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삼성차로 출발해 르노차가 되기까지

입력 2021-08-22 12:06   수정 2021-08-22 12:18


 -삼성그룹 기획실에서 출발, 르노가 되기까지 21년 세월

 삼성그룹이 자동차사업을 모색한 시점은 1980년대다. 특히 자동차합리화조치 해제를 계기로 1990년대 먼저 대형상용차 부문에 진출하기 위해 일본 닛산디젤과 손을 잡았다. 이후 기존 현대차 등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1993년 승용 부문 진출을 추진했고 결국 이듬해 당시 산업부로부터 승용차 사업의 신규 진입이 허용됐다. 

 사업 진출이 결정되자 삼성은 파트너로 일본 닛산자동차를 정하고 그룹 내 정예 인력을 구성, 닛산의 기술을 익히는데 주력했다. 그 결과 삼성의 첫 차종으로 결정된 기반 차종은 닛산의 중형 세단 세피로(수출명:맥시마)가 됐고 5년의 준비를 거쳐 1997년 'SM5'라는 차명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1994년 삼성그룹이 정부에 신고한 삼성자동차의 사업계획은 1998년부터 중대형급 차종을 부산공장에서 생산하고 99년에는 소형급, 그리고 2003년에는 독자 차종을 내놓는 계획이었다. 닛산의 기술도입은 8년, 초기 생산 목표는 6만5,000대였다. 그리고 2002년에는 50만대를 만들어 팔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이런 배경에 따라 삼성자동차는 1995년 설립됐다. 첫 차종인 SM5(프로젝트명 KPQ)는 삼성(SAMSUNG)의 이니셜이고 숫자 '5'는 BMW의 차명 구분법을 차용했다. 중형 세단 '5'를 시작으로 '3(소형)'과 '7(대형)'을 준비하기로 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며 삼성의 자동차사업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1998년 2월17일, 삼성자동차는 신라호텔에서 SM5를 화려하게 발표하면서 국내를 시작으로 향후 글로벌 진출도 천명했다. 이때 현대차 쏘나타를 겨냥해 내놓은 마케팅 방안이 제품에 불만이 있으면 교환을 해준다는 보증제도였다. 더불어 보증수리 기간도 '5년 또는 10만㎞ 이내'로 확대하며 현대차와 차별화했다. 그리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품질에 대한 신뢰도가 입소문을 타고 퍼지면서 연간 4만대 이상이 판매돼 현대차 쏘나타를 강력하게 위협하는 차종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SM5 출시 전에 시작된 외환위기는 삼성자동차의 발목을 수시로 붙잡았다. 부품의 90%가 일본에서 수입돼 수익이 적었던 데다 부산공장 설립에 막대한 돈을 투자했던 터라 제 아무리 삼성이라도 자금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탓이다. 그러자 본격적인 외환위기가 시작된 1999년 삼성자동차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1998년 야심차게 신차를 내놓은 지 불과 1년 만의 일이었고 불안감을 느낀 소비자들의 외면으로 SM5는 1만대 이하로 떨어졌다. 

 이때 구원투수로 등판한 곳이 프랑스 르노다. 당시 르노는 유럽에서 벗어나 글로벌 전략을 추진중이었고 삼성자동차가 매물로 나오자 곧바로 인수에 뛰어들었다. 게다가 이미 삼성차의 기술 제휴선이었던 닛산과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동맹체를 맺고 있어 인수도 속전속결로 진행돼 2000년 9월 모든 절차가 끝나자마자 사명을 '르노삼성자동차'로 변경했다. 르노는 한국에서 강력한 브랜드인 '삼성'을 '르노' 뒤에 넣음으로써 삼성의 후광효과로 르노의 인지도를 높이는 전략이었다. 이를 위해 삼성이 지분 19.9%를 유지하도록 했는데 흥미로운 것은 회사가 안정되자 SM5 판매가 다시 살아났는데 '르노'를 앞에 넣었음에도 소비자들은 '르노삼성'이 아닌 여전히 '삼성 SM5'로 인식했다는 점이다. 

 실제 삼성 브랜드의 힘은 막강했다. 삼성그룹 계열사가 지분만 가지고 있을 뿐 자동차는 르노가 만들었음에도 2002년 연간 10만대를 넘기며 현대차에게 강력한 위기감을 심어주는 경쟁사로 떠올랐다. 나아가 2003년에는 현대차 노조의 파업 덕분(?)에 월 판매에서 SM5가 쏘나타를 넘는 최초의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르노삼성'이 아니라 '삼성'의 후광 효과였다는 분석도 끊이지 않았다. 이후 SM5는 2세대로 옷을 갈아 입었고 2009년에야  뒤늦게 닛산에서 르노 플랫폼으로 바뀐 3세대로 진화했다.

 하지만 강력한 '삼성' 브랜드의 힘도 자동차에선 점차 식어갔다. 2007년 QM5가 등장하며 유럽 수출용에 '르노' 엠블럼이 부착되자 시장에선 조금씩 '르노' 브랜드가 인식됐다. 이를 두고 르노와 삼성의 분리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르노의 필요에 따라 '삼성'은 유지됐다. 하지만 2013년, 아예 르노 유럽 공장에서 생산된 QM3가 완성차로 수입되자 브랜드 분리설은 다시 제기됐다. 르노삼성 QM3가 아니라 차라리 '르노 캡처' 차명을 그대로 쓰자는 의견이 적지 않았던 탓이다. 그럼에도 르노는 한국에서 여전히 '르노'보다 '삼성'의 브랜드 파워가 높다는 점을 들어 별 다른 의견을 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점차 유럽에서 완성차로 들여오는 차종이 많아지자 '르노삼성' 유지도 점차 부담이 됐다. SM6, QM6, XM3 등은 르노삼성자동차의 국내 생산이라는 점에서 르노삼성 브랜드를 사용하지만 완성차로 수입되는 조에(ZOE), 캡처, 트위지, 마스터 등에도 '르노삼성'을 부착하는 것은 모기업 '르노'의 정체성에 혼란을 주는 일로 여겨져 결국 '르노' 브랜드를 사용했다. 그리고 양 사는 2022년부터 '르노삼성'에서 '삼성'을 떼기로 했다. 르노 시각에선 국내 인지도가 많이 오른 데다 삼성에 지급하는 로열티도 부담이었던 반면 삼성은 르노 지분 보유로 다른 자동차회사와 거래하는데 보이지 않는 어려움이 있었던 만큼 자연스러운 분리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2000년 처음 인연을 맺은 후 무려 22년 만에야 서로 각자의 길을 가게 되는 셈이다. 

 21년 전 르노가 삼성자동차를 인수할 때 많은 사람들은 프랑스와 한국 기업의 문화가 섞일 수 있을까를 의심했다. 하지만 별 다른 분쟁 없이 오래 시간 공동 이름표를 사용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제는 각자의 길을 가는 만큼 르노자동차 어깨 위에 놓여진 짐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삼성' 없는 '르노'를 어떻게든 국내 소비자에게 알리며 신뢰를 부여해야 하니 말이다. 당연히 그렇게 노력하겠지만...

 권용주(자동차칼럼니스트, 국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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