿠오모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10년째 뉴욕주를 이끌고 있는 정치 명문가 출신이다. 수년 동안 민주당 대선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돼 왔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오랜 친구이기도 하다.

작년 말 쿠오모 주지사의 성범죄 의혹이 불거졌을 때만 해도 ‘설마’ 하는 분위기였다. 성폭력 고발운동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의 옹호자를 자처했던 이력 때문이다. 직장 내 성폭력에서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법안과 성폭행 공소시효를 연장하는 법안에도 서명한 인물이다. 여성 인권 운동가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이들을 공개 지지했다.
여성 인권 부르짖으며 성추행
쿠오모 주지사의 민낯은 뉴욕주 최초의 흑인이자 여성 법무장관인 레티샤 제임스가 이달 초 공개한 수사보고서에서 여과 없이 드러났다.

자신의 비서를 포함해 총 11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성희롱과 성추행을 일삼았다는 게 보고서 내용이다. 검찰은 수개월 동안 179명을 면담하고 7만4000건의 증거물을 검토했다.

수사 보고서에 따르면 쿠오모 주지사는 여성 인권 법안에 서명한 다음날 뉴욕주 소속의 여성 경찰관에게 ‘드레스를 입으라’고 요구했고, 한 달 뒤엔 이 경관의 배를 만졌다. 보좌관인 린지 보일런에게 “스트립 포커를 치자”고 제안하고 강제로 입맞춤을 했다. 비서였던 브리트니 코미소에게는 “셀카를 찍자”고 요청한 뒤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20~30대 여직원들에게 성생활을 캐묻거나 자신과 사귈 의향이 있는지 질문을 던지는 것도 다반사였다.

쿠오모 주지사가 더욱 지탄을 받은 건 그의 ‘내로남불’ 행태 때문이다. 2018년 5월 성폭력 의혹에 휘말렸던 에릭 슈나이더만 당시 뉴욕주 검찰총장을 향해 “누구도 법 위에 설 수 없다”고 비난했던 건 작은 사례에 불과하다.

피해자 증언이 쏟아지고 목격자도 여러 명 나왔지만 그는 변명과 회피로 일관했다. 피해자들에게는 끊임없이 보복 위협을 가했다고 한다. 오는 24일 주지사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힌 최근 기자회견장에서조차 “누구와도 부적절하게 접촉하거나 성적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재차 강조했다. 검찰 보고서에 대해선 “대부분 믿을 수 없다”며 “불순한 정치적 동기가 있을 것”이라고 공격했다.
같은 편인 민주당도 손절 선택
하지만 여론은 차갑게 식었다. 용서받기 힘든 범죄라는 게 중론이다. 더 눈길을 끈 건 쿠오모의 정치 기반인 민주당 대응이다. 당내 1인자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물론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 등 수뇌부는 검찰 보고서 공개 직후 사퇴를 촉구했다. 같은 당 소속인 바이든 대통령도 “주지사직을 즉각 그만둬야 한다”고 압박했다.

민주당 일색인 뉴욕주의회 의원들은 직접 행동에 나섰다. 주지사 탄핵 절차에 들어간 것이다. “버텨봤자 어차피 쫓겨날 것”이란 메시지를 던졌다. 쿠오모 주지사가 서둘러 사퇴를 결심한 결정적인 배경이다. 그런데도 끝이 아니다. 그는 다수의 연방법과 주법을 위반한 혐의로 뉴욕검찰에 기소될 처지다.

한국에서도 권력형 성범죄가 적지 않게 발생해왔다. 그럴 때마다 권력자들의 대응은 쿠오모 주지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양국 정당의 움직임엔 큰 차이가 난 게 사실이다. 어렵게 용기를 냈을 성폭력 피해자들을 두 번 울지 않게 하려면 같은 편이라고 해서 범죄 행위까지 옹호하는 문화가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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