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도로·철길에 새겨진 서울의 어제와 오늘

입력 2021-08-26 17:23   수정 2021-08-27 02:00

서울 사대문 안을 비롯한 전국 곳곳의 구도심에는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도로가 남아 있다. 대규모 택지 개발이 이뤄지지 않는 한 도로는 계속 살아남아서 도시의 역사를 전한다.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소의 김시덕 교수는 《대서울의 길》에서 서울을 중심으로 뻗어 나간 도로와 철길을 따라가며 도시의 과거와 현재를 탐구한다. 저자는 수도권 대신 대서울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대서울은 길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생활권으로, 경기뿐만 아니라 강원 춘천과 원주, 충남 천안과 아산, 충북 청주와 오송까지 서울 통근, 통학권을 모두 지칭한다. 같은 통근 버스·열차를 타며, 행정단위 같은 면(面)이 아니라 길이라는 선(線)의 요소를 통해서도 사람들은 소속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저자는 서울 신촌오거리에서 출발하는 3000번 버스를 타고 48번 국도를 따라 양천구, 강서구, 김포시, 강화도의 모습을 살핀다. 과거 강화도와 서울을 잇던 한강 뱃길을 대체하게 된 48번 국도 주변에는 감암포, 이산포 같은 옛 포구 지명이 남아 있다.

지금은 수도권 전철 1호선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경원선 철길을 따라 의정부, 양주, 동두천, 철원의 모습도 살핀다. 경원선은 분단 이전에는 경부선 다음으로 많이 이용되던 철길이었다. 철도 주변 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한 근대 도심의 모습이 곳곳에 남아 있다. 미군기지 주변에 형성됐던 기지촌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동두천, 6·25전쟁 이후 피란민이 정착했던 연천 신망리 등 개성 있는 마을의 모습이 책에 담겼다.

대서울의 길을 걸으며 ‘갈등 도시’의 현장도 발견한다. 경춘선 폐선 구간의 재개발을 둘러싼 갈등,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신설 노선을 유치하려는 지역 간 경쟁 등을 조명한다. 재개발로 인해 쫓겨난 철거민이 정착한 마을들의 사연을 보여주며 도시의 주인은 누구인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저자는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가 시민에게 무엇을 감추려 하는가를 보려면 도시의 경계 지역을 걸으면 된다고 말한다. 경계 지역에는 한국 사회의 근원적인 문제들이 담겨 있다는 것. 화훼 마을이 자리 잡은 서울 송파구와 경기 성남시 수정구의 경계 지점을 살펴보면, 남쪽 성남 방면에는 복정 정수장과 성남시 수질복원센터, 서울 중심부의 빈민 수십만 명을 트럭에 실어 보낸 성남 원도심, 옛 광주 대단지가 있다. 북쪽 서울 방면에는 청계천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강제 이주시킨 상인들을 수용한 가든파이브가 있다. 저자는 도시 개발로 충돌을 빚는 현장을 기록으로 남기며 대서울의 아픈 역사를 증언한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