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이래 최대 불황에 갇힌 직업? 앞으로도 없어지지 않을 직업” [강홍민의 굿잡]

입력 2021-08-26 10:21   수정 2023-07-12 11:14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문학동네의 사무실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편집부. 그곳은 까치발을 들고도 사람의 정수리가 보이지 않을 만큼 높디높게 책이 쌓여져 있다. 소설부터 인문학, 시, 에세이, 사회·과학 등등 책이란 공통분모 외엔 같음을 찾을 수 없는 다종다양한 책 더미 속엔 출판편집자(이하 편집자)가 원고와 씨름 중이다. 편집자들이 모여 있는 그 공간은 정숙(靜肅)이 익숙한 듯 편집자들은 물론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들마저 입을 다물고 발걸음을 늦췄다. 적막이 감도는 그곳에서 박영신(45) 문학동네 국내2팀 부장을 만났다. 원래 이렇게 조용한 곳인가를 묻자 눈짓으로 그렇다며 밖으로 안내한 그녀는 문학동네에서만 10년, 올해 편집자로 20년의 내공을 쌓은 베테랑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120여 편의 책을 만든 박영신 부장에게 출판편집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문학동네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나.
“문학동네는 소설, 시 중심의 문학 출판사다. 물론 문학 이외의 책들도 다양하게 출판하는 곳이다. 문학동네의 편집부 국내 2팀을 맡고 있고 비소설, 인문학 분야의 책을 주로 편집하고 있다.

편집자로서는 얼마나 근무했나.
“2002년 여름, 출판사 ‘그린비’에서 편집자로 시작해 출판사 ‘창비’를 거쳐 현재 문학동네에서 근무한 지 10년 정도 됐다.”

편집자의 역할에 대해 소개해 달라.
“출판편집자는 세상에 널려 있는 조각조각의 텍스트를 하나의 의미 있는 이야기로 엮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이미 완성된 원고로부터 출발하는 경우에도 원고가 지닌 특별함을 먼저 알아보고 독자들과 만나는 길을 세심하게 닦아야 하고, 아직 작은 실마리만 가진 글이나 생각일지라도 그것들을 어떻게 완성할지 고민하는 직업이라 할 수 있다.”

“출판 편집자의 주요 업무는 교정교열···작가, 디자이너, 회사 대표와 끊임없이 소통하는 직업”

편집자의 구체적인 업무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중요한 건 교정·교열이다. 다른 출판사의 경우 교정·교열자가 따로 있는 곳도 있지만 문학동네는 기획부터 교정, 교열은 편집자의 역할이다. 단순히 맞춤법이나 오탈자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문맥을 보고, 문장이나 표현의 뉘앙스가 맞는지 작가와 늘 소통하면서 글을 완성해야 한다. 텍스트의 완성을 위해 징글징글할 정도로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곱씹으며 읽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책 콘셉트에 맞는 디자인이나 판형을 선택하는 것도 편집자의 몫이다. 때문에 편집자는 작가와 디자이너, 회사(출판사)와 끊임없이 소통하는 조율자라 보면 된다.”

한 권의 책이 출간되기까지 원고를 몇 번 정도 읽나.
“경우에 따라 대여섯 번을 읽는 책들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세 번 정도 정독한다. 세 번도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매번 그 책 속으로 빠져 읽는다. 꿈에서 나 올 정도로 깊게 말이다.”



1년에 한 명의 편집자가 출간하는 책은 보통 몇 권정도 되나.
“우리 팀의 경우 보통 한 명의 편집자가 세 달에 한 권씩 출간하는 편이다. 1년으로 보면 4~5권 정도다. 세 달이라는 시간은 편집자가 방향을 잡고 책을 만드는 시간이다. 그 전에 작가를 발굴하고 소통하는 밑작업이 필요하다.”

밑작업 기간에는 어떤 걸 하나.
“작가를 섭외하고, 작가가 글을 쓰는 시간이다. 보통 6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리는데 그 시간 동안 편집자는 작가와 소통하면서 책의 방향을 설정해 나간다.”

작가와는 어떤 소통을 하나.
“끊임없이 소통한다. 어떤 방향이 좋을지, 어떤 글쓰기가 좋을지도 의논한다.”

작가와의 소통이 힘들진 않나.
“아직 그렇게 나를 힘들게 하는 작가는 없었다.(웃음) 작가와 성격이 안 맞아 힘든 경우보단 마감 압박이 있다. 마감이 정해져 있는데 작가가 글이 안 나오는 경우엔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사실 그 경우엔 편집자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없다. 작가가 글을 쓰지 못하면 사실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다행히도 아직까지 최악의 상황까지 간 적은 없다.(웃음)”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 문유석 작가의 전작, 토마 피케티의 <자본과 이데올로기> 등 20년 간 120여 편의 책 만들어”


그동안 출간했던 대표작들을 소개해 준다면.
“일한 시간이 오래된 만큼 그간 만들었던 책들을 다 기억하기 어렵지만 한 권 한 권 온 힘을 다해 만들었던 것만큼은 확실하다. 그동안 120여 편의 책을 만들었는데, 그 중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 문유석 작가의 전작, 토마 피케티의 <자본과 이데올로기>, 천문학자 심채경의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등이 최근 몇 년 사이에 만든 책 가운데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은 책들이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책이 있다면.
“혼자 내심 뿌듯해하는 책은 고병권 작가의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꼽을 수 있겠다. 편집자로서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만든 책인데, 얼마 전 서점에서 그 책을 발견했다. 출간한 지 20여 년 정도 됐는데 아직 절판되지 않고 팔리는 걸 보니 기분이 좋더라. 물론 작가님이 잘 쓰셔서 그렇겠지만 내심 한 몫 한 것 같은 마음이었다.”

작가를 섭외하는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나.
“요즘에는 SNS나 브런치 등 워낙 다양한 플랫폼이 있어 많은 글들을 보고 듣는다. 좋은 글을 보면 직접 연락하기도 하고, 기존 작가들의 경우엔 기획안을 제안해 작업하기도 한다.”




“SNS, 브런치 등 다양한 플랫폼 통해 신진 작가 물색···
일반인들의 작가 등용의 포인트는 문장력과 생각하는 방향을 표현하는 글”



SNS 등 플랫폼을 통해 작가를 섭외할 땐 무엇을 중점적으로 보나.
“가장 중요한 건 글이다. 책을 낸 적이 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 사람의 문장력이나 생각하는 방향이 중요하다. 올 초에 출간한 심채경 천문학자의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도 그 중 하나다. 심채경 천문학자가 한 매체에 쓴 칼럼을 보고 천문학자답지 않은 위트가 담겨져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직접 연락을 드려 책을 만들게 됐다.”

최근 일반인들 중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어떤 조건이 갖춰져야 할까.
“정말 다양한 경험을 가진 분들 중에 본인의 스토리를 적어 출판사에 투고하시는 분들이 꽤 많다. 왜 자신의 이야기가 책으로 만들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면 좋지 않을까. 통찰력이 담겨져 있는 글이라면 책으로 만들어질 기회가 더 있을 것 같다.”

좋은 편집자가 되기 위한 조건이 있다면 무엇인가.
“어떤 책을 만드느냐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속한 사회와 세상에 대한 깊고 날카로운 안목을 가질수록 좋은 편집자가 아닐까. 그래야 현시대에 필요한 인사이트를 어렴풋하게나마 감지해 볼 수 있을 테니까. 그런 안목을 기르기 위해서는 편식 없이 다양한 장르의 책들을 가능한 한 깊이 있게 읽어야 한다. 단시간에 축적할 수 있는 역량이라기보다 꾸준히 키워나가야 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독서 경험은 우리말 어법이나 어휘에 대한 지식과 감수성을 높여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편집자들의 독서량은 일반인들에 비해 많을 것 같다. 한 달 또는 1년에 몇 권의 책을 읽는 편인가.
“평균을 내긴 어렵지만 보통 한 달에 50만원 정도 책을 구매하는 것 같다. 온라인 서점 몇 곳은 플래티넘 회원이다.(웃음)”

다른 편집자들도 그 정도로 구입하나.
“다른 편집자들도 많이 보는 것 같긴 한데, 그 중에서도 많은 편이다. 그만 좀 사야지 하는데도 잘 안 되더라.”

주로 어떤 책을 구입하나.
“인문사회과학, 학술서, 에세이, 자기계발 등등 분야를 정해놓지 않고 구입하는 편이다. 온라인 서점도 한 곳이 아닌 여러 곳에서 구입한다.”


“편집자의 독서법, 책의 만듦새가 어떤지, 주제를 어떻게 풀어냈는지 정독하며 읽어”


편집자의 독서법도 궁금하다.
“구입하는 책 중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책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는 것도 있다. 편집자들은 책의 내용만을 보는 게 아니라 책의 만듦새가 어떤지, 이 주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는지를 본다. 작가들이 다른 작가가 쓴 책을 많이 보는 것처럼 편집자들도 다른 출판사나 편집자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보는 편이다.”

편집자의 성향이 책 속에 함축돼 있겠다.
“아예 없다고 할 순 없을 것 같다. 물론 책은 저자의 글쓰기에 모든 것이 달려있지만 책의 카피나 표지 등 편집자가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특히 소설의 제외한 에세이·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책은 편집자의 생각이 많이 들어가는 편이다.”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한가.
“물론 다독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깊이 읽느냐가 중요하다. 작가가 왜 이 글을 이렇게 표현했는지 의문을 가지고 읽는 습관이 중요하다.”

출판편집자는 언제부터 꿈꿨나.
“고등학교 때 이과였고, 대학도 공대(이대 생명공학과)로 진학했다. 고등학교 때 나름 잘 해 대학도 큰 무리가 없을 줄 알았는데, 적성에 안 맞더라. 2년 간 다니다 고민 끝에 서양학(고려대)으로 전공을 바꿨다. 정말 부모님께 많이 혼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전공을 바꾼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공대를 다닐 때도 틈만 나면 도서관이나 서점에 살다시피 했다. 워낙 책 읽는 걸 좋아했다. 대학에서도 늘 책과 있다 보니 졸업 후 자연스레 출판사에서 일하게 된 것 같다.”



편집자에게 전공은 중요한 부분인가.
“개인적으론 도움이 됐다. 소설이나 시 분야의 편집자들은 국문과나 문예창작과 출신들이 많다. 대학 때 읽었던 책이나 전공 책들도 도움이 많이 되었던 것 같다. 이과 계열의 책을 편집하려면 그 분야 지식이 필요하듯 편집자에게 다양한 지식과 경험은 좋은 덕목으로 작용한다.”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말은 20년 전에도 들리던 말···책은 없어질 수 없는 매체라고 확신“


최근 다양한 미디어가 생겨나면서 출판업계가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이 종종 들린다.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이야기를 입사 때부터 지금까지 20여 년간 들어왔다.(웃음) 출판업계가 사양산업이라는 말 역시 꾸준히 들린다. 물론 책이 매체의 중심은 아닐 수 있지만 책은 없어질 수 없는 매체인 건 확실하다. 다만 어떤 형식으로 독자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할지는 출판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봐야 할 부분인 것 같다.”

책이 잘 팔리면 편집자에게 인센티브 등 혜택이 있나.
“물론이다. 회사마다 인센티브는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편집자 개인에게 주어지기도 하고, 팀이 포상을 받기도 한다.”

편집자로서 보람될 때는 언제인가.
“어떤 특정한 순간이라기보다 책을 만들면서 독자들이 읽어주면 좋겠다는 부분들이 있는데 그런 부분을 콕 짚어 독자평에 남겨줬을 때 기분이 좋다. 왠지 동지를 만난 기분이랄까.(웃음)”

편집자라는 직업의 매력은 뭘까.
“편집자마다 다르겠지만 이 일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다.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 책을 통해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는 전체적인 과정을 좋아한다. 편집자는 글 안에 들어가 있는 직업이라 그 과정을 견디지 못하거나 즐기지 못한다면 아마 하지 못하는 직업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편집자들의 성향이 비슷할 것 같다.
“편집자들 대부분이 엉덩이가 무겁고, 거북목에다가 자기 속을 잘 드러내지 않는 고양이과 부류가 많다. 우리의 일이 행간을 읽는 일이다보니 내향적이고 다른 사람을 관찰하는 성향이 비슷한 것 같다.”

출판편집자를 꿈꾸는 이들을 위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이 직업은 정말 책을 좋아하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직업이다. 만약 출판인을 꿈꾸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서울북인스티튜트(SBI,Seoul Book Institute)라는 출판학교가 있다. 편집자, 마케터 등 출판인이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을 배울 수 있는 곳인데, 수료를 하면 출판사와도 연결을 시켜준다. 현장에서 배워야할 교육들을 미리 접할 수 있는 곳이다. 출판인을 꿈꾸는 분들이라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서울북인스티튜트는 출판기획부터 편집·마케팅·디자인·제작·전자책까지 단계별 교육을 통해 출판인으로 양성해주는 교육기관이다. 2006년 첫 졸업생을 배출한 이곳은 현재 750여 명의 출판인을 양성했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사진=김기남 기자]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