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 간 ‘신경전’으로 시작된 국민의힘 내부 알력 다툼이 당의 ‘내홍’ 양상으로 확전되고 있다. 이 대표는 또 다른 대선 주자인 원희룡 전 제주지사와 ‘전화 통화 녹취록’을 놓고 진실 공방에 들어갔다. 다른 대선 후보들도 공방에 가세하면서 “대선을 코앞에 두고 야당이 자멸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원 전 지사는 18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대표를 향해 “통화 녹음 파일 전체를 오후 6시까지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전날 밤 이 대표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금방 정리된다’는 취지로 통화했다는 원 전 지사의 주장을 반박하는 통화 녹취록 일부를 SNS에 공개하자 곧바로 대응에 나선 것이다. 원 전 지사는 “통화를 녹음했기 때문에 녹취록이 있는 것”이라며 “제 기억과 양심을 걸고 분명히 말한다. ‘곧 정리된다’는 발언 대상은 윤석열 후보”라고 거듭 주장했다. 녹취록에 담긴 ‘저거 정리된다’라는 말의 주어가 윤 전 총장이라는 의미다. 앞서 이 대표는 ‘정리된다’의 주어가 이 대표와 윤석열 캠프의 갈등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원 전 지사 기자회견 직후 이 대표는 SNS에 “그냥 딱합니다”라는 여섯 자의 글을 올렸다. 기자들과 자유롭게 문답을 주고받던 평소와 달리 입도 굳게 닫았다. 이 대표 측 관계자는 “불쾌한 기색이 역력하다는 표시”라고 전했다. 그러나 원 전 지사는 이 대표가 오후 6시까지 통화 녹음 파일을 공개하지 않자 SNS에 “(이 대표가) 자신의 잘못을 사실상 인정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썼다.
당 내부에선 후폭풍이 거세게 일었다. 이날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서병수 경선준비위원장이 “당내 권력 투쟁에 제발 좀 몰두하지 말자”며 이 대표를 공개적으로 두둔하자, 친(親)윤석열 성향으로 알려진 곽상도·김정재 의원은 “그게 우리가 원하는 것”이라고 맞받았다. 순식간에 의원들의 언성이 높아지자 김기현 원내대표가 의총을 비공개로 전환했지만, 회의장 밖으로 “당 지도부를 흔들지 말라” “누가 흔들었냐”는 고성이 터져나왔다. 의총이 끝난 후 한 초선 의원은 “회의가 비공개로 전환되자 각 대선 캠프의 대표 주자들이 앞다퉈 나와 계파 이해관계를 대변하더라”며 “대선을 앞두고 자멸하는 것도 아니고…”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당내 대선 후보들도 이 대표를 놓고 갈라지고 있다. 하태경 의원은 국회 기자회견에서 원 전 지사를 향해 “대통령 자격이 없는 사람” “(당 대표의) 뒤통수를 치는 사람”이라고 맹비난하며 “즉각 대선 경선 후보를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홍준표 의원도 “젊은 나이의 어린 당대표가 들어오니까 기존에 있는 사람 중에 상당수가 저항하고 얕보고 있다”고 이 대표를 두둔했다.
반면 윤석열 캠프 측 장제원 의원은 “(녹취록 공방으로) 많은 국민이 우려하고 있다”며 “이 상황을 심각하게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사건의 단초를 제공한 윤 전 총장은 입장 표명을 삼갔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경선을 관리할 선관위원장 인사를 잡음 없이 잘 처리하는 게 이번 사태를 수습할 수 있는 1차 관문이 될 것”이라고 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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